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12년 1월, 나는 잘 다니던 보안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나쁘지 않은 월급을 받으며 큰 건물에서 일했지만, 매일같이 반복회는 주-야간 교대근무와 군대같은 분위기의 근무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원래 소유하지 못한 것을 원한다고 했던가. 직장에 다니던 시절엔 쉬고 싶었는데, 막상 일을 쉬게 되니 노동을 하고 싶어졌다. 또 넉넉치 못한 나의 형편에는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물론, 그 이유는 단순히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엔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직종을 체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짧은기간 참여-큰 보수'라는 공고에 이끌려 찾아간 병원

 임상실험 동의서와 설명문. 충분한 설명을 위해 임상실험 피실험자에게 18페이지 분량의 설명문이 주어진다.
 임상실험 동의서와 설명문. 충분한 설명을 위해 임상실험 피실험자에게 18페이지 분량의 설명문이 주어진다.
ⓒ 김준수

관련사진보기


내가 찾아간 곳은 강남의 한 종합병원이었다. 임상실험을 위해 하나의 병동이 따로 존재할 정도로 규모가 큰 곳이었다. 첫날엔 임상실험에 피실험자로서 참가하기에 적절한 조건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피검사와 소변검사, 심전도 검사를 했다. 그리고 의사와 과거병력, 실험 직전의 건강상태를 면담하는 것으로 일정은 짧게 끝났다.

의사의 설명에 따르면 건강한 성인남성을 대상으로 두 종류의 다른 항암제를 투약한 뒤 효능을 비교하는 실험이라고 했다. 의사는 어지러움, 체중증가 같은 사소한 증상을 비롯해 기타 심각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면서, 과거 피실험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나타난 기록을 토대로 산출한 각 증상의 발병률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설명문에 나와있는 부작용의 종류들은 설사·구토·두통·식욕부진·변비 등이 있었다. 특히 설사와 구역질이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으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보다 나타날 확률이 적은 증상으로는 불면증·혈소판 감소·우울증도 찾아볼 수 있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사람들 중 일부는 부작용을 우려한 탓인지, 실험참가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남아있기로 한 사람들의 표정도 썩 밝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험일정과 보수지급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자, 피실험자로 정해진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실험일정은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로 잡혀있었는데 약 한 달의 기간동안 투약과 경과확인을 위한 2박 3일 입원 두 차례, 그리고 퇴원한 뒤 몸상태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한 외래방문이 두 차례 정해져 있었다.

실험기간 30일 중 사실상 실험을 위해 쓰는 시간은 단 8일에 불과했는데, 실험에 끝까지 참여한 사람에겐 80만 원에 가까운 수고비가 주어졌다(사정이 생겨 중도포기한 사람에겐 실험이 진행된 정도를 따져 차등 지급된다). 그 외의 기간에는 지나친 음주와 흡연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제약없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

짧은 기간에 상대적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안도하는 듯했다. 부작용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실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박3일 동안의 입원... 투약과 수차례 이어진 채혈

2박 3일 동안 입원을 하기 위해 병원을 다시 찾았다. 실험을 위해 며칠간 임시입원 절차를 거쳐야 했다. 수십 명의 지원자들은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각자의 이름이 적힌 침대에 가서 누웠다.

피실험자가 지켜야 할 것은 매우 간단했다. 주어진 식사만 하루 세끼를 먹고 군것질은 하지 말 것, 병동을 벗어나지 말고 늘 자리를 지킬 것, 몸에 이상이 생기면 언제든지 담당 의사에게 이야기할 것.

피실험자들에게 동일한 조건으로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서 모두에게 똑같은 양의 식사가 제공되었다. 그리고 알약으로 된 항암제는 의사가 보는 앞에서 한 사람 씩, 입안에 넣고 물을 마셔 삼켰다. 삼킨 뒤에도 혀를 들어서 입 안에 알약이 남아있지 않음을 확인시켜 주어야 했다.

그리고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채혈이 진행됐다. 투약 후 혈중 성분의 농도들이 변화하는 것을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에 여러번 채혈이 이루어지자 사람들이 피곤해 했지만, 의사는 실험에 필요한 채혈 총량이 1번 헌혈 할 때의 채혈량보다 적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자주 채혈을 해야 하다보니, 팔 혈관에 플라스틱 주사바늘을 꽂았는데, 그러다보니 팔을 접지 못하고 하루종일 펴고 있어야 했다.

투약과 채혈 외에는 딱히 다른 할 일이 없는 피실험자들은 대체로 평온하게 2박 3일을 보냈다. 대부분은 TV를 보거나 잠을 잤다. 몇 사람은 책을 읽거나, 미리 가져온 토익 문제집 등으로 공부를 하기도 했다.

피실험자들 중 이와 유사한 실험에 자주 참가해본 사람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하나의 직업 만으로 가족을 부양하기가 힘들어서 직장에 휴가를 얻어 3개월에 한 번(체내의 약 성분이 사라지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보통 3개월이라고 한다)씩 임상실험 피실험자로 참여한다고 했다.

무사히 종료된 실험, 내가 얻은 것은 80만원 만이 아니었다

 임상실험 피실험자로 참여하면서, 투약할 약의 복용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설명문.
 임상실험 피실험자로 참여하면서, 투약할 약의 복용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설명문.
ⓒ 김준수

관련사진보기

둘째날 밤이 깊어가던 중, 피실험자 중 한 명이 열이 나며 식은 땀이 흐른다고 호소했다. 의사는 즉각 그 사람에 대한 실험을 중단하고 치료를 시작했다. 다행히 그 사람의 증상은 단순 감기몸살로 판명났고, 증상이 완화되자 퇴원조치 되었다.

두 번의 입원과 퇴원 이후 두 번의 외래 방문(채혈과 상담이 이루어졌다) 뒤에 병원측에서 실험이 무사히 종료되었음을 알려왔다. 내가 참여한 실험을 통해서, 암 환자들이 쓸 약에 대한 임상실험 정보가 축적되어 더 나은 치료가 가능해질 발판을 마련해준 것에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80만 원의 수고비 외에 내가 얻은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임상실험 설명문에 나와있던 부작용 목록에 나와있던 '체중증가'. 평소 몸무게가 크게 늘거나 줄어들지 않았던 나는, 과식을 하지 않았음에도 갑작스럽게 실험종료 후 보름 만에 체중이 6kg 이상 불어났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에 따르면 임상실험마다 지급되는 수고비는 천차만별인데, 실험참여로 인한 위험부담에 따라서 그 액수가 책정된다고 한다. 부작용의 심각성이 크고 나타날 확률이 높을수록 수고비도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임상실험 피실험자 지원은 짧은 기간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일이고, 동시에 환자를 돕기 위한 신약 개발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이런저런 임상실험에 참여하기보다는,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과 본인의 몸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몸이 건강하다면 돈을 벌 수 있지만, 돈으로 건강함을 되찾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 한 달 동안 진행된 임상실험 피실험자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수고비와 보람, 늘어난 체중과 함께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알게됐다.


#임상실험#아르바이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