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떠나요준기와 순희가 금오산 아홉산 골짜기로 피신한 지 보름이 지난 9월 하순 어느 날 밤이었다.
"엊그제부터 유학산 쪽에서 포격소리가 잦아진 걸 보니까 아마도 다부동전투가 끝난 모양이우.""우리는 양쪽 군대에게도 쫓기는 몸이에요. 여기도 인민군 패잔병을 소탕한다고 곧 국방군이나 경찰들이 올라올지 몰라요. 그러면 영감님 내외분이 우리 때문에 화를 입을 거예요. 우리 이제 그만 이곳을 떠나요. 그게 두 분 은혜에 보답하는 거예요.""기럽세다. 나도 이러다간 아두 벙어리가 될 것 같습네다.""그러게요. 근데 벙어리 연기력이 대단해요.""아, 갑갑해 미티갓소. 우리 오마니가 '전쟁터에서 입이 바우터럼 무거워야 살아올 수 있다'는 말을 하루에두 멧 번씩 곱씹으면 다딤햇디요.""잘 했어요. 나랑 이 전선을 벗어날 때까지는 계속 입을 다무세요.""알가시오."준기는 순희의 말에 동의했다. 이튿날 아침, 그들은 금오산 아홉산골짜기를 떠나기로 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계곡에 가 몸을 닦고 온 뒤 임시거처에서 꼭 껴안았다. 그런 뒤 새벽녘까지 서로의 몸에 탐닉했다. 그새 그들은 상대의 몸을 받아들이는데 상당히 익숙해져 있었다.
"내레 머릿속에 누이의 몸 냄새가 꽉 배어 있수.""나도 그래요.""우리 전쟁이 끝나 다시 만나믄 신랑각시가 되는 거우.""나도 그럴 날을 기다려요."순희는 준기 품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작별이튿날 준기와 순희는 아침상을 치운 뒤 떠날 채비를 한 다음 해평 영감 내외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동안 잘 지냈습니다. 이제 그만 산 아래로 내려가렵니다.""무신 소리고? 와, 우리가 뭘 서운케 했나?"해평 할머니가 화들짝 놀란 눈으로 물었다.
"그게 아닙니다. 아주 마음 편케 잘 지냈습니다. 이제 다부동전투가 어지간히 끝난 모양입니다.""바로 가지 말고 좀 더 지내다가 가라.""아닙니다. 저희들이 여기 있으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칠지 모릅니다.""와?""……""이렇게 갑자기 떠나보내 우야노(어쩌나).""할아버지 할머니, 전쟁이 끝나고 남북이 통일될 때까지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우리가 그때까지 살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잘 가라."
쌀 한 자루 할머니는 방안으로 들어가 자루에다 쌀을 한 자루 담아왔다.
"피난 갈 때는 곡식이 제일이다."그새 해평 영감은 짚으로 새끼를 꼬아 멜빵을 만들었다.
"섭섭해 우야노. 내 절마하고는(저 놈과는) 그새 정이 마이 들었는데…. 벙어리들은 말 몬 하는 대신에 눈치 하나는 빠르다고 했는데, 참말로 저 놈아는 정말 그렇더라. 마, 우리와 당분간 여서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준기는 그 말에 고개를 흔들며 두 손을 모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주신 양식 아주 요긴하게 잘 먹겠습네다.""조심해 가라.""할아버지, 김천 쪽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빠릅니까?""지금은 난리 중이니까 차도 없을 끼고, 걸어가려면 길은 험하지만 금오산 뒤쪽으로 가면 더 가찹다(가깝다). 너들이 처음 왔던 길로 내려가지 말고, 그 반대 편인 금오산 뒤로 바로 내려가면 수점마을이 나오고, 계속 서쪽으로 가면 운곡리가 나올 끼다. 거기가면 김천으로 가는 신작로가 나온다. 그 길 따라 곧장 가면 김천이 나온다.""네, 잘 알았습니다." 준기와 순희는 고개 숙여 깊이 두 번 세 번 절을 드리고 올 때와는 반대로 집 뒤 계곡 길로 떠났다.
산신령님"내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걔들은 인민군 부대에서 도망친 인민군 같더구먼.""내도 그래 짐작은 했지.""어째 본께 남매 같기도 하고, 아인 거 같기도 하고.""그래도 둘 다 상스럽지는 않더구만. 근데 내 말을 안 했지만 그 동생이라는 사내 녀석 벙어리가 아닌 것 같더라. 어느 날 밤에 내 통시(변소)에 가는 데 걔들이 쓰는 헛간에서 서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라." "임자도 알고 있었구먼. 내도 그 눈치는 챘지. 우야든동(어쨌든) 지(제) 발로 이 골짝을 탈 없이 떠났으니 우리도, 저들도 다행이지. 누가 뭘 물어도 임자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입 닫고 있어.""내도 그만한 것은 아요. 서로 좋케 만나 좋케 헤어지는 게 혹 다음 만날 때도 좋지. 하마, 그라고 말고. 그래, 영감 눈도 귀도 아주 다 밝네.""내가 그걸 더 이상 밝혀 뭘 할 것이며, 아, 저들도 살겠다고 일부러 벙어리 짓을 하는 데 그걸 까발기면 한 지붕 아래 못 살지." "맞소. 우리 영감 그새 산신령님 다 됐네. 마, 이 참에 거적 피고 앉으소. 영감한테 금오산 산령님이 내렸다고 소문내믄 복채 들고 꾸역꾸역 마이 찾아올 꺼구먼.""마, 시끄럽다. 난 할마이 하고 조용히 이래 사는 게 더 좋다. 산산령이 되면 사람이 아니라 할마이하고 한 번 하도 몬 하잖아. 나는 그저 산골사람으로 이래 조용히 사는 게 좋다. 마, 아무도 없는데 우리 오랜만에 함 하자.""와이카코. 영감 참 얄궂데이.""난 요새도 아침마다 불끈불끈 선다.""영감, 산에 댕기며 몸에 좋다카는 건 혼자 다 먹는 모양이네.""아 그럼, 이 재미도 없으면 이 산중에 무신 재미로 사노. 나중에 내 죽은 뒤 서럽게 울지 말고 영감 살아 있을 때 마이 섬기라."해평 영감이 할머니 손을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만 노소. 내 들어가꾸먼.""거저 마누라는 젊으나 늙으나 앙탈할 때가 이뿌지."잠시 후 문밖으로 해평 영감 할머니의 소곤거리는 났다.
"할마이 좋나?""아이고, 남세스러워라.""이 산중에 누가 있다고….""아이구 주책도. 영감 고추는 아직도 맥아리가 있다.""그래? 칠십에도 생남한타카더라."약목 댁 막둥이 이야기"아이구매 언성스러워라. 그라믄 큰일난데이. 아랫구미 상모동 약목 댁은 오랫만에 술 한 하고 마구잡이로 덤비는 영감 고추 맛을 본 기 제대로 걸려 그만 시집간 딸하고 함께 배가 불러 오더라 카대. 쪼매하고 얌전한데다 반가집 딸로 몹시 깐깐한 약목 댁은 동네 사람들과 사우(사위)보기 챙피하고 남세스러워 뱃속의 그 아이를 뗄라고 빌 짓을 다해도 안 떨어지더라 카대. 그래서 그 아이를 몰래 낳은 뒤 부석(부엌)에 버릴려고 하는데 그 갓난애가 빠꼼한 눈으로 저 어마이를 빤히 쳐다보는데 그 눈빛이 어떻게도 광채가 나는지 약목 댁이가 그만 아무 소리 않고 그 늦둥이를 키웠다고 카대. 친정 묘답 여덟마지기로 칠 남매를 키웠으까 막둥이는 제대로 얻어 먹기나 했겠나.""마, 그래 큰 아가 깡다구도 셀끼고, 나중에 뭘해도 한자리 야무지게 할 끼다. 우리도 손자 같은 아들이나 손녀 같은 딸 하나 낳아보자.""시끄럽소. 이젠 틀렸소. 내 나이가 맻인데…이젠 염감 양기 받아봐야 헛일이오. 그나저나 불쌍한 걔덜, 시월(세월) 잘못 만나 생고생 한데이.""마, 지금쯤은 금오산 다 내려갔을 꺼구먼.""우예든동 저 부모한테 잘 돌아갔으믄 좋겠다.""내 보기에는 둘 다 디기 야무지더라. 가시나는 절에 가서 새우젖도 얻어먹을 게고, 머스마는 사막에서도 우물을 팔 녀석이더라. 아마도 걔들은 저거 집으로 꼭 돌아갈 끼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여기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들과 답사 길에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 본문과 사진이미지가 다를 경우 한국전쟁의 한 자료사진으로 봐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