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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오후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도널드 그렉 전 미국대사 초청 국제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다.
4일 오후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도널드 그렉 전 미국대사 초청 국제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집권 2기를 시작한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이전의 '전략적 인내' 기조에서 벗어나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펼 가능성이 있고, 이를 위해선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국내외 북한 전문가들의 전망이 나왔다.  

4일 서울 동교동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는 도널드 그렉 전 주한 미국대사(1989~1993)가 발제자 및 토론자로 참석했다. 그렉 전 대사는 1973년 '김대중 동경 납치사건' 당시 주한 미대사 특별보좌관을 지내며 김 전 대통령을 구명했고, 1983년 사형수였던 김 전 대통령의 석방을 조건으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미국방문 및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데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렉 전 대사는 중국 전문가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북방정책을 펴는 데에도 일조했다.

그렉 전 대사는 현재 북한의 상황에 대해 '미국과 대화를 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귀국한 전 NBA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맨이 ABC 방송에 출연, "김정은은 미국과 전쟁을 원치 않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에게 전화해주길 원한다"고 말한 걸 언급했다.

그렉 전 대사는 "미국 내 강경파들은 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로드맨이 성격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란 점을 감안하면, 김정은과 로드맨 사이에 자연스런 제스처가 오고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미국과의 대화의사를 직접 표명하지 않았더라도 로드맨이 김정은의 초청 의도를 알고 이를 제대로 전달한 것이라는 얘기다.

"북한도 미국을 믿을 이유가 없다... 오바마 1기는 아무 것도 안한 것"

 4일 오후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도널드 그렉 전 미국대사 초청 국제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다.
4일 오후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도널드 그렉 전 미국대사 초청 국제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그동안 미국이 북한에 취한 정책에 대해 그렉 전 대사는 "지금 북한은 미국을 믿을 이유가 없는 상태다. 미국은 협상에 일관성을 보여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페리가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고, 북한의 조명록이 워싱턴에 오고, 올브라이트가 평양을 방문한 뒤에 부시(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불렀다. 미국의 자세가 이렇게 바뀌는 데 북한이 미국을 신뢰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은 어떤 일을 하든 행동에 일관성을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며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미국에도 그런 잘못이 있다"고 말했다.

그렉 전 대사는 오바마 1기의 대북정책에 대해 "'전략적 인내'라고 했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그 이유를 "대통령 측근 중에 북한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대해선 철수를 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며 "공화당은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활용하는 게 쉽고 북한 문제는 그저 골치덩이로 인식하기 때문에 누구도 북한문제에 대한 적절한 관심이 없었다. 이것은 모두의 실수"라고 꼬집었다.

그렉 전 대사의 '전략적 인내 정책은 실패했다'는 진단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후보시절 아시아정책 자문관을 맡았던 도널드 그로스 전 국무부 고문(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 선임고문)도 동의했다. 그로스 고문은 "백악관에 북한 전담 전문가가 있다고 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로스 고문은 "이명박정부는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미국의 전문가들도 오바마에게 더 생산적이고 나은 한·미관계에 집중하라고 했다"며 "한국인들이 만약 북한과 협상하고 싶지 않다면 '전략적 인내'는 지속해도 된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상황을 보면 몇가지 긍정적인 요소가 있는데, 중국의 대북정책이 미국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했다. "지난 1월 중국이 북한의 로켓발사에 대한 UN의 대북 제재에 동의했고, 미국 입장에선 '중국이 (대북정책에 있어) 미국쪽으로 선회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오바마 2기의 미국은 중국의 지원을 기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로스 고문은 "한국의 새 대통령과 대북정책이 미국에 끼칠 영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신뢰프로세스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핵실험) 도발을 했고 한국이 그에 대해 대응을 한다면 북미관계에 어떤 진전도 없겠지만 한국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고, 이것이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봄에 미국을 방문하게 되면 (미국의 대북정책이 전환되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며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북정책에 있어 보다 긍정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느껴지고 있다"고 말했다.

"케리 국무장관, 아시아에 밝은 사람"... "베트남은 되는데 북한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성향도 오바마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전환시킬 요인으로 꼽혔다. 그로스 고문은 "정치적 상황이 괜찮다면, 케리 국무장관은 진지하게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게 될 것"이라며 "헤이글(국방장관)과 케리는 베트남에 참전했고, 아시아 이슈에 밝은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스스로의) 대북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전망에는 그렉 전 대사도 동의했다. 그렉 전 대사는 지난 2월 버지니아대 강연에서 케리 국무장관이 '미국에게는 어떤 숙적도 없다'고 말한 걸 상기시키면서 "그런 메시지가 북한에 전달되길 바란다"고 했다.

노무현정부에서 외교통상부장관을 지낸 송민순 전 장관도 "미국과 베트남의 협력이 잘 되고 있다. 미국의 체체전환 노력이 성공하고 있는 곳이 베트남인데, 북한은 왜 안되겠느냐"며 "북한을 개방시켜 태평양쪽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게 전세계적인 (핵무기)비확산에도 기여하기 때문에 미국으로선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진단했다.

송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가 적극적인 정책을 취하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북한 문제를 진전시킬) 좋은 위치에 있다"며 "북한의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정책을 취하면 미국의 조야에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미국의 대북정책에도 많은 임팩트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이날 학술회의는 '도널드 그렉이 회고하는 한미관계 1980~1991'과 '북핵위기 20년과 한·미관계'라는 주제로 나뉘어 진행됐다. 그렉 전 대사가 모든 토론에 참여한 가운데 첫번째 토론에는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사회로 김종휘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노태우정부), 손장래 전 주미공사(전두환정부), 이해찬 의원(전 국무총리), 강태호 <한겨레> 기자 등이, 두번째 토론은 문정인 연세대 교수 사회로 그렉 전 대사, 그로스 고문, 송 전 외통부장관,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등이 참여했다.


#도널드 그렉#김대중 도서관#도널드 그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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