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목원대학교
 목원대학교
ⓒ 오마이뉴스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필자는 20여년 전에 목원대에서 학교 부지를 불법으로 팔아 35억 원을 챙긴 이사장에게 항거하다가 재임용에 탈락한 교수다.

그러던 중 지난 2003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과 그에 따른 구제특별법 그리고 이에 근거해 설치된 특별위원회의 재임용 거부처분취소 결정과 행정소송, 민사소송을 거쳐 마침내 지난해 8월 대전고등법원에서 과거의 재임용 거부처분이 무효임을 확인받았다. 법원은 또 학교법인에 재임용 또는 정년까지 임금상당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학교법인으로부터 임금상당의 손해배상금으로 약 7억 원을 받게 됐다.

그런데 최근 법인 이사장과 현 목원대 총장이 10억여 원의 교비를 횡령한 혐의로 대전지방검찰청에 기소의견 송치됐다. 10억여 원 중에 필자에게 학교법인이 임금상당의 손해배상금으로 지급한 약 7억 원이 들어 있었다. 나머지는 다른 건설업자에게 지급한 손해배상금 및 여러 건의 변호사 비용이었다. 그 돈들이 교비에서 지출됐다는 것이다(관련기사 : 목원대 총장, 법정 서나... 10억 원 교비 횡령 혐의). 교비에서 지출된 만큼 이는 분명한 횡령이다.

손해배상금과 소송 비용, 학생 등록금으로 쓰다니

그런데도 대학 총장은 자신은 교비를 착복하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내용의 글을 학교 홈페이지와 언론매체에 퍼뜨리고 있다. 교비에서 지급된 비용 중 대부분은 필자와 관련된 소송에서 패소한 데 따른 인건비와 변호사 비용이라며 관례상 교수 관련 비용은 교비에서 지급해왔고 관련법에 근거해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한 교수는 동문회 회의 석상에서 '학교 주인이 제 돈 써서 돈 주고 소송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며 항변하다가 반발하는 동문들한테 쫓겨났다고 한다. 교무위원이라는 사람들도 한결같이 총장은 죄가 없다고 선언하여 성명서를 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지금 검찰과 경찰은 전혀 문제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 수사와 기소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총장과 보직교수들이 검경과 법원이 할 법적 판단을 미리 다 해버린 것이다.

누구 말이 옳은 것일까. 사립학교법을 모르는 일반시민들로서는 얼핏 잘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이를 설명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을 안타깝고도 곤혹스럽게 느낀다. 일부 사립대학의 총장과 이사장은 횡령하면서 뻔뻔해 하고, 보직교수들은 법과 원칙에 무식하거나 목구멍이 포도청이어서 입을 다물고, 그런 와중에 교육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들은 비싼 등록금 바치고 양질의 교육은커녕 제 몫을 도둑맞고 있으니 불쌍하기 짝이 없다.

먼저 최근 법원의 판단을 보자.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적지 않은 사립대 이사장과 총장들이 목원대처럼 법인의 소송비용 또는 손해배상금을 교비에서 지출한 혐의로 수사, 처벌 또는 소송 중에 있다.

몇 개만 예를 들면, 서남대학교 이사장 이아무개씨는 최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9년의 실형을 받았다. 대구지방법원은 교비를 소송비 등으로 횡령한 대경대 총장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였다. 학교 운영비를 재단의 소송비용으로 쓴 혐의(업무상 횡령)로 기소된 한영신학대 총장에게도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이 외에도 같은 혐의로 현재 수사 또는 재판 중인 사립대 이사장과 총장은 대구의 D대, 서울의 K대 등 십수 명에 이른다.

최근 법원 판단은? "분명한 횡령"

이 같은 흐름에 그간 분별없이 펑펑 돈을 써온 이사장과 총장 등 사립대학 경영자들 사이에서는 이제 학교 경영이 어려움에 봉착했다고 호소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예전처럼 함부로 돈을 썼다가는 형사 처분과 변상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간 사학경영자들을 곧 학교의 오너인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팽배해 있고, 그들이 교비를 써서 학교법인의 일을 해나가는 것쯤은 죄가 아닌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형사 처분으로 학교경영자들이 교비를 써서 학교법인이 법인이 물어야 할 손해배상금을 교비에서 쓰면 큰일 난다는 것을 각인하게 됐다. 대학 경영에 관하여 옳은 말, 곧은 소리를 내는 학교 구성원들, 특히 교수들의 입지도 확보되었다.

학교가 교수를 함부로 내쫓았다가는 소송을 당하고, 그럴 경우 그 소송비용은 반드시 교비가 아니라 법인의 예산으로 충당하여야 하는 만큼 학교당국은 교원의 해임 등에 좀 더 신중을 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경향이 대학에 민주화와 진실추구 능력을 복원하는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른바 반값등록금 운동이 사실상 물 건너가고 학부모들의 등골이 휘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등록금이 온전히 그들을 위한 직접교육 목적에만 쓰일 수 있도록 되어간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교비 부당사용 처벌은 '대학 자정기능 회복'

사립학교법은 사립학교를 설립·운영하는 학교법인(구체적으로는 이사장)이 법인의 예산과 학교의 예산을 구분하여 재산관리와 회계처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약, 교비를 법인의 예산과 혼동하여 쓸 경우에는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이사장과 학교의 장에게 업무상횡령의 죄가 적용되고 그 액수가 5억 원 이상일 경우에는 특정경제범죄처벌에 관한 법률로써 중형에 처해진다. 반드시 그 돈을 자기 사적인 용도로 착복해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용도가 특정된 재원을 그 용도 아닌 것에 쓰는 것 자체로써 이미 업무상 횡령죄가 된다는 것이 법원의 판례이다.

대학 안에서는 물론이고 밖에서도 교비를 법인 비용으로 써서는 안 된다. 이렇게 교비관리를 엄격히 하는 것은 교비란 주로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으로, 이 돈은 그들이 직접 교육을 받는 데에만 쓰라는 것이다. 비록 사립일지라도 교육기관은 국가를 대신하여 교육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등록금은 그들에게 교육이라는 특정목적을 위하여 위탁된, 즉 보관임무가 주어진 돈이다. 따라서 보관책임이 주어진 남의 돈을 함부로 다른 데에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 법의 취지다.

더 나아가 사립학교법과 형법이 이와 같은 교비횡령을 엄벌하여야 하는 이유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만약, 교비를 멋대로 써서 학교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것은 교육이라는 이름을 걸고 돈벌이를 잘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장려하는 셈이 된다.

교비로 부동산투기를 하든, 건물을 짓든 가능하도록 하면 이를 비난하고 따지는 구성원은 언제고 징계해도 좋다는 얘기가 된다. 징계당한 교수, 직원, 학생이 소송해오면 푼돈에 불과한 변호사 비용쯤이야 교비에서 간단히 덜어 쓰면 되니까 말이다. 이러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교수, 철모르는 직원이 아니고서는 감히 학교 경영에 끼어들겠는가. 함부로 덤볐다가는 수 년씩 걸리는 소송에 직장을 잃고 인생을 망치기 십상인데 말이다.

뒤집어 말하면, 대학운영자들에게 교비를 함부로 쓰지 못하게 규제하는 것은 바로 대학에 진실과 정의가 살아 숨쉬도록, 대학 구성원들이 스스로의 자정작용을 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중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최근의 경향은 이와 같은 자정작용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교비는 학생들의 몫이다

필자는 판결에 따라, 무노동 유보수의 희한한 신분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대단한 일을 한 것이 없다. 법률가로서 배운 대로 그리고 가르친 대로 실천에 옮겼을 뿐이다. 어렵게 대학교수가 되었으니 그 값을 하여야 한다는 생각은 기본이었다. 학생들에게 졸업 전에 뭔가 대단한 것을 안겨줄 수 없다면, 적어도 그들과 학부모들이 피땀 흘려 낸 등록금이 그들을 위한 교육목적에 온전히 쓰이도록 지키고 감시하는 것이 학교와 교수들의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사장 독단과 횡포에 맞서 학생들의 등록금을 지킨다는 것은 곧 교수직의 상실로 이어졌다. 그래서 20년 넘게 해직의 고통을 겪어왔다. 과거에 법원은 재임용 탈락한 교수에게 재판청구권마저 인정하지 않았다. 학교 맘대로 할 수 있으니 교수지위는 끝난 것이고 그래서 교수가 낸 청구는 더 볼 것 없이 각하한다는 것이다.

이러니 학교는 맘 놓고 자를 수 있고, 그러니 어떤 간 큰 교수가 잘릴 줄 알면서 덤비겠는가? 그래서 우리 대학들은 지난 30여 년간을 숨죽이고 살았다. 민주, 진보라는 이름을 쓰는 교수단체들도 그저 안 죽을 만큼만 목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그러던 중 지난 2003년 헌법재판, 특별법제정, 대법원 판결을 거쳐서 '살아 돌아오는' 예가 생겼다. 적어도 교수를 함부로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면, 마침내는 돌아온다는 신화 같은 것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신화는 이어진다. 말하고 글쓰는 교수가 늘어날 것이며, 교비는 온전히 학생들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목원대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