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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20일 오전 8시 22분]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답변도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답변도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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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20일 국회에서 열렸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국정운영 능력을 집중 검증하는 '미국식 인사청문회'를 표방했으나 능력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당초, 국회 인사청문특위는 이틀 간 이뤄지는 청문회의 날짜별로 주제를 정했다. 첫째 날은 국정운영 능력을, 둘째 날에는 공직 시절 활동 평가와 도덕성을 검증키로 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처럼 도덕성을 철저히 검증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기도 전에 섣불리 미국식 제도를 도입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 이날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여야 청문위원 모두 날선 검증을 하지 못했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도덕성 문제 검증을 청문회 마지막 날로 미룬 채 국정운영 능력에만 집중하다 보니, 이날 청문회에선 '질문 기근'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새누리당 청문위원들은 '국정운영 능력'과는 크게 상관없는 질문으로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신동우 의원은 "검사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후보자 평판이 좋더라"며 정 후보자에 대한 칭찬으로 청문회를 시작했다. 이완영 의원은 "검사 35년 간 가장 보람 있었던 일과 미흡했다고 보는 일이 뭐냐"고 물었고, 홍일표 의원은 "롤 모델로 삼는 총리"에 대해 물었다. 이진복 의원은 건강관리 비결을 묻기도 했다.

새 정부의 첫 인사청문회 첫날에 집중할 국민들이 정 후보자에 대한 적격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제공되는 정보 자체가 부족했다.

정홍원 청문회...오전, 오후 질의 분위기 극과 극

이러한 현상은 오후 질의에 들어서 뚜렷한 양상을 보였다. 오전 질의 때만 해도 야당 청문위원들의 질문에는 날이 서 있었던 것.

오전 질의에서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밀계좌'를 캐물었다. 그는 "프레이저 보고서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밀계좌를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관리했다는데, 권력 실세의 스위스 계좌 정보 요청권을 행사할 의향이 있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정 후보자는 "취임하게 되면 행사 가능한지 등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답했다. 그는 "(스위스 비밀 계좌가) 기정사실인 것처럼 얘기 되는데, 스위스 은행 간부가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신 후 (비밀계좌가) 전혀 안 나왔다고 말한 것으로 들었다"고 덧붙였다.

민 의원이 '5·16이 군사혁명이냐 군사 쿠데타'냐고 묻자 정 후보자는 "5·16은 군사정변이라는 교과서 내용 동의한다"고 답했다. 또, 전병헌 민주당 의원이 유신헌법에 대한 의견을 묻자 정 후보자는 "헌법 가치를 파손시킨 반민주적 조치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소리 높여 장관 후보자 제청에 대한 책임을 따져 묻기도 했다. 정부조직법 통과 이전에 미래창조과학부와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를 제청해 발표한 것에 대해 전병헌 민주당 의원은 "총리 후보자가 첫 임무부터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이 20일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1년여 전 "나는 진짜 미국인이 됐다"고 발언한 한국일보 보도를 보이며 질의하고 있다.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이 20일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1년여 전 "나는 진짜 미국인이 됐다"고 발언한 한국일보 보도를 보이며 질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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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은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는) 미군 복무는 완전한 미국인이 되는 통과의례라고 말하고, (한국에 대해서) 닳아빠진 국가라는 기억만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사람을 제청한 것이냐"며 "이에 대한 책임을 지겠냐"고 쏘아 붙였다. 정 후보자는 "세계화 시대에 그런 분을 사와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있다"고 반박해 이 의원으로부터 "한국에 그렇게 인재가 없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민 의원은 "현오석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뱅크런 때 2억 원을 인출했다, 이런 사람을 경제 수장으로 인정하겠냐"며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도 무기 수입 업체에서 일하며 간접적인 국방산업 스파이 행위를 한 것이 아니냐"며 비판했다. 정 후보자는 "본인이 억울한 사정이 있을 수 있고, (장관 후보자 당사자가) 청문회 과정에서 해명할테니 그걸 듣고 판단 해달라"며 즉답을 피했다.

이 같은 후보자에 태도에 전병헌 의원은 "후보자가 답변할 것조차 회피하면 유야무야 넘어가려 한다"고 문제제기 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장우 새누리당 의원은 "총리 후보자로서 소신을 명확히 밝히면 되지 부적절한 질문에 대해 꼭 답변해야 하는 건 아니"라며 정 후보자를 적극 엄호했다.

원론적인 질문에 두루뭉술한 답변... 긴장감 사라진 청문회

이렇게 달아올랐던 청문회는 오후 들어 급격히 가라앉았다. 여야 청문위원 모두 긴장을 늦춘 채 청문회에 임했다. 국정운영 능력을 검증하는 차원에서 여야 의원들은 지방자치제도의 문제, 사회적 갈등 비용을 줄이는 방안,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방안, 대탕평 인사 원칙에 대한 평가 등을 물었다. 정 후보자는 대개 "신중히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질문이 깊이 있게 들어가지 못하니 답변 역시 원론적 입장 표명에 그쳤다.

언론인 해직자 복직 문제에 대해서 그는 "노사문제는 노사가 해결하는 게 좋다"며 정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4대 중증질환'과 '기초연금'과 관련해 박 당선인의 공약을 이행할 것인지를 따져 묻자 "완벽하게 파악 된 상태가 아니"라고 말했다. 정 후보자의 '두루뭉술'한 답변 태도가 계속되다 보니 전병헌 의원은 "적절치 못하다"고 비판했다.

'다른 청문회'를 내세우며 국정운영 능력을 검증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김빠진 청문회는 오후 질의 내내 이어졌다. 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정보가 충분하지 못해 후보자의 면면을 제대로 들여다 보기 어려웠다. 아들 병역면제 의혹, 고문변호사 시절 재산증식 의혹, 김해시 땅 투기 의혹 등 10여 개가 넘는 각종 의혹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충분한 준비 없이 미국식 청문회를 도입한 게 성급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는 지점이다.

청문회 방식을 개선한다며, 후보자가 모두 발언할 때 가족이 배석할 수 있게 했지만 이날 청문회에 후보자 가족은 동석하지 않았다. 정 후보자는 "후보자 상태이면서 가족이 나오는 게 적절하지 못한 거 같았고 아내도 극구 사양했다"며 불참 배경을 밝혔다. 유명무실한 '배려'였던 셈이다.

여야가 총리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방식을 바꾼 것은 박근혜 당선인이 인사청문회에 대해 문제제기한 것이 단초가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박 당선인은 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자 "과도하게 상처내지 말고 능력을 밝힐 기회를 줬으면 한다"며 현 인사청문회 방식에 대한 반대 입장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더불어, 민주당으로서는 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하기도 전에 자진 사퇴하자 다음 총리 후보자까지 강도 높은 청문회를 하기 부담스러운 측면도 작용했다.

야당 인사청문위원 측 관계자는 청문회 첫째 날 도덕성 검증을 하지 않은 데 대해 "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날아가고 나니, 도덕 검증 부분은 비공개로 청문회를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졌다"며 "여야 간 청문회 방식에 대한 합의를 하다보니 그렇게 구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새 정부의 첫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라 모양새를 좋게 하려는 것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책 위주로 질의를 하다보니 맥이 빠지는 건 사실이다, 후보자도 '검토하겠다'고만 하니 진전이 되질 않았다"며 "내일 도덕성 검증이 이어지면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홍준#인사청문회#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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