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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을 하면서 매일 밤 꿈을 꿉니다. 꿈의 매력은 전혀 관련 없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꿈에서는 저와 인연이 없는 분이 나타나고, 저와 관련 없는 일이 자연스럽게 발생합니다. 어젯밤 꿈에는 공연장에서 전직 대통령 전아무개씨가 보컬 싱어로 열심히 노래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분인데 어떻게 히말라야에서 꿈에 나타날 수 있는지 저 자신도 의아합니다. 

포기는 빠를수록...

캉진곰파에서 트레커들은 대개 2박을 합니다. 첫날은 가까운 캉진리나 체르코리를 다녀오며 다음날은 캉진곰파에서 10km 정도 떨어진 랑시샤르카까지 트레킹을 합니다. 왕복 9시간 쯤 소요되며 캉진곰파를 지나면 휴식이나 식사를 할 롯지가 없기 때문에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랑시샤르카를 향해
▲ 계곡 랑시샤르카를 향해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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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랑시샤르카의 협곡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며칠 전 내린 폭설의 흔적이 남아 있어 길을 찾기가 무척 어려웠으며 빙하가 녹은 물이 곳곳에 개울을 만들어 건너기도 쉽지 않습니다. 포터도 초행이라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참을 헤매다 오늘 중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두 시간 가량 걷다가 포기하고 맙니다. 해발 4000m 고지의 설원에서 올해의 다짐을 해 봅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리라 생각하며 고3과 대학 4학년 두 딸의 진로를 마음에 담아 봅니다.

숙소로 돌아오니 공황 상태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생긴 하루의 여유에 몸과 마음이 모두 불안합니다. 바쁘게 사는 세상을 피해 이곳에 왔는데 제 마음은 여전히 세상에 있나 봅니다. 무엇인가 할 일이 없다는 것이 편안함보다 불편함으로 다가 오니 말입니다. 판단은 빠를수록 좋을 것 같아 미련을 두지 않고 하산을 결정하였습니다.

이틀을 함께한 호주 친구와 코리언 드림으로 성공한 롯지 주인과 사진을 찍고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아쉬운 작별을 고합니다. 물론 여행자는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바람과 같아 다시 인연이 되리라 기대하지 않지만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기에 제 마음을 담아 이메일을 전합니다. 우리나라를 여행하고 싶다는 호주 젊은이의 바람이 실현되었으면 합니다.

코사인쿤도를 향해

이제 저는 시바신의 신화가 서려 있는 코사인쿤도로 갑니다. 힌두교 성지 코사인쿤도는 해발 4310m에 자리 잡고 있으며 커다란 6개의 호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트레커 뿐만 아니라 성지 순례를 위한 순례자들도 많이 찾는 곳입니다. 코사인쿤도를 가기 위해서는 올라온 길을 따라 하루 반을 내려가서  뱀부를 지나 곳에서 좌측 기슭을 타고 툴루사부르를 거쳐 산을 올라야 합니다. 4일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하산을 시작하였습니다. 세상에 같은 길은 없는 것 같습니다. 불과 어제 올라온 길이지만 처음 보는 듯 다른 모습입니다. 유난히 다양한 문양을 넣은 마니석(불교의 경전을 적은 바위)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위에 '옴마니반메홈'이란 글자를 새기고 색채를 넣은 마니석이 설산과 조화를 이루며 트레커의 가슴에 파고듭니다. 

설산과 어우러진 마니석
▲ 마니석 설산과 어우러진 마니석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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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석의 부처님 모습
▲ 마니석 마니석의 부처님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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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두를 지나면서 40여명의 네팔 젊은이들을 만났습니다. 등산복도 배낭도 갖추지 않았지만 모두 왁자지껄하며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카트만두에 있는 트리뷰반 대학 학생들이라고 합니다. 꽁무니에는 말을 타고 산을 오르는 학생도 보입니다. 다들 화사한 모습으로 즐겁게 산행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는 네팔 사람들을 가끔 만납니다. 같은 네팔 사람이지만 즐기기 위해 산을 오르는 사람과 벌이를 위해 산을 오르는 사람은 산을 대하는 느낌이 다를 것입니다. 같은 나라에 태어나 같은 산을 걷고 있지만 서로 다른 인생을 사는 그들은 서로 다른 카르마(업보)로 태어났기 때문이겠지요.

랑탕 빌리지로 내려오면서 몇 번씩 되돌아보았습니다. 거대한 협곡 속에 어제 오른 캉진리(4800m)가 보입니다. 주위의 거대한 산군 속에 묻혀있는 캉진리 모습은 왜소해 보입니다. 힘들게 오른 피크인데 말입니다. 같은 사물인데도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그 값어치는 다를 것 같습니다. 우리의 쓰임도 마찬가지겠죠. 제가 있어야 할 곳,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내려오면서 본 랑탕 리룽
▲ 랑탕 리룽와 빙하 내려오면서 본 랑탕 리룽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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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탄들의 삶, '달라이 라마'

랑탕 빌리지에 가까워지자 주민들이 북과 나팔을 앞세워 올라오고 있습니다. 행렬의 앞에는 승려들이 불경을 외며 걷고 있습니다. 카메라를 꺼내니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것이 장례식 모습입니다. 불교 사원이 있는 캉진곰파로 시신을 운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티벳에서는 조장(鳥葬)을 한다는 데 이곳 티벳 사람들은 어떻게 장례 의식을 진행하는지 궁금합니다.

랕앙에서 본 장례식 모습
▲ 장례식 모습 랕앙에서 본 장례식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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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숙박한 랑탕 롯지에서 점심을 주문하였습니다. 식당의 가장자리에는 달라이 라마 초상화가 걸려있습니다. 달라이는 몽골어로 '큰 바다'라는 뜻이고 라마는 티베트어로 '스승'이라는 의미로 "넓은 바다와 같이 넓고 큰 덕의 소유자인 스승"이란 뜻입니다.

14대 달라이 라마는 중국 공산당을 피해 인도 다람살라에 정착하여 임시정부를 수립하였습니다. 티벳을 떠난 그들의 종교는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과 인도에서 나아가 전 세계에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히말라야 3400m에 거주하는 티벳탄이 아침마다 달라이 라마 초상화에 향을 피우고 하루를 기원하는 그들의 바람은 무엇일까요?

롯지 식당에서 뵌 '달라이 라마'
▲ 달라이 라마 롯지 식당에서 뵌 '달라이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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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지 주인의 따스한 배려...

후덕해 보이는 티벳탄 부부는 뚝바(티벳식 수제비)를 자꾸 그릇에 채워줍니다. 그들의 행동이나 마음 씀씀이가 고향 동네에 온 것 같습니다. 두 아이를 카트만두에 유학 보내고 부부만 이곳에 있다고 합니다. 하룻밤의 인연도 인연인 것 같습니다. 겨우 두 번의 만남인데도 떠나려니 눈에 걸립니다. 제가 네팔을 여행하고 있지만 제가 만나는 대부분 사람들은 장사치입니다. 이윤추구가 목적인 그들에게 덤이나 배려를 요구하는 것은 사치일 것 같습니다. 주인 부부의 따스한 배려에 무척 감사한 마음입니다.

후덕한 랑탕 롯지 주인 부부 모습
▲ 롯지 주인 부부 후덕한 랑탕 롯지 주인 부부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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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탕샵을 지나자 울창해지는 삼림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랄리구라스 울창한 밀림 지역에 접어들자 원숭이가 저를 환영합니다. 잘생긴 원숭이의 모습이 카트만두의 약삭빠르고 지저분한 원숭이와 대조가 됩니다. 원숭이도 사는 곳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후 4시 쯤, 고라타벨라 체크포스트에 도착하였습니다. 군인들이 제식훈련과 배구를 하고 있습니다. 허름한 복장과 군기가 전혀 없는 훈련 모습에 웃음만 나옵니다.  캉진곰파에서 출발이 늦어 계획한 라마호텔까지 갈 수 없을 같습니다. 이곳에서 숙박을 결정하고 걸음을 멈춥니다. 오늘 롯지 투숙객은 저 혼자입니다.  

고라타벨라의 체크포스트 모습
▲ 체크포스트 고라타벨라의 체크포스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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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타벨라에 도착해서..
▲ 고라타벨라에서 본 랑탕 계곡 고라타벨라에 도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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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김치, 삶은 계란, 소주 1병으로 저녁 만찬을 준비합니다. 쓸쓸함, 외로움, 고독의 의미가 무엇인지 체험하고자 한다면 텅 빈 히말라야 롯지의 가물거리는 전등 아래서 혼자 소주를 마셔봐야 합니다. 소주 한 잔 속에는 살아 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이 모두 투영되어 나타나며 원수까지도 그리워집니다. 

히말라야의 사람들은 책과 글을 통해 지혜를 얻는 것이 아니라 히말라야의 바람소리와 강물소리에서 삶의 지혜를 얻는 것 같습니다. 자연의 이치와 순리대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문명의 세계에서 온 저보다 더 넉넉해 보입니다. 

텅 빈 숙소의 앞뜰에서 별을 헤며 또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태그:#네팔, #히말라야, #랑탕, #고라타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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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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