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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의 가스랜턴 불빛 캠핑장의 가스랜턴은 캠핑의 선언이자 낭만을 호출합니다.
캠핑장의 가스랜턴 불빛캠핑장의 가스랜턴은 캠핑의 선언이자 낭만을 호출합니다. ⓒ 강현호

캠핑장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LED와 모터와 액정을 얻었지만 얼마간의 낭만은 하얗게 타 버렸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의 감성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아날로그 캠핑의 미묘한 재미를 누리고자 하는 마음들은 크다. 그것을 대변하는 게 있다. 바로 가스랜턴이다.

사실 가스랜턴은 불편하다. 불편하기만 한가? 위험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캠퍼들 사이에서 인기가 식지 않는다. 오히려 중소제조업체에서 가스랜턴 시장을 새로 개척하고 있을 만큼 인기가 높다. 왜일까? 그 이유는 나중에 묻기로 하자. 일단 가스랜턴이 얼마나 불편한 녀석인지부터 보자.

가스랜턴은 이름 그대로 가스를 연료로 사용한다. 그리고 그 가스는 230g 내지 450g의 작은 통에 들어 있어 용량에 제한이 있다. 도시가스처럼 레버만 돌리면 언제라도 나오는 게 아니다. 가스통이 비면 갈아줘야 한다. 큰일은 아니지만 번거로운 건 사실이다. 또, 액화상태의 가스가 기화되면서 발생하는 열손실 때문에 사용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기화되는 가스량이 점점 줄어들고 불빛도 잦아든다. 불빛세기를 유지하려면 가스통을 흔들어주거나 약간의 열을 가해주는 경우가 많다. 불편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캠핑장에서 며칠을 보내고 나면 가스통이 쌓인다. 무심코 분리수거함에 던져 넣으면 그만이지만 잔여가스에 의한 사고를 걱정한다면 잔여가스를 빼 내고 버려야 한다. 제대로 한다면 그것도 제법 큰 일거리다. 가스통을 사고 끼우고 흔들고 빼내 버리는 데까지 꽤 절차가 수고스럽다.

집에서 쓰는 형광등은 전문가가 설치를 해 놓고 가면 우리는 스위치만 조작하면 된다. 형광등 켜는 법을 배울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가스랜턴은 다르다. 먼저 심지 끼우고 태우는 법을 익혀야 한다. 심지를 태워야 한다는 개념자체가 낯선 이들도 많다. 가스관에 심지를 끼우고 라이터로 심지를 고르게 태운 뒤에야 가스가 비로소 불빛이 된다. 이때 심지를 헐겁게 묶거나 태운 뒤에 크게 흔들리면 심지는 쉽게 찢어진다. 주의를 요하는 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가스랜턴은 반 자동 원터치로 점화되는 게 대부분이다. 즉, 가스를 분출시키고 난 뒤에 이그니터라는 점화기로 불꽃을 일으켜 불이 붙게 하는 방식이다. 이때 가스가 분출되면서 강한 휘파람소리와 비슷한 소음이 발생하는데 이 소리가 거슬리기도 하고 아주 미묘한 공포를 자아냈던 기억이 있다. 공포야 하다보면 극복되지만 점화기는 가스랜턴에서 가장 잦게 고장이 발생하는 부분이라 역시 수리를 하는 게 귀찮다.

가스랜턴은 연소과정에서 열이 발생한다. 몇 분만 켜 놓아도 랜턴상부와 유리관은 다리미마냥 뜨거워진다. 과거 산행을 즐겼던 분들은 직접이든 간접이든 이 랜턴에 팔둑을 데이거나 비싼 오리털 점퍼에 구멍을 내서 속 좀 상해본 경험들이 있으실 거다. 그 만큼 열이 높다. 가스랜턴 사용 중에 아이들은 절대 주위에 접근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며 혹시라도 화장실 가겠다는 아이가 아무리 보채도 가스랜턴을 맡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왜 자유와 불편을 찾는가?

캠핑장의 형광등 캠핑장에서도 형광등을 많이 쓰기는 합니다.
캠핑장의 형광등캠핑장에서도 형광등을 많이 쓰기는 합니다. ⓒ 강현호

이렇게 불편하고 위험함에도 가스랜턴을 선택하는 까닭은 뭘까? 그 '노오란' 빛이 던져주는 색다름에 있다고 생각한다. 형광등의 하얀 불빛을 굳이 삭막하다고 부를 까닭은 없겠으나 너무도 도시적인 건 사실이다. 깔끔하고 사용하기 편하며 내가 아닌 다른 전문가가 설치해 준다. 매일 아침 빨려 들어가는 회사에서 신물나게 쪼이는 빛이며 먹기 바쁘고 자기 바쁘고 출근하기 바쁜 집에서도 늘상 마주하는 빛. 부산물도 없고 조작법을 따로 익히지 않아도 되며 전문가가 설치를 알아서 다 해주기에 따로 수고가 들어가지 않는다.

반면 가스랜턴은 가스연료와 열이라는 위험과 직접 움직여야 하는 얼마간의 귀찮음을 이겨내기만 하면 '내가' 빛낸, 나만의 빛을 던져준다. 그 불빛 아래 의자에 등을 기대고 한 없이 느리게 흐르는 별과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사람과 소소한 일상을 여유롭게 이야기하며 맥주 한 모금을 꼴깍 넘길 때의 그 기분. 그걸 자유라고 하지 않으면 무엇을 자유라 부를까. 같은 상황을 하얗고 밝은 형광등 불빛 아래서 즐긴다고 상상해보자. 그 맛은 굳이 맛보고 싶지는 않은 맛이다.

그렇다고 이런 색다름이 집에서 발휘되지는 않는다. 캠핑이라는 떠나왔음, 집과 사무실을 벗어났음. 도시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 왔을 때 비로소 완성이 된다. 캠핑장에서 형광등을 켤 수 있음에도 가스랜턴을 켜는 이유? 그것은 "나는 지금 다른 세계에 와 있다"는 선언이다. 해수욕장에 가서 폼나게 선글라스를 끼는 이유는 꼭 자외선에서 눈을 보호하려는 목적만 있지는 않다. 우리는 그것을 멋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자유라고도 하고 낭만이라고도 부르고 자신의 (휴가를 즐기고 있는) 상태를 과시하려는 욕망이기도 하다.

캠핑을 떠나는 사람들의 주거지를 살펴보면 대체로 대도시이고 그 중에서도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는 도시인 경우가 많다. 직관적으로 생각해봐도 산골 오지 사람들이 캠핑 장비 싸 들고 오토캠핑 갈 일은 드물 테고 드넓은 짠 바닷물을 헤집고 생계를 꾸려가는 섬에서 캠핑의 낭만을 부러 찾으려 하지는 않음은 쉽게 짐작 가능한 일이다.

도시의 생존 방식에 찌들고 질린 사람들이 며칠이나마 쉬고 싶은 마음을 자연에서 풀고자 할 때 캠핑을 시작하게 된다. 캠핑은 회색빛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의 쉼이자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본능이다. 갑갑증을 덜어내자고 나선 길. 집과 사무실이 설치한 편리에 반해 자연의 불편함이 태산같이 다가왔다면 아예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가스랜턴이라는 약간의 불편함이 선사하는 낭만과 자유라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게 날것처럼 살아있는 캠핑의 맛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 블로그 http://blog.naver.com/manandtext에도 실렸습니다



#아날로그캠핑#캠핑장#가스랜턴#캠핑의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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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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