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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김제시 평생학습한마당 공연 모습 김제시가 주최한 평생학습한마당에서 공연을 한 후 잠깐 포즈를 취했다.
▲ 지난해 11월 김제시 평생학습한마당 공연 모습 김제시가 주최한 평생학습한마당에서 공연을 한 후 잠깐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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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학교 급식실 조리사가 보컬을 맡고, 과수원 농사를 짓는 엄마는 일렉트릭 기타, 논농사하는 엄마는 키보드를 맡고 있는 록밴드팀이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전북 김제 종정초등학교 학부모들로 이뤄진 록밴드 '엔젤맘'.

24일 전북 김제시 백산면에 위치한 종정초등학교(교장 한덕순) 음악실. 모두 6명으로 이뤄진 록밴드 엔젤맘이 가수 왁스의 노래 <오빠> 연주에 한창이다. 매주 수요일, 일주일에 한 번씩 벌써 3년째 이곳에서 맹연습 중이다.  

보컬을 맡은 이순화(41)씨는 이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사로 일하고 있다. 그녀 뒤로 일렉트릭 기타를 맡고 있는 이은주(38)는 멋진 안경을 끼고 드럼을 치고 있는 박종원씨와 부부다. 이들 부부는 백산면에서 사과, 블루베리 농사를 짓고 있다.

일렉트릭 기타의 남궁순자(39)씨는 익산 소재 기업에서 주야 교대근무로 일하고, 베이스의 조옥연(34)씨는 이 학교의 방과후학교 코디네이터이자 밭농사를 짓는다. 유일하게 20대인 이다이씨는 키보드를 담당하며 논농사와 학교 병설 유치원 보조강사로 일하고 있다. 결성 3년째를 맞고 있는 이들은 김제지역에선 제법 알려진 록밴드이다.

지난해 김제시청 지평선아카데미는 물론 평생학습축제 한마당에서도 공연을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엄마들이 내는 익숙한 멜로디는 장년층의 록음악에 대한 벽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농촌마을에서 사는 이들이 록밴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때문이다. 김제 종정초등학교는 지난 2010년 5~6학년 대상으로 방과후학교 록밴드과정을 개설했다. 아이들의 록밴드를 지켜보던 엄마들은 한덕순 교장을 찾아가 우리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학교, 엄마들을 위해 록밴드 악기 지원

김제시청 지평선아카데미 식전 공연 모습 지역사회 유명인사가 된 엔젤맘은 김제시청 주요행사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지평선 아카데미에서 공연하는 모습
▲ 김제시청 지평선아카데미 식전 공연 모습 지역사회 유명인사가 된 엔젤맘은 김제시청 주요행사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지평선 아카데미에서 공연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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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장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기타와 드럼을 구입해주고, 방과후 강사 김용구씨도 배치해줬다. 록밴드 명칭 '엔젤맘'도 학생들의 록밴드 '엔젤리너스'에서 따왔다. 이렇게 시작된 연습은 매주 2시간씩 3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 

결성 초기, 악기라곤 전혀 다뤄본 경험이 없는 이들은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유년시절 피아노를 잠깐 배운 적이 있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키보드, 드럼 등을 배정했다. 강사 김용구씨는 낯설은 악보에 엄마들이 당황하자 편곡은 물론 코드 잡는 방법을 일일이 알려줬고, 연습도 가수 장윤정의 노래 <올레> 한 곡을 6개월 량 연습하는 식으로 부담감을 덜어줬다.     

중간에 곡절도 있었다. 애초 보컬이 맡았던 송순화씨가 갑자기 서울로 이사를 가면서 엔젤맘은 최대 위기에 놓인 것. 드럼의 이순화씨가 연습 때문에 팔이 아프다며 보컬로 자리를 옮겼고, 대신 현재의 박종원씨를 섭외해 잘 수습(?)했다.

실력은 참 더디게 늘었다. 3년이 된 지금, 이들에게는 왁스의 <오빠>, 장윤정의 <올레>,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 등 9곡의 주력무기(?)가 있고, 최근에는 다비치·씨야·티아라가 함께 부른 <여성시대> 연주에 주력하고 있다. 제법 실력이 늘면서 채 10만 명이 되지 않는 작은 도시 김제시에도 차츰 이름이 알려지고 있다. 김제시청은 지난해부터 지평선아카데미, 금산사벚꽃축제 등 주요 행사 때마다 이들을 초청하고 있다.

그러나 농사와 직장생활에 바쁜 엄마들을 섭외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다이씨는 "록밴드는 한 명이라도 빠지면 안 되잖아요. 직장에 다니는 남궁순자씨가 월차를 내고 공연을 한 적도 있었죠. 저도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고, 드럼의 박종원씨는 과수원 외에도 굴삭기 운전을 하는 까닭에 외부공연이 쉽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6차례 공연을 했다고.

록밴드는 농촌엄마들을 어떻게 바꿔놨을까

엔젤맘이 연습을 하고 있다. 엔젤맘이 종정초등학교 다목적실에서 연습하고 있다. 최근 연습장소를 음악실로 바꿨다.
▲ 엔젤맘이 연습을 하고 있다. 엔젤맘이 종정초등학교 다목적실에서 연습하고 있다. 최근 연습장소를 음악실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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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2시간씩의 연습은 이들을 끈끈한 자매 사이로 바꿔놓았다. 이순화씨는 "연습도 좋지만 매주 얼굴 보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리더격인 이은주씨는 "다섯 명 엄마의 자녀를 모두 합치면 15명"이라며 "농사일과 아이 키우기에 지친 심신을 록밴드로 훌훌 털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록밴드는 반응이 좋다. 김제 종정초등학교는 올해 3월부터 전교생을 대상으로 토요프로그램 록밴드를 운영하고 있다.

록밴드는 학부모의 학교 참여도 바꿔놓았다. 전교생이 53명인 소규모 학교인 이 학교는 매달 한 차례씩 학부모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데 참석율도 매우 높다. 학부모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학교 텃밭을 공동으로 일구기로 했다. 4월 말엔 함께 오이고추, 토마토, 가지 등의 모종을 심을 예정이다. 또 다음 달 3일로 예정된 체육대회는 모든 학부모들이 한 가지씩 음식을 준비해와 뷔페식으로 진열해놓고 나눠먹는다.

김제 종정초등학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수가 적은 까닭에 3개 학교가 모여 연합체육대회를 했으나 체육대회를 마을잔치로 꾸미자는 학부모 요청으로 지난해부터 독자적인 체육대회를 하고 있다. 농촌마을이 학교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뤄나가는 모양새다.

이순화씨는 "록밴드가 학교 문턱을 낮춰줬다. 학생만이 아니라 학부모에게도 자주 가고 싶은 학교, 궁금한 학교로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한덕순 교장은 "농촌학교는 마을의 중심"이라며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 마을 민들에게 터전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락밴드#농촌엄마#학교#방과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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