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자신의 내연녀와 사귄다는 이유로 부하 직원을 납치해 테이프로 얼굴을 수차례 감고 폭행해 숨진 사건. 사인이 테이프에 의한 질식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나왔다면 살인에는 고의가 있을까, 없을까.

살인의 고의 유무에 따라 죄명이 달라지기 때문에 중요한 사건이었다. 1심과 2심은 살인에 고의가 없다고 판단해 강도살인죄를 무죄로 보고 강도치사죄를 적용했는데, 대법원은 강도살인죄의 취지로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항소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범죄 사실에 따르면 유부남 A씨는 내연녀가 자신의 부하 직원 B씨와 사귀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멀리하자 B씨에게 "만나지 말라"고 따졌다. 그러자 B씨가 "내 사생활이니 간섭하지 마라, 유부남이 왜 상관하느냐"며 대꾸하자 A씨는 자신을 무시하고 비꼰다고 생각해 화가 났다.

이에 B씨를 혼내주려던 A씨는 2012년 2월 회사 주차장에서 퇴근하려던 B씨가 승용차에 오르자 갑자기 뒷문을 열고 들어가 B씨의 양팔을 뒤로 꺾어 제압한 뒤 손발을 결박하고 준비한 테이프로 B씨의 눈과 입을 감았다.

이후 A씨는 입에 감은 테이프를 떼어내고 따졌다. B씨가 말대꾸를 하자 격분한 A씨는 B씨의 얼굴에 테이프를 칭칭 감고 마구 때렸다. 결국 B씨는 숨졌다. 그러자 A씨는 범행이 발각될 것이 두려워 시신을 불태워 훼손했다. 하지만 A씨는 B씨의 신용카드를 빼앗아 두 차례에 걸쳐 현금을 인출한 뒤 사귀던 내연녀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현금 등을 건네는가 하면 B씨 유족에게는 부조금을 내기도 했다.

1심 검사 "테이프 감고 무차별 구타... 미필적 고의 있었다고 봐야"

이에 검찰은 강도살인·사체손괴 등의 혐의로 기소했으나, 1심은 A씨가 강도 과정에서 피해자를 살해하려는 고의를 가졌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봐 강도살인죄가 아닌 강도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양형과 관련해 재판부는 "유부남인 피고인이 내연녀가 피해자와 교제하자 이를 못하게 하려는 비난할 만한 동기에서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고, 더욱이 범행 은폐 시도와 피해자로부터 강취한 카드로 내연녀에게 현금과 선물을 주는 행동을 보면 과연 범행을 반성하거나 최소한 죄책감이라고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특히 피해자로부터 강취한 현금을 유족에게 부조한 행위는 인면수심의 행동"이라고 밝혔다.

이에 검사는 "피해자를 납치 후 구타해 살해한 점,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피해자의 얼굴에 테이프를 감고 얼굴과 가슴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할 때부터는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피고인에게 살인의 범의가 없다고 판단해 강도살인죄로 처벌하지 않은 원심은 위법하다"고 항소했다.

그러나 항소심도 "강도 과정에서 A씨가 피해자를 살해하려는 고의를 가졌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강도살인죄의 죄책을 지울 수는 없다"며 1심과 마찬가지로 강도치사죄를 인정했다.

A씨가 피해자를 폭행했던 차량의 뒤편은 성인 2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으로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의 치명상을 입히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이 폭행 도중에 미필적으로라도 살해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좁은 공간에서 폭행하기보다는 목을 조르는 등의 방법을 택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테이프를 피해자의 눈과 입에 감게 된 경위는 소리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고, 그런 행위 자체가 일반적으로 사망의 결과를 발생시킬 만한 가능 또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형량은 A씨에게 징역 9년을 선고해 대폭 낮춰졌다. 재판부는 중형을 선고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피해자 유족과 합의된 점 등을 참작했다.

"부검 결과 '질식사'... 테이프로 코 감지 않았다는 사실 양립 불가"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강도살인 혐의 등으로 기소된 A씨에게 강도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9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라"며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법의학과 교수는 피해자의 얼굴에 감겨 있던 테이프가 코와 입을 함께 막아 질식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감정서도 질식사로 보고 있다"며 "따라서 피고인이 테이프로 피해자의 얼굴을 여러 번 감을 당시 숨을 쉴 수 있도록 코는 감지 않았다는 취지의 원심의 사실 인정은 양립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따라서 테이프로 눈과 입이 감긴 상태에서 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질식사할 수 있는지 의문이 남으므로, 이를 더 심리할 필요가 있다"며 "그럼에도 원심이 이에 대해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강도살인의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데에는 심리 미진으로 인해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강도살인#강도치사#살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