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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출입하는 정치팀 이승훈 기자가 기사에서 미처 풀어내지 못한 청와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이승훈 기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미국 순방에 동행해 취재했습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 미국 방문 기간 중 대사관 여성인턴 성추행 사건으로 경질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 하림각에서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은 사건 발생 후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이 "성희롱에 대해서는 변명을 해봐야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귀국을 지시해 따랐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자신은 여성 인턴에게 격려 차원에서 허리를 '툭' 쳤을 뿐 문화적인 차이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 "격려차원에서 툭 쳤을 뿐" 윤창중 전 대변인 박근혜 대통령 미국 방문 기간 중 대사관 여성인턴 성추행 사건으로 경질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 하림각에서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은 사건 발생 후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이 "성희롱에 대해서는 변명을 해봐야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귀국을 지시해 따랐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자신은 여성 인턴에게 격려 차원에서 허리를 '툭' 쳤을 뿐 문화적인 차이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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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창중 참사'의 전조

미국 워싱턴 현지 시간으로 7일 오후 2시 30분, 한국 시간으로는 8일 오전 3시 30분경이었을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 미국 순방의 하이라이트였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끝나고 난 뒤였습니다.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렸던 두 정상의 공동기자회견까지 취재를 마치고 청와대 수행단과 취재진은 프레스센터가 차려진 페어팩스 호텔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약 8시간 후 여성 인턴 성추행 의혹에 휘말리게 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도 물론 이 자리에 있었죠. 점심 메뉴는 한식과 미국식이 섞인 뷔페 형태였습니다. 접시에 음식을 덜어 담다가 식사를 하러 온 윤 전 대변인과 마주쳤습니다. 기자들이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며 "수고하셨다"고 덕담을 건네자 그는 "이제 다 끝났어, 그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라며 큰 짐을 덜었다는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정상회담이라는 큰 고개를 넘었다는 생각에 긴장을 너무 많이 풀어버린 탓이었을까요. 목격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그날 저녁 윤 전 대변인은 '오늘이 생일인데 외롭다'며 여성 인턴과 와인을 마셨고 결국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미국 순방 첫 방문지였던 뉴욕에서만 해도 윤 전 대변인은 자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뉴욕 맨하탄 한인타운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는데요, 여기서 그는 가벼운 반주 수준의 음주만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정상회담 전날 저녁 호텔 로비에서 함께 흡연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는 나눴다는 기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정상회담 성공에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내비쳤고 긴장하는 모습도 보였다고 합니다.

윤 전 대변인이 미국 순방 중 매일 술을 먹고 자기 관리를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적어도 정상회담 전만큼은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청와대가 정상회담 성과를 자축하며 긴장의 끈을 놓아버린 순간 사상 최악의 사고는 시작됐습니다. 그날 점심 호텔에서 윤 전 대변인이 보여줬던 홀가분하다는 표정이 결국엔 전 세계적으로 망신을 산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의 전조였던 셈입니다. 방미 전 국내에서부터 음주 사고가 우려됐던 윤 전 대변인이었기에 사전 예방 노력이 부족했던 청와대의 책임도 가볍지 않은 것이겠지요.(관련기사 : "술 먹고 사고칠까 걱정했는데"...청와대 인책론 확산)

#2. 윤창중의 거짓말

사건 발생 후 성추행 과정, 또 윤 전 대변인의 귀국 과정을 둘러싸고 여러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일부 사실로 확인된 것들도 있고 '카더라' 수준의 설들도 회자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윤 전 대변인이 피해 여성에게 어떤 식의 성폭력을 휘둘렀는지 밝히는 것은 이제 일차적으로는 미국 사법당국의 몫이 됐습니다.

하지만 지난 11일 윤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에서 나왔던 명백한 거짓말은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여성 인턴에게 "욕설을 하거나 심한 표현을 한 적이 없다, 저는 그런 인간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기자회견 다음 날 만난 청와대 관계자는 "자기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기자회견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저런 치명적인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깜짝 놀랐다"고 하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청와대 기자실에는 윤 전 대변인에게 술자리에서 욕설과 폭언을 들었다는 기자들의 증언(?)이 쏟아졌습니다. 윤 전 대변인이 워싱턴 현지에서 쏟아낸 폭언을 들은 기자도 있었습니다.

현지 시간으로 8일 오전 6시경 호텔 출입문에 윤 전 대변인이 나타났습니다. 시간상으로 보면 그가 "피해 여성을 호텔 방으로 불러 알몸 상태로 맞이한" 직후입니다. 그와 함께 담배를 피웠다는 기자와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윤 전 대변인은 자신에게 모닝콜을 해주지 않았다며 "청와대 X들이든, (워싱턴 한국)문화원 X들이든 모두 XX버리겠다"며 분노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그러니 윤 전 대변인이 "저는 그런 인간이 아닙니다"라고 한 것은 둘 중 하나입니다. 그의 연기력이 정말 칸영화제 남우주연상감이거나, 아니면 과도한 음주로 필름이 끊긴 상태여서 정말 자기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3. 고생하고도 '멘붕' 빠진 홍보수석실

박근혜 대통령 미국 방문 기간 중 대사관 여성인턴 성추행 사건으로 경질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 하림각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은 사건 발생 후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이 "성희롱에 대해서는 변명을 해봐야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귀국을 지시해 따랐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자신은 여성 인턴에게 격려 차원에서 허리를 '툭' 쳤을 뿐 문화적인 차이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 고개 숙인 윤창중 전 대변인 박근혜 대통령 미국 방문 기간 중 대사관 여성인턴 성추행 사건으로 경질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 하림각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은 사건 발생 후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이 "성희롱에 대해서는 변명을 해봐야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귀국을 지시해 따랐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자신은 여성 인턴에게 격려 차원에서 허리를 '툭' 쳤을 뿐 문화적인 차이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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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순방 도중 기자들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동고동락한 청와대 참모들은 홍보수석실 사람들입니다. 이번 순방에는 이남기 홍보수석, 최상화 춘추관장 등 13명의 홍보수석실 요원들이 동행했습니다. 이들은 방미 기간 내내 기자들 취재 지원과 프레스센터 관리 등 궂은일을 도맡아 했었죠. 돌아가면서 24시간 당직을 서고 다음 날이면 침대에 눕지 못하고 다시 기자들과 함께 대통령 참석 행사 현장으로 달려가는 게 다반사였습니다.

특히 이번 방미에서는 동행한 일부 기업인들이 고생한 수행단에게 밥을 사는 관행도 없앴습니다. 허태열 비서실장의 지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윤 전 대변인이 저지른 초대형 사고로 방미 기간 중 침대에 누워보지도 못한 채 일하고 또 일했던 청와대 참모들은 허탈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야당으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방미 성과는 온데간데 없이 날아가버렸습니다. 그뿐 아니라 지금 민정수석실에 줄줄이 불려가 방미 기간 중 기강 해이는 없었는지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그들의 고생을 곁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안쓰러움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일까요? 귀국 후 홍보수석실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렸습니다. 귀국 직후 나왔던 이남기 홍보수석의 '셀프 사과' 논란 등은 다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 수석의 사과에 이어 12일 허태열 비서실장의 두 번째 사과가 있던 날, 허 실장과 기자들에게 사전에 배포된 사과문이 원래 발표하기로 했던 버전이 아니었던 겁니다. 꼭 들어가야 할 일부 내용이 빠진 미완성본이 허 실장에게 전달됐고, 그는 즉석에서 '이남기 수석이 사의를 이미 표했다'는 내용만 추가해 기자회견을 마쳤습니다. 결국 빠진 내용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추가하는 것으로 정리됐지만 허 실장은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하느냐"고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합니다.

무리한 브리핑 계획도 기자들에게 원성을 샀습니다. 허 실장의 사과를 기점으로 청와대는, 한쪽에서는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시인 내용을 흘리고 한쪽에서는 방미 성과를 집중 부각하겠다는 계획을 짠 것으로 보입니다. 청와대는 12일 오후 외교안보·경제·미래전략 수석이 함께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방미 성과에 대한 브리핑을 한다고 알렸습니다.

하지만 '윤창중 사태'에 대한 취재와 기사 작성에도 손이 부족한 기자들은 '나중에 하자'며 거부했습니다. 결국 주철기 외교안보수석만 기자실을 잠시 찾아 미 국무부 관리들이 내놓은 박 대통령 등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 등을 알려준 후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화요일에는 조원동 경제수석이, 수요일에는 최순홍 미래전략 수석이 차례로 찾아와 방미 성과 관련 간담회를 개최하고 있지만 기대만큼 언론 지면에 반영이 되고 있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방미 성과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청와대의 안타까움은 이해가 가지만, 심각한 상황에 비해 청와대의 인식이 너무 안이했던 판단 착오였습니다.

#4. '제2의 윤창중 방지' 매뉴얼에 담아야 할 핵심은?

한마디로 이번 사태는 청와대로서는 '재앙'이라고 할 만합니다. 물론 재앙의 씨앗을 뿌린 것은 모든 반대 여론을 묵살하고 윤 전 대변인을 '간택'한 박 대통령입니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의 뜻을 밝힌 후 줄곧 공직기강 확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비판을 받았던 자신의 '불통 인사 스타일'을 이번 기회에 한번 돌아보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그래야 공직기강을 세우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영이 설 테니까요.

현재 청와대는 이번 미국 방문 전 과정을 재점검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제2의 윤창중 사태'를 막을 매뉴얼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청와대가 만들고 있는 매뉴얼의 제1장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할까요? 방미 과정뿐만 아니라 정권 초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았던 '인사 파동'의 전 과정에 대한 재점검과 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윤창중 사태'는 언제고 다시 재발할 수밖에 없다는 게 상식적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태그:#박근혜, #윤창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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