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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책표지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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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스물여섯 개의 짧은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어 펴낸 소설이다. 일상 속에서 포착한 이야기들을 따뜻하게 그려냈다. 신경숙 작가의 소설을 읽고 나면 언제나 마음이 착 가라앉고 우수와 슬픔이 덩달아 묻어나서 그 기분이 며칠 가곤 했는데, 이번에 새로 나온 이 책은 사뭇 달랐다.

깃털처럼 가볍고도 따뜻하고, 산들바람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삶의 희로애락이 묻어났다. 옆집 사람과 수다라도 떠는 것 같고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다. 지금까지의 소설과 다른 점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변화'다. 상쾌하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하고 익살스럽기도 하고... 어쨌든 어느 날 어느 순간, 작가 자신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고민의 날들 중에 나온 글들이리라. '작가의 말'에서도 그것을(단서를) 알 수 있다.

"오래 전 어느 밤, 동네 산책 중에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봤던 때가 있었다. 말간 밤하늘에 둥그렇게 뜬 달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끔 밤하늘은 바다처럼 보인다. 그런 날의 달은 망망대해에 혼자 어딘가로 밀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날 달이 어디 나만 내려다 봤겠는가... 그날도 누군가에게 달 좀 봐봐, 하려다가 멈추고 저 달이 지금 내게 뭐라는 거지?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달의 말은 무안하게도 글 좀 재밌게 쓸 수 없냐는 타박이었다...

(중략)...그 밤에 문득 나는 달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짧은 형식의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이었으면 하는 마음도 함께 일렁거렸다. 집에 돌아와 책상 위의 노트 한 켠에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고 써놓았다. 달이 듣고 함빡 웃을 수 있는 이야기, 달이 듣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이야기, 라고도."

'산다는 것,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일상의 순간들에 스며들어 꿈이 되고 사랑이 되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삶의 편린들이 모여 있다. 맨 처음에 등장하는 짧은 이야기, '아, 사랑한담서?'에서 첫 문장부터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 마을은 저 남쪽에 있다. 거기엔 이제 싸울 일이 없는 사람들만 모여 살았다. 봄이 와서 씨를 뿌리지만, 여름의 장마가 휘저어버리면 남은 것들만 수확해서 겨울을 간신히 나며 가만히들 살았다. 한때는 이백여 호가 모여 살아 어린애가 태어나고 늙은이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계절의 순환처럼 균형 있게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지금은 노인들만 남게 되었다.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떠났다. 다니지 않는 길이 많아졌고, 그 길들은 곧 수풀이 되어 새들이 내려앉곤 했다.

노인들은 서로 감자를 쪄서 나눠 먹거나 한집에 모여 밥을 지어 먹으면서 산이 푸르러지며 봄이 오는 모습을 보고 여름의 빗소리를 듣고 가을이면 움직여서 심은 것들을 추수하고 겨울을 맞았다. 눈이 퍼부으면 바깥출입을 삼가고 가끔 문을 열어 보았다. 겨울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어느 시간이든 그들에겐 똑같았다. 그렇게들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먼 산이 가만히 내려다보곤 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쓰는 편지>에서는 브레히트라는 시인이 쓴 시가 나온다.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나의 어머니'/브레히트)

작가(화자)는 이 시를 읽고 자신의 어머니를 회상한다. 고교 졸업 후 먼 객지로 나가 살게 된 후 종종 자주 찾았던 고향집, 어머니와 좀 더 늦게까지 붙어있고 싶어서 막차인 밤 11시57분 상행선 열차를 타고 올라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배웅 나와 주었던 어머니의 배웅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는 것을 그 시를 읽으면서야 불현듯, 거의 삼십년 만에야 떠올린다.

어머니는 혼자서 역을 빠져나가 그 산길과 논길을 걸어 십리는 떨어진 마을까지 어떻게 갔을까. "삼십 년이 다 지나" 찾아온 질문은 벼락같은 것이었다고... "단 한 번도 어머니가 그 밤길을 어떻게 돌아갔을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걸까. 전에도 이 시를 읽었지만, 무심코 지났었다고... 그 이유는 '그때는 나의 어머니가 아주 젊은 분이었기 때문'이라고 쓴다.

시인 브레히트가 이 시를 쓴 것도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였다. 내남없이 사람은 그 어떤 특정 시기나 사건 없이는 깨달을 수 없는 것이 있기 마련인가 보다.

"세월이 흘러가고 나도 이 도시에 나의 삶을 갖기 시작했죠. 나의 삶이 새로 생긴 나의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어머니가 계시는 그곳과는 몸도 마음도 멀어졌지요. 처음 어머니 곁을 떠나오던 그때처럼 시간만 나면 어머니가 계시던 곳으로 향하던 마음도 옛일이 되었지요. 그러다가 오늘 아침, 브레히트의 시를 읽는 순간에 그때 어머니가 어떻게 집에 돌아갔는지 처음으로 생각하게 됐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동안 한 번도 어머니가 그 밤길을 어떻게 돌아갔을 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까요.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새삼스런 깨달음과 어머니를 향한 뒤늦은 후회가 남아 이렇게 모르는 당신께 메일을 쓰고 있습니다. 정말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요."(103페이지)

지금까지 읽었던 신경숙 작가의 소설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와 닿는 짧은 소설들을 가볍고 따뜻하고 유쾌하게 읽었다. 밝아진 그녀의 글을 접하는 것, 변화가 있는 글이 참 반가웠다. 작가의 의도된 작은 변화는 성공적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상쾌함과 신선함을 안겨주었으니 말이다. 나도 아는 이든 모르는 이든, 모처럼 맘속에 차오른 이야기들을 편지 쓰듯 써 보내고 싶어진다. 다시 한 번 작가의 말을 들려주며 글을 맺는다.

"달에게 먼저 전해진 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이 가능하면 당신을 한번쯤 환하게 웃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봄날 방을 구하러 다니거나 이력서를 고쳐 쓸 때, 나 혼자구나 생각되거나 뜻밖의 일들이 당신의 마음을 휘저어놓을 때, 무엇보다 나는 왜 이럴까 싶은 자책이나 겨우 여기까지? 인가 싶은 체념이 당신의 한순간에 밀려들 때, 이 스물여섯 편의 이야기들이 달빛처럼 스며들어 당신을 반짝이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신경숙 짧은 소설| 신경숙 (지은이) | 문학동네 | 2013년 3월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신경숙 짧은 소설

신경숙 지음, 문학동네(2013)


태그:#신경숙, #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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