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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단체 예산서 이렇게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 자치단체 예산서 이렇게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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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업은 군수님 특별 관심 사안이기 때문에 꼭 반영해주셔야 합니다."

요즘 전국 기초자치단체는 2013년 예산편성 작업으로 분주하다. 내년도 당초 예산의 의회제출일이 다음 회계연도 시작 40일 전인 11월 20일이기 때문이다.

자립도가 높은 자치단체는 예외일 수 있지만, 전국 대부분의 군 단위 자치단체 예산부서는 지금이 가장 곤혹을 치르는 시기다. 적은 세입으로 국·도비 사업에 대한 부담금과 필수경비를 먼저 나누고, 남은 금액으로 경상경비 등 자체사업 예산을 편성한다.

그러다 보니 각 부서에서 요구한 신규사업 예산은 가용 재원보다 10배 이상 많다. 예산부서에서는 먼저 사업의 연속성을 위해 계속사업에 대한 예산편성을 시작으로 주민숙원 사업 등 필수사업을 체크한다. 이 이후에는 판단이 모호해진다. 그 많은 사업들에 대해 담당자들을 일일이 불러 물어봐야 '지휘부 특별 관심사업이다' '이 사업예산을 반영해주지 않으면 주민들의 항의가 있을 것' 등 다들 죽는 소리만 한다.

"'예산 안 세워주면 일 안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직원들보다 비록 거짓말일지라도 그렇게 적극성을 보이는 직원들 보면 마음이 찡해지기도 하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예산 반영을 못해 줄때는 정말 가슴이 아프다."

화천군청 박관득 예산담당의 말이다.

자치단체도 빈부 격차 심해

밤 10시 화천군청 풍경 해마다 이 시기면 다음년도 예산 편성 작업을 위한 야근은 필수다.
▲ 밤 10시 화천군청 풍경 해마다 이 시기면 다음년도 예산 편성 작업을 위한 야근은 필수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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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화천군의 지난해 재정 자립도는 12.5%. 지방세 등 세외수입 등 자체수입만으로 직원들 봉급도 해결하기 어렵다는 표현이 맞다. 자립도가 낮은 원인은 자주재원 절대부족을 원인으로 들 수 있지만 국도비 등 의존 사업이 많은 경우에도 자립도는 낮아진다.

자체사업 예산반영이 어렵다고 판단한 눈치 빠른 실·과장들은 연초만 되면 중앙부처에 올라가 사업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국비지원을 요청한다. 국비사업의 경우 지자체의 부담이 법적으로 의무화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정책에 의해 국비사업이 결정될 경우는 시·군 예산부서에서는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꼭 필요한 자체사업도 많은데, 별로 시급을 요하지 않는 국비보조사업에 군비를 부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국비 100% 보조사업은 지자체의 입장에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경우다. 그러나 그런 사업은 거의 없거나 극히 드물다. 그나마 국비 70% 지원에 지방비 부담률 30% 정도의 사업은 지자체에서 부담이 덜하다. 그러나 대다수의 경우는 50-50. 즉 국비를 50% 지원 해주고 나머지 반은 지방비로 부담해야 하는 사업들이다. 그래도 그건 좀 낫다. 어떤 사업은 국비 30% 이하에 지방비를 70% 이상을 부담해야 하는 사업도 있다. 그다지 시급한 사업도 아닌데, 지자체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자립도가 높은 자치단체에서는 국비사업예산을 지원해줘도 귀찮다고 안 한다'고 한다는데, 정말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자립도가 높은 시 등의 자치단체에서는 국고 보조사업비 지원을 거부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자체 재원으로 특정 사업추진이 충분히 가능하기도 하거니와 중앙부처의 감시나 간섭이 싫기 때문이다.

보조사업에 대해서는 사업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예산 집행은 적정한지 등에 대해 해당 중앙부처로부터 감사를 받는다. 토지보상 등 지역 여건에 따라 사업이 지연될 때 보조된 예산을 반납하라는 통보를 받기도 한다.

예산담당은 머리를 썼다

각 부서별로 제출된 2013년도 화천군 사업예산은 이미 가용재원을 수십 배나 넘어섰다. 일방적으로 부서별로 예산을 안분해 편성할 수도 없다. 고민 끝에 예산담당이 결정한 것은 각급 부서에서 사업예산 우선순위를 정해 제출토록 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시급을 요하는 사업부터 순서를 정해달라는 것이다.

 우선 순위를 정하기 위한 애쓴 흔적이 보인다.
 우선 순위를 정하기 위한 애쓴 흔적이 보인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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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내년도 우리부서에서 신규 사업으로 제출한 사업이 40여 건에 이릅니다.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모이시라고 했습니다." 

예산담당으로부터 통보를 받은 날, 주무 담당인 나는 우리부서 6명의 담당들을 소집했다. 모두 말없이 서류만 한동안 뒤적인다.

"딱 잘라서 말하겠다. 우리 계에서 제출한 내년도 사업은 꼭 해야 하는 사업들이다. 그러니 모두 우선순위 중 상위에 넣어 달라."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개발담당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우리 계에서 낸 사업도 반드시 해야 하는 사업이다. 빠져서는 안 된다. 1순위에서 5순위 안에 넣어 달라"

예상은 했었다. 그러나 반발이 너무 심하다. 그렇다고 제비뽑기를 할 수도 없는 일. 같은 말만 되풀이 되는 소모적인 논쟁을 계속할 수도 없기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우리도 그렇고 각 담당들이 올린 사업은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재정 여건상 모두 우선순위에 올릴 수도 없다. 각 계장들은 사업의 당위성을 만들어 과장께 보고토록 하고 결정은 과장이 하도록 하자."

그렇게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다. 각 담당들의 주장은 충분히 이해된다. 모두 열의를 가지고 사업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의지이다. 그런데 현실은 예산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데 있다.

재정자립도가 90%가 넘는 어느 자치단체의 예산부서에서는 예산을 얼마든지 지원해 줄 테니 어떤 사업을 추진해달라고 해당 사업부서에 부탁한단다.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 공무원들에게는 부럽기만 한 이야기다.


#화천군#2013년도 예산#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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