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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10일 제주도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건너편 양윤모감독을 비롯해 구속된 4명의 평화활동가의 석방을 요구하는 의미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꽃다지 출신 가수 조성일씨가 노래를 하고있다.
지난 5월 10일 제주도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건너편 양윤모감독을 비롯해 구속된 4명의 평화활동가의 석방을 요구하는 의미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꽃다지 출신 가수 조성일씨가 노래를 하고있다. ⓒ 조남희

지난 5월 10일 밤,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건너편에서는 마을 주민과 활동가들이 모여서 조촐한 문화제를 열었다. 영화평론가 양윤모 감독의 구속 수감 100일째를 맞아 그를 포함한 4명의 구속된 활동가의 석방을 요구하는 촛불문화제다. 제대로 나오지 않는 마이크와 성능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앰프, 앞에 선 사람을 겨우 비추는 조명 등이 전부인 문화제. 그 아래에 그들은 조용히 모여 있었다. 누군가 기타를 들고 노래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노래가 끝나면 박수를 쳤다.

제주의 5월 밤공기는 서늘했고 은은한 꽃향기가 가득했다. 노래하는 이는 작년 5월부터 제주도에 살고 있는 민중음악그룹 꽃다지 출신 가수 조성일씨다.

"이 노래는 '망치와 칼날'이라는 제목입니다. 준비하고 있는 제 솔로앨범에 수록될 노래고요. 망치는 노동을, 칼날은 판단을 상징합니다. 자본에게 빼앗긴 노동과 판단을 원주인이 돌려받아 옳지 못한 것들을 내려치자는 의미의 가사입니다."

강정마을에서 그를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은 아니었다. 작년 말에 강정마을에서 해맞이기원제가 열렸을 때도 그는 노래하고 있었다. 그때도 마이크가 좋지 않아 MR반주에 의지해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그를 이렇게 제주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작년 이맘때쯤부터 제주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보다 두어 달 먼저 내려온 셈이다.

"언니, 근데 조성일씨가 언니랑 같은 하원동 아파트 산대요."
"어머 웬일이니~ 나 꽃다지 완전 팬인데.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걸~"

연말 문화제에 함께 갔던 도민 선배는 심지어 그와 같은 아파트 동에 살고 있다는 걸 듣고 놀라며 그의 노래를 열심히 따라 불렀다. 그 꽃다지 가수가 제주도에 살고 있었다니... 서울보다 공연 기회도 많지 않을 이곳에, 왜?

그 꽃다지 가수가 제주도에 살고 있었다니...

잠시 꽃다지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을 되살려보면, 필자는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에 대학을 다니지도 않았고, 학내 재단비리 사태로 인한 집회에나 겨우 얼굴 들이밀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학내에 울려 퍼지던 '바위처럼','불나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등의 노래와 함께 집회를 하던 기억이 있다. 종종 서울의 집회 현장에서 가슴을 쿵쿵 울리던 앰프에서 터져 나오던 그들의 노래를 듣던 기억도 있다.

귓가를 때리던 그들의 노래는 어느새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잊혀진 지 오래였지만, 꽃다지는 이십 년이라는 세월동안 현장을 찾아다니며 대중과 함께했다. 대추리에서, 매향리에서, 새만금에서, 기륭전자에서, 용산참사 현장에서 그들은 언제나 노래하고 있었다.

그 꽃다지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가수 조성일씨를 제주도에서 두 번째 만난 날, 그는 제주 전교조 교사들이 초청한 공연을 마친 후 강정으로 달려온 길이었다. 노래를 마친 후, 하원동인 그의 집과 내 집인 대평리에서 멀지 않은 중문에서 만났다. 둘 다 서귀포하고도 꽤나 남쪽에 살다보니, 집 근처에서 사람을 만나 소주잔을 기울일 일이 별로 많지 않았다. 겨우 찾은 선술집에서 알탕과 소주 한 잔을 어색하게 마주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 쉬고 싶었어요. 우선, 지금까지 제대로 된 쉼이 없었거든요."

조성일씨는 대학 재학시절 민중노래패 동아리에 우연찮게 몸담게 된 후 98년 꽃다지 멤버가 되어 15년을 노래해 왔다. 꽃다지 핵심 멤버로 활동하던 그에게 4년 전 어느 날, 거울을 보면서 날 것 그대로의 자신을 보았다고 한다.

"부끄러웠어요. 음악적 성과도 없는 것 같았고. 그렇게 노래를 해왔는데도 무대에 서는 게 갑자기 두려워 지더라고요."

스스로 날 선 잣대로 자기를 들여다본 후, 더 이상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게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쉴 수가 없었다. 거리공연을 비롯해 현장을 찾아가는 공연을 하다 보니 하루에도 몇 개씩 있는 공연들로 녹초가 되었고,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였지만 병원을 오가면서도 2011년 말 꽃다지 4집 녹음을 마쳤다.

대중과 평론가의 좋은 평가를 받았고, 앨범 중 4곡이 그의 자작곡이었던 만큼 음악적으로도 개인적으로 중요한 시기였다. 음악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시도가 성과로 이어져 가야 할 상황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면서 꽃다지 멤버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마침표를 찍기로 했단다.

20주년 기념콘서트를 마지막으로...

작년 5월 3~4일 홍대 인근 상상마당에서 있었던 꽃다지 20주년 기념콘서트를 마지막으로 꽃다지 멤버로서 노래를 불렀지만, 솔로가 된 조성일씨와 꽃다지는 지금도 좋은 동행을 하고 있다. 자신을 이해해주었던, 서로를 도와주고 응원해주는 멤버들을 그는 많이 그리워한다. 솔로 앨범 녹음 작업을 위해서 서울을 찾으면 녹음 일정을 조금 미루고 멤버들부터 찾는 그다.

"논산이 고향이에요. 오십대쯤 되면 귀촌할 생각이 있었어요. 조금 당겨진 셈이죠. 서울에 오래 살았는데도 항상 낯설게 느껴지더라고요. 내 집에 있어도 하숙하는 느낌이랄까요?"

이쯤에서 해야 할 질문이 있었다.

"서울이 낯설고 피곤하고 그랬던 건 이해하는데, 근데 왜 하필 제주도였나요?"

그와 제주도의 인연을 이어준 것은 어찌 보면 일본 오키나와 섬이다. '오키나와 평화대행진'에서 꽃다지 공연을 위해 오키나와라는 섬에 가보게 된 그는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와 예술이 살아있는 오키나와에 반했다. 아름다운 섬 오키나와에는 미군기지 문제가 있었고, 기지 철수를 요구하며 그 곳에서 살고 있는 각국에서 온 지킴이들이 있었다.

오키나와에 잠시 살면서 그들과 함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다 결혼 후 아내와 잠시 여행 온 제주도에서 오키나와를 보게 됐다. 오키나와와 제주도는 자연과 문화, 역사적으로 비슷한 면이 있다. 그는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문제를 보면서도 오키나와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 전에 제주도에 가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꽉 짜인 공연 일정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비행기 타고 서울로 돌아오기에 급급했던 터라 제주도를 제대로 느껴볼 여유가 없었다.

'숨 좀 트이자'며 다시 찾게 된 제주도에서 '한번 살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제주도에서 살아보겠다고 결심했지만, 살 집을 구하는 것부터 쉽지가 않았다. 제주도에는 집중적으로 이사하는 기간인 '신구간'이라는 것이 있다. 보통 이 기간이 시작되기 전에 집을 알아보고 기간 내 이사를 끝내는 것이 제주도 지역적 관습이다. 하필, 이 시기에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꽃다지의 큰 공연을 잡았다. 어쩔 수 없이 공연을 마치고 부랴부랴 내려오니 신구간이 끝났다. 2월에 제주도로 내려와 보니 연세나 전세를 얻을 만한 마땅한 집이 없었다.

'숨 좀 트이자'며 다시 찾게 된 제주도에서 '한번 살아보자' 생각

 서귀포 남원 위미에 있는 그의 작업실 앞에서 조성일씨.  마을안 감귤밭 옆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작지만 오롯이 그만의 음악작업에 매진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서귀포 남원 위미에 있는 그의 작업실 앞에서 조성일씨. 마을안 감귤밭 옆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작지만 오롯이 그만의 음악작업에 매진할 수 있는 공간이다. ⓒ 조남희

포기하고 우선 올라가려던 차에 우연히 서귀포 중앙로터리의 한 부동산에 전세 아파트 광고가 붙어있는 것을 보고 바로 계약했다. 그가 얻은 하원동의 아파트 위치를 가만 보니 강정마을 옆이었다. 조용히 강정포구에서 있던 촛불 집회에 가있던 중 한 평화활동가가 그를 발견했다.

"내일 평화활동가대회가 있는데 노래를 해 주실 수 있냐"고 대뜸 부탁했고, 강정에서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좀 더 적극적 의미에서의 연대하고 싶지만, 아내와 아이가 있는 가장인 터라 자신이 제일 잘하는 것으로 연대하기로 했다. 강정에서 자신의 노래를 원할 때는 언제라도 달려가는 것이다. 강정의 상황을 알기에 보수도 받지 않는다. 강정에서 공연 요청하는 섭외자에게도 그는 미안해하지 말라고 말한다.

어렵게 얻은 하원동의 집이 강정 바로 옆이었던 것은 강정과 인연이 깊은 것이라 생각한단다. 그래서 "강정 전속 가수가 아니냐"고 필자가 말하자 그런 표현은 너무 부담스럽다며 더 많은 힘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미안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제주가 좋아 살게 됐지만, 생활인으로서 아내와 아이가 있는 가장으로서 제주에서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다.

평일에는 서귀포 남원의 어린이집에서 차량 운전 일을 하고, 미술치료를 공부한 그의 아내는 초등학교 상담교사를 한다. 5살 아들도 있다. 서울에서 꽃다지로 활동할 때도 생계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지만, 제주도에 연고 없이 내려오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 즉 일자리 구하기라든지 집구하기 등의 어려움을 그도 역시 겪는 것이다.

다행히 제주도로 공연 왔던 당시 꽃다지의 팬으로 반겨주었던 모 단체 노조에 있던 도민이 지금의 일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운전을 하지 않는 시간과 주말에는 어린이집 근처에 얻은 농가주택에서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노래를 부르고 앨범을 준비한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농가이다 보니 서울처럼 소음에 신경 쓰지 않고 맘껏 노래할 수 있다며 자랑이다.

그는 요즘 올해 7월 말 선보일 계획으로 자작곡으로 채운 10여 곡의 첫 솔로 앨범 준비에 열심이다. 그가 하고 싶은 음악은 음악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채워진 것. 현장에서도 통하고 누구나 일상적으로 들으면서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음악이다. 이런 생각은 그가 꽃다지 초기 활동서부터 해왔던 것이기도 하다. 제주에 와서 그의 생각과 고민이 구체화되고 음악에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생각지 못한 많은 기대와 응원과 함께 첫 솔로 앨범 제작비를 위한 후원 모금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15년 활동을 하는 동안 감사를 제대로 몰랐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 마음이 구체적으로 다가와요. 두고두고 좋은 음악으로 갚아야죠."

제주도에 살면서, 가끔은 현실적 문제의 압박에 눌려 마음이 답답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그는 오름과 바다로 간다. 집에서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도 만날 수 있는 제주의 푸른 바다를 보면서 마음을 비운다. 직장인 남원의 위미항 쌍둥이 등대 앞에 앉아 바다를 보면서도 좁아져 있던 자신을 보게 된다. 그는 자신을 다독여주는 그런 제주도가 좋다.

환상적이었던 꽃다지 멤버들의 팀워크가 그리운 만큼...

"제주도에서 살면서 이건 좀 힘들다, 이런 건 없어요? 예를 들면 외롭다든지? 저는 좀 그렇던데요?"
"아무래도 그게 있죠. 생활적인 불편함은 잘 모르겠어요. 그런 건 익숙해지는 거니까. 문화적, 음악적인 이야기를 마음껏 할 벗이 별로 없어요. 아직, 힘들 때는 소주 한 잔하고 풀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고요. 그러니 우리 가끔 봅시다."

환상적이었던 꽃다지 멤버들의 팀워크가 그리운 만큼, 그는 제주도에서 마음이 맞는 이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 다양한 문화와 예술에 대해 도민들이 욕구를 갖고 있지만, 아직 육지만큼은 여건이 되어 있지 않은 제주도의 문화판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는다. 작년 1월 말 제주시 문화카페 '좋은날 좋은소리'에서 열린 릴레이 콘서트에서 공연했을 때 자신의 노래를 듣기 위해 찾아온 청중들을 보며 가능성을 느꼈단다. 5살 아이가 자신보다 능숙한 제주말로 호통을 친다며 흐뭇해하는 것을 보며, 그가 제주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걸 느낀다.

"사람 일이야 어찌될지 모르는 거지만... 가능하면 제주도에 정착하고 싶어요."

제주도에 와서 황폐화되어있던 감성이 살아나는 것을 느낀다는 그의 첫 앨범이 어서 듣고 싶은 마음이다. 강정마을을 비롯해 제주도 곳곳에서 그리고 육지의 어느 곳이든 그를 원하는 현장에서 제주도에서 충전된 그의 에너지 가득 찬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조성일씨의 노래를 듣고있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모습이다.
조성일씨의 노래를 듣고있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모습이다. ⓒ 조남희



#제주도#꽃다지#강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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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는 서울처녀,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http://blog.naver.com/hit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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