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모든 약은 독이다.
▲ 책 모든 약은 독이다.
ⓒ 안건모

관련사진보기

양약을 먹지 않고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기간이 한 5년쯤 되나 보다. 3년 전 병원에서 췌장 수치가 남보다 세 배가 나온다고 해도 약을 먹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다. 지난번 심한 감기 때도 '먹으면 일주일, 안 먹으면 7일이면 낫는다'는 우스갯소리를 믿고 버텼다. 10일이 지나니 말짱해졌다.

이매진에서 나온 책 <식후 30분에 읽으세요>를 읽었다. 이 책을 쓴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는 1987년 6월 항쟁당시 민주화를 위해 뜻을 모은 약사들이 모여 1990년에 창립한 단체다. 믿을 만한 책이라는 말이다.

이 책에 따르면 약은 동양과 서양의 관점이 다르다. 동양인은 '약과 음식은 하나다'라는 관점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약이 되는 음식' 같은 말이 일상에서 쓰인다. 수십 종의 약재를 끓여 국물을 우려내듯 만들어 '한 사발'이나 되는 약을 먹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반면 서양인은 '모든 약은 독이다'라는 격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약국이나 약사라는 말의 어원인 '파르마콘(Pharmakon)'은 약물, 치료, 독 등의 모순되는 여러 의미를 갖고 있는 그리스어라고 한다. 마약인 코카인과 헤로인은 급성 설사와 복통에 특효약으로 쓰이고, 해열과 진통 작용이 뛰어나 명약으로 대접받는다. 그러나 이를 계속 복용하면 만성 중독을 일으켜 점차 양을 늘리지 않으면 효력이 없어지고, 끊으면 심각한 금단 현상을 일으켜 결국 정상 생활을 불가능하게 한다.

꼭 필요한 약은 먹되 용량은 정확하게!

이 책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꼭 필요한 약은 먹되 용량을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프로스카는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이지만, 약의 용량을 줄이면 대머리 치료제 프로세시아과 되고, 항생제인 독시사이클린은 용량을 줄이면 잇몸강화제가 되고, 해열진통제인 아스피린은 용량을 줄여 혈전증 치료제로 쓰기도 한다. 이렇게 용량을 다르게 하면 전혀 상관없는 병의 치료에 쓰이는 게 전문가인 약사의 눈으로 봐도 신기하다니 약을 먹을 때 양을 정확히 지키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 만하다.

필요없는 약을 먹는 사람들도 있다. 챔픽스라는 금연보조제는 자살과 우울증을 일으킬 위험이 다른 금연보조제에 견줘 여덟 배 높단다. 미국의 마이클 퍼버그 교수는 '챔픽스는 금연에 따른 이익보다 위험성이 더 큰 약'이라고 했다. 공부 잘하게 하는 약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성적을 올리려는 부모들의 과잉 관심과 학생들의 그릇된 열망, 그런 현실을 이용해 제약 회사와 의료 기관이 합작해 공부 잘하게 하는 약을 유행시키고 있다는 것. 그 약은 대부분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환자를 관리하고 치료할 때 쓰이는 약이란다. 병원에서 가짜 처방으로 그 약을 적지 않게 사용했다니 정말 무서운 일이다.

이렇게 약의 남용을 부추기는 건 제약회사다. 세계에서 유명한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신약 연구 개발보다 새로운 질병과 환자를 개발하는 데 더욱 열을 올린다. 겁주기 마케팅이다. 건강한 사람의 콜레스테롤이 얼마나 높아야 심장 질환의 위험성이 높아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데 가이드라인 전문위원회는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정상 범위를 점점 좁히고 있다. 건강한 사람도 약을 먹는 소비자로 만들기 위해서다.

내가 건강한 삶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돈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병에 걸린 사람은 누구나 공평하게 약을 쓸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에 그 해답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작은 책> 3월호에 실릴 글입니다.



식후 30분에 읽으세요 - 약사도 잘 모르는 약 이야기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지음, 이매진(2013)


태그:#안건모, #작은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