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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전 8시께,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김훈 작가가 나타났다. 신학용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과 한국출판인회의(회장 박은주)가 주최하는 '책 읽는 국회의원 모임' 자리였다.

6월 3일에 이어 두 번째 열린 이 행사에는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배재정 민주당 의원, 김제남 진보정의당 의원 등 의원 24명이 참석했다. 다음은 강연 내용에 근거해서 만든 일문일답이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김훈 작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김훈 작가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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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에 오니 어떤지, 어떤 얘기를 하실지 궁금합니다. 
"경기도 서해안에 있는 작은 섬에서 오늘 올라왔습니다. 지금 오랫동안 흙을 마주하고 살아서 말이나 이런 부분이 어두운데 좀 지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사실 많은 의원님들 앞에 나온 것은 처음이고, 의사당 안에 들어온 것도 처음이라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책을 읽은 결과를 가지고 말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슨 관념적 사유의 결과를 말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책을 아주 많이 읽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내 말은 매우 무질서하고 계통이 없을 것입니다. 내 머릿속이 질서가 없고 계통이 없고 뒤죽박죽인 것입니다. 저는 엉망진창이고 뒤죽박죽인 세상 안에서 글을 써야 되니까 내 머릿속은 계통이 없는 것이 맞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계통이 없는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정치가 멀리 떨어져있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은 어떠신지요. 
"저는 1948년생입니다. 제가 태어나던 해에 이 한반도 남쪽에서는 대한민국이 수립됐고 북쪽에서는 인민공화국이 수립됐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생애는 한국 현대사와 시기를 함께 합니다. 나는 새벽에 잠이 깨면 팔다리를 만져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아직도 살아있는 게 맞는지, 안 죽고 살아있는 게 너무나 눈물겨워서. 부끄러운 일이지만 가끔은 울기도 합니다.

제가 세 살 때 6·25전쟁이 났습니다. 피난민들이 개미떼처럼 붙어서 피난 열차를 타고 갔습니다. 8박 9일 동안 부산까지 갔습니다. 피난 열차 지붕에 붙어서 그렇게 가는 동안에, 기차 지붕 꼭대기에서 수많은 피난민들의 자식들이 떨어져 죽었습니다. 졸다가 죽고 바람에 날려 죽고 얼어 죽고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죽고, 기차가 터널을 지날 때 터널 천장에 늘어진 철근 구조물에 머리를 부딪쳐서 죽고. 나는 죽지 않고 부산까지 가서 그 나라의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기차에서 살아남은 많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 객실 안에는 우리나라의 고관대작들이 피아노를 싣고 세퍼트를 싣고 개집을 싣고 요강까지 싣고 내려왔답니다. 우리 아버지가 "너는 니가 어떤 나라에서 태어났는지 알아야 한다, 네가 세 살 때 너의 조국은 그런 나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에서 들어와서 그걸 확인하려고 그때 발행된 책을 모조리 읽었어요. 아버지의 말은 놀랍게도 사실이었습니다.

피난민들이 한 50km의 대열을 이루면서 보따리를 싸서 남쪽으로 가는데, 이 나라의 고관대작들은 군용차량을 증발해서 그 뒤에다가 호화가구를 싣고 갔다는 그런 기사가 있었고, 국방장관은 제발 그런 짓을 하지 말아달라고 성명을 발표한 그런 사실이 있었습니다. (중략) 그걸 읽으면서 나는 내가 태어난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비로소 알았습니다. 저는 세 살 때 태어난 이 나라와 지금의 조국이 얼마나 진화한 것인지, 얼마나 달라진 것인지를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나고 해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쓴 대부분의 글들은 이 세계의 야만성, 언어의 무내용함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서울 토박이인 나, 남대문을 정신 상직으로 여겼는데..."

- 강연 중에 숭례문(남대문) 방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17년 전에 일산으로 이사를 갔어요. 그때는 일산이 아주 허허벌판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전세방을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일산에서 제 방을 구했어요. 그때 많은 원주민들이 거기서 밀려났지요. 건설회사의 중장비들, 불도저들이 밀고 들어와서 마을을 부수기 시작했어요. 그 원주민들은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비닐봉지에 똥을 넣어가지고 와서 맞섰습니다. '일산똥탄'. 온 도시가 구린내로 진동했습니다. 일산은 그 당시 가장 빠르게 재개발이 됐다고 해서 해외신문에도 나고 그랬습니다. 나는 그 일산에서 최초로 내 집을 마련했습니다.

당시 원주민들은 토지보상을 받았지요. 그런데 그 분들 중에서 보상을 동의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보상이 필요 없다. 여기에는 미래에 대한 금액이 들어있지 않다. 나는 이 땅에서 내 자손들 데리고 천년만년 살 수도 있는데 정부는 시가만을 보상한다, 그러므로 나는 갈 수 없다.'

그런데 몇 년 뒤인 2008년 구정 때, 고향에 내려가 있다가 올라오는데 남대문에 불이 났다고 누가 그래요. 나는 서울 토박이라서, 남대문을 정신의 상징으로 여겼어요. 우리 마을의 랜드마크였습니다. 나는 남대문을 보면서 내가 고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남대문에 누가 불질렀다고 그래요. 나는 아침에 신문을 보고 그걸 알고, 무척 놀라서 택시를 타고 남대문에 가봤어요. 그런데 정말로 남대문이 잿더미가 되고 김이 무럭무럭 나요.

남대문에 불을 지른 사람은 일산 사람이었습니다. 일산에 살던 원주민이 토지보상에 불만을 품고 남대문에 불을 지른 거예요. 이 사람 주장에 따르면, 원래 토지 보상이 4억인데 토지 수용에 동의를 안 하니까 정부에서 공탁금 1억 원을 주고 불도저로 밀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고양시청, 구청, 청와대 민원실, 여당과 야당, 인권위원회 등에 갔지만 아무도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더랍니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진행이 된 거다, 라고만 얘기한 모양입니다.

이후에 남대문이 복구가 돼서 상량식을 여는데 정부 관리가 상량문 초안을 가지고 와서 저에게 다듬어달라고 하더군요. 서울토박이인 저는 남대문 상량문을 쓰면서 정말로 참혹했습니다. 몇 달 뒤 남대문이 복구가 다 돼서 거기서 큰 파티가 열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거기 오셨습니다. 그날 대통령은 참 모습이 좋아보였어요. 대통령은 그날 노란 저고리를 입고 오셨는데, 화사하게 웃고 계시더군요. 그런데 화사한 그 분은 남대문의 배후를, 왜 저렇게 됐는지를 알고 계실까 궁금했습니다. 나는 그 아름다운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심정이 매우 참담했어요. 가서 통곡을 하면서 얘기해주고 싶었어요. 이게 왜 이렇게 됐는지."

- 평소 현실 정치에 관해 얘기를 잘 안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용산 참사에 관해서도 언급하셨던데요.

"당시 남대문이 불탄 다음 해인 2009년, 저는 경기도 서해안에 있는 작은 섬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신문에 보니 용산참사라는 게 벌어졌다고 합니다. 진짜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여섯명이 죽었는데, 다섯 명은 농성하던 철거민이었고 한 명은 거길 진압했던 경찰이었습니다. 재판의 혐의는 특수공무집행방해에 따른 사망이었어요. 여섯 명이 죽었는데, 다섯 명은 철거민이고 한 명이 경찰관인데 재판은 그 경찰관 한 명만의 죽음을 이야기하더군요. 특수공무집행방해에 의한 사망사고. 나머지 다섯 명의 죽음은 논의되지 않는 거죠. 저는 법을 모르는 무력한 한 인간으로서 매우 의아하게 여겼습니다.

또 하나는 화재 원인에 대한 것인데. 재판의 주요한 핵심적 부분이 스파크를 어느 쪽에서 냈느냐. 경찰이 냈느냐 철거민이 냈느냐. 오직 스파크. 그런데 경찰은 그 안에 위험 물질이 가득찼고 고압 증기가 가득 찼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어떤 소방 진압장비 없이 진입한 거예요. 그 부분에 대해서 법원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어요. 나는 이 '아쉬움이 남는다'는 표현에 미칠뻔 했습니다. 그것이 아쉬움인가? 그리고 화인(火因)은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이라고. 법원의 판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초야에 있는 무력한 자의 시선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나중에 합의가 돼서 철거민들에 대한 보상이 진행됐습니다. 철거민 유가족들에게는 보상금을 주고,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재개발 함바식당 운영권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법치가 아닙니다. 불구덩이에 들어가서 화염병을 던지고 거기서 죽어서, 비로소 가족들에게 보상이라며 함바식당 운영권을 주는 게, 그것이 무슨 법치겠습니까? 그것은 정치도 아닙니다. 그것은 아무런 치가 아닙니다. 또 그런 사태가 나면, 우리는 또 화염병을 들고 불구덩이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대법원의 판결은 뭔가? 판결은 용산 사태라는, 개별적 사태에 대한 법원의 법률적 견해에 불과한 겁니다. 백성들은 보상 받으려면 또 화염병 들고 불구덩이로 들어가야 합니다.

나는 그런 것들을 볼 때, 우리 아버지가 얘기했던 피난 열차를 생각합니다. 야만성과 약육강식의 아비규환. 그것이 과연 지금은 얼마나 진화한 것인가, 나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편의점도 그렇습니다. 편의점은 대재벌기업에다 이익을 바치는 부속품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고 독자적으로는 절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약육강식, 우리는 이런 것들을 시장의 논리라고 하는데 그러면 개별적 국민들은 어딨습니까? 헌법에 보면 국민이 있다고 하는데 국민이 어딨는지, 국민이라는 거대한 군집 명사가 존재하기는 하는 건지 나는 의심이 드는 겁니다."

 '책 읽는 국회의원 모임'에 참석한 의원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책 읽는 국회의원 모임'에 참석한 의원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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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아침 8시께 시작한 강연은 9시쯤 끝났다. 강연에 참석한 도종환 민주당 의원은 "평소 김훈 작가는 역사 소설은 많이 쓰지만 현실 얘기는 안 한 것 같은데, 오늘 강연에서는 날카롭게 현실 인식을 드러내서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인들은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기 쉬운데, 김훈 작가처럼 개개인의 아픔을 보며 좀 더 날카로운 현실인식을 가져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훈#책읽는 국회의원#현실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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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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