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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존엄성'을 무시한 마지막 인사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지난 3일 한 사람은 세상을 뜨고, 한 사람은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장에 내정된 것을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1992년 8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소위원회에 참석해 일본제국주의가 인간존엄성을 가장 완벽하게 훼손한 '종군위안부 만행'을 전세계 앞에 폭로한 황금주 할머니가 3일 오후 1시 45분경 '한 많은 삶'을 놓았습니다. 향년 92세입니다.

그런데 이날 이명박 대통령은 이강국 헌법재판소장 후임으로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을 헌재소장에 내정했습니다. 고 황금주 할머니와 이동흡 헌재소장 내정자는 서로간에 특별한 관계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내정자가 헌재재판관 시절 낸 의견 하나는 황 할머니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동흡 헌재소장 내정자, '인간존엄성' 무시 의견내...

지난 해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의 배상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분쟁을 해결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습니다. 헌재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려는 국가의 부작위는 위헌"이라며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배상청구권 관련 구체적 해결 노력 하지 않고 있는 것은 피해자의 기본권 침해로 헌법 위배"라고 판결했습니다. 그 동안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을 위해 국가로서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준엄한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헌법재판관이라면 당연히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야 합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했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자행한 종군위안부는 불가침한 인권을 짓밟은 행위였습니다. 하지만 이 헌재소장 내정자는 당시 "정부가 그럴 의무가 없다"는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헌법재판관이 헌법이 명시한 신성한 인권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의견을 낸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일제 위안부 만행을 폭로한 황 할머니가 세상을 뜬 날, 이명박 대통령은 위안부 할머니 가슴에 대못을 박은 사람을 헌재소장에 내정했습니다. 청와대는 내정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MB, 헌법정신 어긋난 헌재소장 내정....

헌법재판관으로 근무하는 동안 자유민주적 헌법질서에 대한 확고한 수호의지와 법과 원칙에 대한 강한 소신을 바탕으로 안정감 있는 판결을 해 왔으며, 뛰어난 식견과 경험으로 헌법재판소를 이끌면서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법치주의를 확고히 구현할 수 있는 적임자임-3일 청와대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선배경'

"자유민주의적 헌법질서에 대한 확고한 수호의지"를 가진 인물이기에 내정했다는 것입니다. 청와대가 생각하고 있는 자유민주의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자유민주의란 인간 존엄성을 가장 잘 구현하는 이념입니다. 그런데 이동흡 내정자의 위안부 관련 의견은 인간존엄성과는 멀어도 한참 멉니다. 

황금주 할머니는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에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같아 허무했는데, 이제 박물관을 통해서 나의 역사를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위로가 된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질곡된 삶을 역사에 남길 수 있다며 감격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황 할머니 마지막 길마저 고통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2011년 헌재가 친일재산 국가귀속 특별법에 대해 헌재가 "친일재산 환수는 민족정기 복원과 3·1운동 정신을 담은 헌법 이념에 비춰 헌법에 부합한다"고 합헌 결정을 내렸을 때도 이 내정자는 "친일 행위와 관계없이 얻은 재산도 있을 수 있지 않으냐"며 일부 위헌 의견을 냈습니다.

'친일재산 환수'도 일부 위헌 의견...

친일 재산 환수는 당연한 일입니다. 이를 헌재가 위헌 여부를 다루는 것 자체가 통곡할 일입니다. 역사학자 전우용씨가 자신의 트위터에서 분노한 이유입니다. 전씨는 자신의 트워티에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일제 재판부의 '유죄' 판결이 무효라면, 매국노들의 재산에 대한 일제 재판부의 '합법' 판결도 무효여야 마땅한다"면서 "그게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한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 맞을 겁니다"고 이동흡 내정자의 재판관 시절 의견을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특히 그는 "이완용을 처단하려다 실패한 이재명 의사도 '적법절차'를 거쳐 사형당했습니다. '친일재산환수법'에 '위헌' 의견을 냈던 사람이 새 헌법재판소장이 됐네요"라며 "친일재산 환수가 위헌이면, 친일파를 처단하려던 사람들은 그냥 '범죄자'가 되는 건가요?"라고 탄식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배상 청구에 국가가 나설 의무가 없다'는 사람이 헌법재판소장에 지명된 날, 또 한 분의 위안부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식민지배자들에게 유린된 인권의 회복을 위해 국가가 나서주지 않으면 누가 나서주나요? 누구를 위한 헌법인가요?"

MB만 아니라 박 당선인도 역사인식 문제점 다시 드러내...

헌재소장에 내정하려면 그 동안 내렸던 판결과 의견 따위를 철저히 검증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안부 관련 의견을 알았을 것입니다. 당연히 '부적격'임을 초등학생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그를 내정했습니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도 사전협의를 했다니 박 당선인의 역사인식 부재가 다시 한 번 드러났습니다.

박 당선인 그 동안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한 역사인식 부재때문에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결국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위안부와 친일재산 관련 의견에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난 이동흡 내정자 임명에 동의해서는 안 됩니다. 박 당선인은 인수위 인사에서 극우성향 인사를 인선해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비판을 받으면 다음 인선에서는 바로잡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특히 헌재소장 임기가 6년이기 때문에 이동흡 내정자가 청문회를 통과하면(2013.1-2019.1) 박 당선인은 자신의 임기 동안(2013.2-2018.2) 헌재소장을 임명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 내정자가 결격 사유가 발생하고, 임기 중 유고가 발생하면 박 당선인이 내정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걸려도 야당과 국민들이 100%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동의할 수 있는 인물을 헌재소장에 내정할 수 있도록 임명권자인 이 대통령에게 조언했었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고, 결국은 야당의 거센 비판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이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인간존엄성'을 무시한 인사를 했고, 박 당선인은 첫단추를 잘못 끼우는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정부때 전효숙 내정자가 스스로 물러난 것처럼 이동흡 내정자 역시 더 큰 논란이 일어나기 전 물러나는 것이 합당한 일입니다.

한편, 황금주 할머니는 올해 첫 위안부 피해 할머니 사망이며, 등록자 가운데 생존자는 58명뿐입니다.


#이동흡#헌재소장#이명박#박근혜#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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