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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식당에서 팀원과 가이드가 모여 회의를 하였습니다. 우리 팀 트레커는 다섯 명인데 가이드가 세 명, 포터가 네 명입니다. 함께 트레킹을 하자는 약속은 없었지만 어느 순간 한 팀이 되었습니다. 회의 주제는 내일 아침 출발 시간이었습니다.

새벽 4시 30분 출발

오전 11시가 넘으면 심한 바람 때문에 해발 5416m 쏘롱라를 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새벽 3시 30분에 기상하여 4시 30분에 출발하기로 결정하고 내일 아침 및 점심을 주문하였습니다. 묵티나트(3760m)까지는 9시간 이상 소요됩니다. 내일 아침 출발하면 목적지까지 점심을 먹을 로지가 없어 점심을 준비해서 출발해야 합니다.

새벽 4시 30분, 헤드랜턴을 켜고 출발하였습니다. 그믐 무렵이라 칠흑 같은 밤입니다. 가이드 꽁무니를 따라 한 줄로 걷습니다. 모두들 침묵 속에서 헤드랜턴의 불빛만 따라 갑니다. 추위와 매서운 바람 때문에 몸과 마음 모두 얼어붙습니다.

고도와 산소 고도에 따른 산소의 비중
▲ 고도와 산소 고도에 따른 산소의 비중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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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5000m의 고도는 평지에 비해 산소의 양이 50% 정도입니다. 부족한 산소 때문에 숨소리가 거칠어집니다. 모두들 가픈 숨을 내쉬며 기계처럼 발걸음을 옮깁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앞과 뒤에서 가느다란 불빛만 일렁이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기에 다른 사람을 배려할 여력이 없습니다. 

여명이 밝아오자 희미하게 사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멀리 쏘롱피크(6484m)의 하얀 봉우리가 보입니다. 푸른 하늘과 하얀 설산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모든 것이 정지된 느낌입니다. 정지된 화면 속을 작은 점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점은 쏘롱라를 향해가는 트레커의 모습입니다.

쏘롱라 가는 길 쏘롱라를 목전에 두고
▲ 쏘롱라 가는 길 쏘롱라를 목전에 두고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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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빛이 설산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아침 햇살이 얼어붙은 몸에 온기를 전해줍니다. 몸이 따스해지자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깁니다. 눈 앞에는 웅장한 설산의 파노라마가 펼쳐져 있습니다. 산과 하늘이 맞닿은 곳에 오늘 제가 넘어야할 쏘롱라(5416m)가 어렴풋이 보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 쏘롱라

오전 8시 20분, 드디어 쏘롱라(5416m)에 도착하였습니다. 쏘롱라에는 룽다와 타루초(불교의 경전이 적힌 깃발)가 물결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 마루에 도착하였습니다. 먼저 도착한 스페인 트레커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덕담을 나눕니다. 탈진과 고소로 서 있을 힘도 없지만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쏘롱라  5,416m 쏘롱라 정상에서
▲ 쏘롱라 5,416m 쏘롱라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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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롱라 표지석 쏘롱라 표지석 모습
▲ 쏘롱라 표지석 쏘롱라 표지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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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롱라 정상 표지석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안나푸르나 일주 트래킹에서 당신의 도전 중의 하나인 쏘롱라 고개의 성공적인 등정과 통과를 축하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마르샹디 강을 따라 마낭 지역에서 트래킹을 즐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칼리간타키 강을 따라 가는 트래킹 또한 즐기기를 바랍니다." - ACAP, MANANG

쏘롱라를 기점으로 전혀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다울라기리(8167m)를 중심으로 무채색의 산야가 눈에 들어옵니다.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척박함과 급한 경사 그리고 로지 하나 없는 트레일이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자연환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비롭습니다.

다울라기리 척박한 대지와 다울라기리
▲ 다울라기리 척박한 대지와 다울라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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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티나트까지 해발 1600m를 내려야 합니다. 조급함에 속도를 내자 가이드가 만류합니다. 고도를 급격히 올리면 고소증에 걸리는 것처럼 고도를 급격히 내려도 저소증이 걸릴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몸은 외부와 동일한 혈압을 유지하려고 압력을 높이기 때문에 그 순간 고혈압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히말라야든 인생이든 빠른 것 보다는 천천히 걷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양지바른 곳에 모여 준비해온 점심을 먹었습니다. 삶은 계란 하나, 짜파티(네팔 전통 빵) 두 장이 전부지만 트레커도 가이드도 맛나게 먹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가이드는 다울라기리와 무스탕에 대해 설명 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빨리 마을에 도착하여 쉬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묵티나트 저 멀리 묵티나트 모습이
▲ 묵티나트 저 멀리 묵티나트 모습이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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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롱라'를 넘어 '묵티나트'에

오후 두 시경 꿈에 그리던 묵티나트(3760m)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힌두교 사원과 불교 사원이 아무런 경계 없이 한 울타리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힌두 사원과 불교 사원이 하나로 어우러진 모습에서 종교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묵티나트 성지 힌두교 성지
▲ 묵티나트 성지 힌두교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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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티나트는 카트만두의 파수파티나트와 함께 힌두교 2대 성지 중 하나입니다. 묵티나트 동쪽 끝자락에 있는 '즈왈라 마이(Jwala mai, 불의 여신)'사원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있습니다. 이곳을 순례하면 현세뿐만 아니라 내세에서도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네팔뿐만 아니라 인도 사람들도 이곳을 순례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고 합니다.

묵티나트(3760m)에서 묵은 숙소 이름은 히말라야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자메이카 출신 레게 가수 이름을 딴 '밥 말리(Bob Malley)' 호텔이었습니다.

밥 말리 호텔

밥 말리 호텔 묵티나트 숙소 이름
▲ 밥 말리 호텔 묵티나트 숙소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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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말리(Bob Malley)는 카리브해 연안의 작은 섬나라 자메이카에서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의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사생아로 자란 그는 부모는 자신을 버렸지만 자신은 세상을 위해 노래한 뮤지션입니다.

그가 추구한 음악을 '레게'라고 합니다. 레게는 아프리카 음악과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를 조화시켜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에 암세포가 퍼져 죽음이 임박했을 때까지 노래로 사람들을 보듬고 위로하였습니다.

"음악으로써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깨우치고 미래에 대해 듣게 할 수는 있다."
"왜 그렇게 쓸쓸하게 보이는 거니? 하나의 문이 닫히면 하나의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잊은 거야?"

'밥 말리 호텔'의 낡은 스피커에서 'No Woman, No Cry', 'One World' 등이 흘러 나왔습니다. 로지 주인이 'Bob Malley' 팬이라고 합니다. 이미 지하에 묻힌 레게 가수가 히말라야 자락 로지에서 여전히 자신의 노래를 열창하고 있습니다.

로지 입구에 '24 Hours Running Hot Shower'란 문구가 있습니다. 전기 온수기가 달린 샤워장은 저를 황홀하게 하였습니다. 지난 6일 동안 샤워를 하지 못했습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나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하찮게 여겼던 많은 것들이 히말라야에서는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6일 만에 샤워를 하고 야크스테이크와 창(네팔 전통주)을 주문하였습니다. 이제 고소에 대한 두려움도 추위도 없습니다. 이제 며칠간 내려갈 일만 남았습니다. 일행들과 쏘롱라를 넘을 때의 무용담을 주고받으며 술잔을 주고받습니다. 이제 이번 트레킹에서 가장 큰 고비는 넘겼습니다.

저녁 숙소 2층 식당에 트레커, 가이드, 포터 모두가 모였습니다. 그동안 고생을 한 가이드와 포터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그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해발 5416m 쏘롱라를 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술과 음식과 웃음으로 묵티나트의 밤은 깊어 가고 있습니다.


#네팔#히말라야#안나푸르나#안나푸르나 라운딩#묵티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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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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