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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1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유세를 하던 중 예정에 없이 깜짝 등장을 한 안철수 전 후보가 자신에 매고 있던 노란 목도리를 문 후보에게 둘러주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1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유세를 하던 중 예정에 없이 깜짝 등장을 한 안철수 전 후보가 자신에 매고 있던 노란 목도리를 문 후보에게 둘러주고 있다. ⓒ 오마이뉴스

2012년 12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유세장에 안철수 전 대선 예비후보가 예고 없이 모습을 나타냈다. 앞서 안 전 후보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정치권의 혼탁선거를 에둘러 비판했다. 때문에 그의 깜짝 등장은 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우려를 말끔하게 종식시키는 드라마틱한 반전이었다. 특히 안 전 후보는 합동 유세 말미에 자신이 두르고 온 노란 목도리를 문 후보에게 둘러주며 꼭 껴안았다.

현장은 "안철수, 문재인"을 연호하는 시민들의 열기로 폭발했다. 이를 두고 문화평론가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트윗(@unheim)에 "오늘 광화문대첩으로써 아름다운 단일화는 완성됐습니다. 이제 투표율만 높이면 됩니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12월 19일 대선 승리의 월계관은 문재인 후보의 차지가 아니었다. 이날 안철수 전 후보는 문 후보를 뒤로 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대선이 끝난 지 40여 일이 지난 요즘, 다시 문재인·안철수 두 전 후보에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트위터에 올라온 두 장의 사진이 시선을 끈다. 한 장은 안 전 후보의 '그림자 사진'이고, 다른 한 장은 문 전 후보의 '눈 치우는' 사진이다. '귀국 임박설', '신당 창당설'이 끊이지 않는 안 전 후보와 '친노 책임론', '의원직 사퇴론'에 휩싸인 문 전 후보의 심경이 담겼다는 해석을 낳았다.

송호창, 안철수 '그림자 사진' 공개... 무슨 의미?

송호창 무소속 의원이 미국에서 만난 안철수 전 후보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송호창 의원은 지난 6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HOwindow)에 "지난달 스텐포드대학에서 안철수 원장과 함께 찰칵. 깊이 뿌리내린 나무는 언덕 위 강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을 올렸다. 송 의원은 지난 대선 때 안철수 대선캠프 공동선대본부장을 맡았다.

송 의원이 공개한 사진에는 밑동이 넓고 가지가 무성한 고목이 있고, 그 앞으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모습이 담겨 있다. 정확하게 어느 쪽인지는 확인이 어렵지만, 그림자 중 하나는 안 전 후보이고 다른 하나는 송 의원이다. '깊이 뿌리내린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대목은 이제 막 정치에 발을 디딘 안 전 후보가 미국에서 탄탄하게 내공을 쌓아오겠다는 의지를 송 의원이 대신 전한 것으로 해석된다.

 송호창 무소속 의원이 지난 6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HOwindow)에 미국에서 만난 안철수 전 후보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송호창 무소속 의원이 지난 6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HOwindow)에 미국에서 만난 안철수 전 후보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 송호창

앞서 안 전 후보는 지난 대선 당시 자신의 준비 부족을 탓하면서 지지자들에게 사죄의 뜻을 밝혔다. 안철수 대선캠프 상황실장을 지낸 금태섭 변호사는 지난 4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최근 미국에서 안 전 후보를 만났던 사실을 공개하면서 "(대선 기간) 여러 가지로 준비가 부족했다는 것에 대해서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고, 그거에 대해서 지지해주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했다"고 전했다.

금 변호사는 또 "안 전 (서울대)교수는 선거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돌이키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런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며 "운동도 하고 책도 읽으며 잘 지낸다"고 근황을 전했다.

안 전 후보는 7일 낮 대선캠프에 참여했던 인사들에게 보낸 설날 안부 메일에서도 "믿고 지지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기대했던 결과를 만들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매 순간 소중하게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 안철수 대선캠프에 참여했던 일부 인사들은 지난 대선 당시 안 전 후보의 행보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캠프 관계자는 "(안 전 후보가 실패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새 정치에 대한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안철수 현상'으로 대표되는 새 정치에 대한 국민적 여망을 담보해줄 구체적인 상이 없이, 그냥 구호처럼 내걸고 나서면 될 줄 알았던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대선 직후 안 전 후보는 대선 패배의 책임론에서 다소 비켜서 있다. 대선 전, 안 전 후보의 소극적인 지원으로 문 전 후보가 패할 경우 양쪽 모두 "이길 수 있는 선거를 망쳤다"는 '공동책임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대선 직후 모든 책임론은 문 전 후보와 민주당에게만 덧씌워졌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을 비롯해 민주당 내 일각에서 '공동책임론'을 제기라도 할라치면 "'내 탓' 하지 않고, 왜 '네 탓'이냐", "아직 정신 못 차렸다" 등의 핀잔을 들어야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태년 민주당 의원의 대선 평가다. 민주당 내 친노무현 인사로 꼽히는 김 의원은 지난 6일 자신이 발간한 대선평가 보고서에서 "안 전 교수와 캠프의 미숙한 (후보)사퇴 결정이 (야권) 지지자들을 정서적으로 통합시키는 데 결정적인 장애가 됐다"며 '안철수 책임론'을 주장했다. 그는 "안 전 교수의 사퇴 후 2주일이 지나서야 (문 전 후보) 지지 행보를 시작한 것 또한 문 후보의 본선행보를 제약하고 지지율 상승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친노는 이제 입을 다물라"며 김 의원을 비판했다.

'깊이 뿌리내린 나무'가 되기 위한 고민이 현재형이라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미래형이다. 정치재개 이후 어떤 정치적 시련과 어려움에도 흔들림 없이 '정치인 안철수'의 삶을 걸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안 전 후보가 독자세력을 구축해 신당 창당에 나설 경우 야권의 급속한 재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민주당은 벌써부터 안 전 후보 측의 움직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선 패배에 공동책임이 있는 안 전 후보가 딴살림을 차리는 것은 정치적 도리가 아니'라는 논리를 내세워 민주당 입당론을 제기하는가 하면 '신당은 필패한다'는 겁박도 나온다.

문희상 비대위원장과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은 "안철수 전 후보가 악마의 유혹에 빠져 신당을 만들면 야권은 공멸한다"고 경고했다. 문 위원장은 또 "공천 탈락자 등 어중이떠중이 모으면 신당이 가능하지만 그건 새로운 정치가 아닌 구태"라며 "역사적 죄를 짓는 어리석은 짓이고 미래도 희망도 없다"고 날을 세웠다. 이러한 공세는 안 전 후보가 귀국하면 더욱 거세질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안 전 후보가 민주당에 입당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하다. 지지층의 이탈이 불을 보듯 뻔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철수 현상'을 끌어안기에는 민주당의 개혁 작업이 지리멸렬한 수준이다. 결국 안 전 후보는 지난 대선을 반면교사로 삼아, '안철수 신당' 창당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금태섭 변호사는 "지난번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정당의 중요성을 실감했다"면서 "어떤 형식으로든지 조직을 만들긴 하겠지만 아직 방침이 정해진 건 없다"고 말했다.

 한 트위터 사용자(@ejrrl210)가 지난 4일 문재인 전 후보와 아내 김정숙씨가 서울 구기동 자택 앞 눈을 치우고 있는 사진이 올렸다.
한 트위터 사용자(@ejrrl210)가 지난 4일 문재인 전 후보와 아내 김정숙씨가 서울 구기동 자택 앞 눈을 치우고 있는 사진이 올렸다. ⓒ @ejrrl210



대선 패배 책임론... 문재인의 운명은?

"내가 민 대통령 후보는 저런 분이심"(@africachiefddal), "구기동분들 계 타셨네~" (@drmaengyi), "눈 치우는 달님 부부 # 내 집 앞 눈은 내가"(@moonrise365), "영락없이 소탈한 우리들의 참 모습입니다. 앞으로도 건투"(@madhyuk)

기습 폭설이 내린 지난 4일, 문재인 전 후보가 아내 김정숙씨와 함께 서울 구기동 자택 앞 눈을 치우고 있는 사진이 트위터(@ejrrl210)에 올라와 관심을 끌었다. 회색 점퍼 차림으로 눈을 쓸어 담는 큰 삽을 들고 서 있는 문 전 후보나 검은색 패딩 점퍼에 모자를 눌러쓴 김정숙씨 모두 이웃집 주민 같은 친근한 모습이었다. 본인이 의도적으로 노출한 사진이 아니지만, 대선 패배 이후 그의 근황을 궁금해 하던 차에 공개된 모습이라 더욱 관심이 높았다.

그러나 평화로워 보이는 그의 겉모습과는 달리 대선 패배 책임의 직접 당사자로서 그의 심경은 복잡하다. 미국에 머물며 책임론에서 한 발 뺀 듯 한 안 전 후보와는 상황이 다르다. 대외활동이 위축되면서 트위터에 집중했다. 그는 지난 3일 자신의 트위터에 학교 비정규직 호봉제 전환 예산 문제와 관련한 글을 올렸다. "쪽지 예산에 밀려 삭감됐다니 더 안타깝습니다. 제 공약이기도 했는데 미안합니다"라며 간접적으로 대선 패배에 대한 사과의 뜻을 전한 것이다.

문 전 후보는 지난해 12월 대선 직후 노동자들의 자살 소식이 잇따르자, "안타까운 소식에 죄스런 마음을 어찌할 수 없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시길 소망한다"는 글을 시작으로 매일 1~2건의 트윗을 꾸준히 올렸다. 정치현안에 대한 메시지는 최대한 자제해오던 그가 지난달 2일 올린 글은 의미심장했다. 헬렌 켈러의 말을 인용해 "비관주의자들은 별의 비밀을 발견해낸 적도 없고 지도에 없는 땅을 향해 항해한 적도 없으며, 영혼을 위한 새로운 천국을 열어준 적도 없다"는 글을 남겼다.

공교롭게도 법륜 스님이 "안철수로 단일화 됐으면 이기고도 남았다"며 문 전 후보 측을 자극한 날, '비관주의자'에 대한 단상을 피력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문 전 후보가 트윗에 올린 <조선시대 당쟁사>에 대한 감상평과 연관지어 비주류 측의 공세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당내에서는 비주류를 중심으로 '문재인·친노 책임론'과 함께 '문재인 의원직 사퇴'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주말 민주당 워크숍에서는 대선 패배 책임을 놓고 문 전 후보가 진솔한 과오의 고백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컸다. 앞서 대선 과정에서 문 전 후보를 도왔던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은 "문재인 후보가 사생관, 다시 말해 죽을 각오로 대선을 뛰지 않았다"며 실망했다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1496만 표를 얻은 문 전 후보는 민주당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그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말한다. 박기춘 원내대표는 "문 후보는 (당의) 소중한 자산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여러 가지 역할이 기대되는 분"이라고 말했다. 우원식 원내수석부대표도 "지금 야권 전체에서 어떻게 보면 자산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분"이라며 그의 역할론을 주장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문 전 후보가 먼저 나서지 않고 기다린다면, 반드시 (민주당) 지지자들이 그를 불러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 전 후보의 역할론을 얘기하는 쪽은 안 전 후보의 신당 창당시, 민주당의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반면 문 전 후보의 책임론이나 사퇴를 주장하는 쪽은 안 전 후보와의 연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 문 전 후보의 정치재개는 안 전 후보가 비판하고 있는 친노의 부활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문재인·안철수 두 전 후보가 서로에게 목도리를 걸어주고 포옹하는 모습을 다시 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대선 패배의 책임이 있는 두 사람이 결국 야권의 운명을 결정지을 키를 쥐고 있는 것일까?


#안철수#문재인#대선 패배 책임론#광화문대첩#안철수 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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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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