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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갑자기 변했습니다. 어제까지 여름 날씨였는데 오늘은 겨울 날씨입니다. 황급히 겨울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트레일 주위는 며칠 전 내린 눈으로 빙판입니다. 제가 가야할 쏘롱라(5416m)는 얼마나 눈이 쌓였을까 걱정됩니다. 하루 사이에 계절이 두 번 바뀌었습니다. 춘하추동이란 자연의 이치는 지역에 따라 다른 모습인 것 같습니다.

트레킹 적기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기 가장 좋은 계절은 봄과 가을입니다. 봄에는 화창한 날씨와 각양각색의 꽃이 사람을 유혹합니다. 가을은 우기가 끝난 뒤라 녹음이 울창하고 공기가 상쾌하며 시야가 뛰어납니다. 반면에 겨울은 추위와 폭설 때문에 트레커들이 기피하는 계절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겨울철을 선호합니다.

네팔에서는 겨울철을 "Korean Season"이라고 부릅니다. 그 주축은 교사입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금전보다 시간적 여유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직장인 중 트레킹을 위해 10일 이상 휴가를 낼 수 있는 직장은 교사를 제외하고 극히 적습니다. 최근 히말라야에서 만난 사람에게 "무엇을 하세요?"란 질문 대신에 "어느 학교에 계세요?"라고 하면 십중팔구 정답입니다.

한적한 숲길
▲ 숲길 한적한 숲길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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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파니 끝자락에 있는 체크 포스트에서 팀스(Tims)와 퍼밋(Permit)을 등록하였습니다. 오랜만에 일거리가 생긴 근무자는 신이 났습니다. 제 인적사항을 명부에 기재하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합니다. '어디서 왔냐?', '트레킹 기간은?', '직업은?'그리고 가장 관심 있는 '월수입' 까지 묻고 또 묻습니다.

다라파니 체크포스트 안내판
▲ 체크포스트 다라파니 체크포스트 안내판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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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도 여행자들의 왕래가 많아지면서 물질이 사람을 평가하는 척도가 된 것 같습니다. 한 달 수입이 행복과 불행의 잣대가 아님에도 네팔리들의 가장 큰 관심은 제 한 달 수입이었습니다. 그들이 부자 나라(?)에서 온 저를 부러워하듯이 저 역시 풍요로운 자연 환경에서 사는 그들이 부럽습니다.

추운 날씨와는 달리 하늘은 쪽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잣나무와 전나무가 우거진 밀림 지대를 걷습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경관은 더 아름다워지고 있습니다. 완만한 경사를 천천히 걷고 있자니 그동안 눈에 들어오지 않던 많은 것들이 느껴집니다. 혼자 걷는 히말라야에서는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오감으로 느껴야 할 것 같습니다.

티베트 사람들의 종교와 생활

마을 어귀에는 형형색색의 룽다(Lungda)와 마니차(Mani Wheel)가 트레커들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룽다'란 바람이란 의미의 '룽'과 말(馬)이란 의미의 '다'의 합성어입니다. 룽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히말라야의 바람을 타고 세상 곳곳에 퍼져 모든 중생이 고통이 없는 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기원이 담긴 것이겠지요.

'마니차'는 원통 모양의 종으로 마니차를 시계 방향으로 한 번 돌리면서 진언을 외우면 경전을 한 번 완독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티베트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는 다양한 형태의 마니차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종교가 생활 속에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룽다와 마니차 모습
▲ 마니차 룽다와 마니차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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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망(2510m)에서 점심을 주문하였습니다. 겨울철 비수기라 로지에는 저 혼자입니다. 오랜만에 손님을 만난 주인아주머니는 환한 미소로 트레커를 맞이합니다. 주문을 받은 후, 화덕에 불을 지피고 난 뒤, 로지 옆 텃밭에서 채소를 따옵니다. 저는 등산화를 벗고 편한 자세로 자리에 눕습니다. 음식을 재촉한다고 빨리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휴식을 취합니다.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 아이들..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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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 주위에서 마을 아이들이 썰매를 타며 놀고 있었습니다. 썰매를 끌어주고, 바닥을 뒹굴며 노는 모습이 제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남루한 옷에 장남감도 없었지만 아이들의 얼굴에선 웃음이 그칠 줄 모릅니다. 행복과 불행의 잣대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풍요롭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겠지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서 히말라야를 보는 것 같습니다.

동행을 만나다

코토(2640m)에서 진주에서 오신 선생님 두 분을 만났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창(네팔 전통 술)을 한 잔 나누는 것으로 동행이 되었습니다. 저와 동년배의 선생님들은 몇 번의 트레킹 경험이 있으며 지리산을 자주 찾는다고 합니다. 트레킹을 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지만 두 분 선생님은 트레킹이 거의 끝날 때까지 동행이 되었습니다. 사전에 약속없이 히말라야를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억만 겁의 인연입니다.

새롭게 만난 일행과 함께
▲ 일행 새롭게 만난 일행과 함께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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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는 일행이 함께하지만 산은 혼자 걷습니다. 제각기 자신의 체력과 의지대로 걷기에 한참을 걷다 보면 일행은 보이지 않고 혼자 걷게 됩니다. 같은 산을 걷지만 사물과의 교감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걷는 곳이 히말라야입니다. 더구나 이번 트레킹은 해발 5416m를 넘어야 하기에 체력과 고소에 대한 적응력을 길러야 합니다. 

차메(2670m)에 도착하였습니다. 차메는 람중 히말라야에서 규모가 큰  마을로 병원, 찻집, 학교 그리고  PC방 등 많은 편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더구나 마을 입구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안나푸르나Ⅱ(7937m)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안나푸르나Ⅱ의 모습은 히말라야 라운딩 트레킹에서도 몇 번만 볼 수 있습니다.

차메 입구 모습
▲ 차메 차메 입구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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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까마득한 절벽 아래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불안한 마음 가득하지만 가이드와 포터는 태연한 모습입니다. 히말라야를 걷다 보면 눈사태나 산사태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마을 터를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이곳도 우기라면 목숨을 신에게 담보해야만 잘 수 있는 곳 같습니다. 숙소 결정은 가이드가 하기에 가급적 참견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물 한 양동이로...

숙소에는 'Hot Shower"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곳은 태양열을 이용하여 온수를 공급합니다. 샤워장에 가니 온수가 나오지 않습니다. 먼저 온 트레커들이 온수를 다 사용한 것 같습니다. 저는 주인을 불러 온수 한 양동이를 주문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귀한 산속에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말 온수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 양동이 물로 샤워뿐만 아니라 빨래까지 끝냈습니다. 풍요로움 속에서도 부족하게 느끼며 살았던 제가 히말라야에서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 있음을 배웁니다. 샤워와 빨래를 끝내니 세상이 맑아 보입니다.  

마을을 산책하였습니다. 경찰서 뒤편 언덕에 학교가 보입니다. 지금은 방학이라 학교가 텅 빈 모습입니다. 학교 후미진 곳에 젊은 청춘이 데이트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청바지와 등산복 재킷을 걸친 멋쟁이 총각과 전통 복장을 한 예쁜 처녀가 무엇이 좋은지 휴대폰을 바라보며 서로 웃고 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나타난 저를 보고 당황해 합니다. "나마스테"하고 인사를 건네지만 그들은 서둘러 학교를 빠져 나갑니다. 제가 그들의 데이트를 방해한 것 같습니다. 

PC방에는 네팔리들이 부지런히 인터넷을 즐기고 있습니다. 잘 작동하지 않는 인터넷을 인내와 끈기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TV와 인터넷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세상과 접할 수 있는 통로입니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접하기 위해서 인내와 끈기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저도 자리를 잡고 이메일을 확인하기 접속해 봅니다. 몇 번을 시도해도 끝내 연결되지 않아 포기하였습니다.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고 산이나 열심히 걸으라는 히말라야의 경구라 생각하고 PC방을 나옵니다.

절벽 아래 자리잡은 숙소 모습
▲ 차메 로지 절벽 아래 자리잡은 숙소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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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오니 식당에 우리나라 사람 몇 분이 앉아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오늘 숙소에는 우리나라 사람만 모두 5명입니다. 나이도 사는 곳도 다르지만 몇 순배의 술이 돌자 평생지기처럼 친해집니다. 며칠 동안의 무용담과 우리가 넘어야 할 쏘롱라(5143m)에 대한 기대감으로 분위기가 왁자지껄 달아오릅니다.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세상 이야기는 드라마 속 이야기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집니다.


태그:#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라운딩, #차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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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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