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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도남씨. 저는 40대 후반의 박복녀(가명)입니다. 저는 남편과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해서 약 20년간 정말로 악착같이 살았습니다. 남편은 벌고 저는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겨우 작은 아파트를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남편 때문에 이 아파트가 날아가게 생겨서 너무 힘드네요.

남편은 대기업을 다니다가 조직생활에 염증을 느끼고는 그만 두고 보험설계사를 시작했어요. 적극적인 성격 덕분인지 처음에는 수입도 괜찮았습니다. 

다단계.
 다단계.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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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거기서 만족을 못하고 다른 일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다단계사업이었습니다. 제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남편은 이미 보험설계사도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뛰어든 상태였습니다. 이름만 대면 다들 알 만한 다단계 회사였지만 남편에겐 수입은커녕 지출만 눈덩이처럼 늘어났습니다. 갖고 있던 예금이나 주식도 저 몰래 모두 처분했더군요. 대기업 퇴직금도 집에 가져다 주지 않았고요.

벌써 10년이 되어 가네요. 남편이 다단계에 빠져 있는 동안 제가 부업으로 겨우 겨우 가정을 꾸려나갔습니다. 몇 푼 안되던 재산은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카드 연체대금, 친척·지인들에게 갚아야 할 빚, 그리고 집에 빼곡하게 쌓여있는 다단계 회사의 제품들 밖에 없습니다. 

남은 유일한 재산이라곤 아파트 한 채입니다. 그것마저 위태롭게 생겼습니다. 가족들이 이젠 그만 하라고 아무리 설득 해봐도 남편은 "조만간 성공한다,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차라리 이혼하자고 했더니, 남편은 싫다면서도 "정 이혼하려면 남은 재산을 분할하자"고 나오는데,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남편의 이런 무책임한 행동이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는지, 만일 이혼한다면 남은 재산을 남편과 나누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도남씨의 명쾌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남편의 경제적 무능, 이혼 사유일까

안녕하십니까. 이혼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현실에선 제대로 이혼문제 해결을 도와주는 남자, '이도남'입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가로막는 장애물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애정 결핍? 자녀 교육? 시댁·처가와의 갈등? 물론 다 해당될 겁니다. 그런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게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돈입니다. 경제적 문제가 잘 풀리지 않으면 부부 사이도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연을 보내주신 박복녀씨는 다단계 사업을 하는 남편 때문에 이혼까지 고려할 정도로 심각한 고민을 하고 계시는군요. 제가 보기에도 남편께서 이젠 다단계를 접고 다른 일을 시작해보셨으면 좋겠는데요, 고집이 만만치 않으신가 보군요.

다단계 얘기를 꺼내기 이전에 한 번 고민해볼 게 있습니다. 남편의 경제적 무능이 이혼사유가 될 수 있을까요. 법과 판례를 보면 부정적입니다. 많은 가정이 박복녀씨 부부처럼 남편이 직장생활을 하고 아내가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남편만이 경제적 문제를 모두 떠안아서 해결하란 법은 없습니다. 함께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요.

법원은 "혼인은 남녀의 애정을 바탕으로 하여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 풍속적으로 정당시되는 결합으로서 부부 사이에는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민법 826조도 부부 사이에 동거, 협조, 부양의무를 들고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도 의무가 있다?

기사 관련 민법조문
제826조(부부간의 의무)

① 부부는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하여야 한다. 그러나 정당한 이유로 일시적으로 동거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서로 인용하여야 한다.

② 부부의 동거장소는 부부의 협의에 따라 정한다. 그러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청구에 의하여 가정법원이 이를 정한다.

제840조(재판상 이혼원인)
부부의 일방은 다음 각호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에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1. 배우자에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2.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3.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4.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5. 배우자의 생사가 3년이상 분명하지 아니한 때
6.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남편이 구직 중이거나 학업 등의 이유로 취업준비 중이라서 경제활동을 못한다고 해서 이것이 바로 이혼당할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때는 아내라도 직장생활에 나서는 것이 맞겠지요. 따라서 경제적 이유 때문에 부부 사이에 갈등이 빚어진다면 이것은 함께 책임지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경제적 어려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입니다. 만일 남편이 정당한 이유 없이 가족들의 어려움을 외면하거나 방치한다면, 또는 방탕한 생활로 경제활동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충분히 이혼사유가 될 수 있겠지요.  

부부 중 한 사람이 다단계 사업을 하는 바람에 불화가 생기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다단계 사업에 종사하는 것 자체가 이혼사유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겠습니다. 불법으로 운영되지 않는 이상 그것도 직업으로 인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계속 금전적인 손실을 보면서도, 남은 재산을 축내면서까지 사업에 뛰어든다면 그것은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거나 부부의 의무를 방기하는 결과가 빚어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다단계 사업 때문에 이혼 소송까지 가게 된 사례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혼이 받아들여진 A씨(남편)와 B씨 부부 사례입니다. A씨는 다단계 사업을 하다가 거액의 채무를 지고, 전혀 가정경제를 돌보지 않아서 부부 사이에 갈등을 겪었습니다. 급기야 두 사람은 합의하에 몇 년동안 별거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편 A씨는 별거 기간 동안에도 생활비나 자녀 양육비를 전혀 지급하지 않았고 B씨는 오로지 자신의 수입만으로 자녀를 키우고 생활을 꾸려갔습니다.

법원은 "두 사람의 혼인관계는 경제적인 문제로 인한 오랜 기간의 별거생활 등으로 인하여 더 이상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파탄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며 B씨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8월 8일 인천지법 부천지원 사건)

엊그제 대구가정법원에서도 이와 비슷한 판결이 있었습니다. 두 자녀와 아내(D씨)를 둔 40대 C씨는 다단계 사업을 하다가 가사를 탕진했습니다. C씨는 그러고 나서 거액의 빚을 진 다음에 2004년경 무단으로 가출을 하여 현재까지 가족과 연락을 끊어 버렸습니다. 기다리다 지친 D씨는 C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혼하는 것이 옳다"며 원고승소판결을 내렸습니다.

"배우자가 다른 일방을 악의로 유기할 때"란?

혼인관계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혼인관계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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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연재에서 말씀드렸듯이 이혼 재판에서는 민법 840조에서 정한 여섯 가지 사유에 해당해야 이혼이 가능합니다. 앞서 소개한 두 사건에서 법원은 재판상 이혼사유 중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악의로 유기한다'는 말은 "배우자가 정당한 이유없이 서로 동거, 부양, 협조하여야 할 부부로서의 의무를 포기하고 다른 일방을 버린 경우"를 뜻합니다.

부부 한 쪽이 장기간 무단으로 가출하거나 상대방을 내쫓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물론 일시적인 감정으로 잠시 집을 비운 정도로는 이혼사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가정생활을 유지할 의사가 없거나 부부공동생활을 할 뜻이 없을 정도로 부재가 오랜기간 계속되어야 합니다. 

즉 법원은 다단계 사업을 했다는 것 자체보다는 그 이후 가정을 방치하거나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이혼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또 두 가지 사례는 악의의 유기와 함께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로 볼 수도 있습니다. 법원은 "부부간의 애정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할 혼인의 본질에 상응하는 부부공동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고 그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에 이혼을 허용해야 한다고 판시해왔습니다.

반면, 남편이 다단계 사업을 했지만 아내의 이혼청구를 기각한 사례도 있습니다. 60대 여성인 E씨는 남편 F씨가 다단계 사업과 종교에 빠져서 가정에 소홀히 하였고,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서 대화를 거부해왔다며 가정법원에 이혼소송을 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F씨가 가정에 소홀히 한 점은 있으나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고 E씨가 바라는 바대로 노력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혼인이 돌이킬 수 없는 정도로 파탄되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이혼을 받아주지 않고 부부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습니다.  

"부부는 애정과 신의 및 인내로써 서로 상대방을 보호하여 혼인생활의 유지를 위한 최선을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고, 혼인생활 중에 그 장애가 되는 여러 사태에 직면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부부는 그러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법원은 두 사람에게 아직 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박복녀씨의 경우는 어떨까요. 사연으로 다시 돌아가 봅니다.

박씨의 남편은 무리한 다단계 사업으로 가정에 어려움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재판상 이혼 사유 중 하나인 '악의의 유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로 볼 수 있을지는 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만일 가족의 생계가 곤란할 정도인데도 집을 팔아서 무리하게 다단계에 투자할 정도라면 법원에서 이혼사유로 판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혼할 때 누구나 재산분할 청구할 권리 있다 

마지막으로 재산분할 문제입니다. 원칙적으로 부부는 이혼할 때 재산분할을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설사 한쪽이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재산분할을 안 해줄 수는 없습니다.

법원의 판례도 부부가 함께 협력하여 이룩한 재산은 분할대상 재산에 해당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부부재산은 재산형성의 기여도 등을 고려하여 정하게 되는데 남편이 가정에 소홀히 하거나 손실을 입혔다 하더라도 그 사정은 어느 정도 참작이 될 수 있을지언정 재산분할을 안 해줄 명분은 없습니다.

만일 부동산이 유일한 재산이라면 두 분이서 일정한 지분대로 나누거나 아니면 한 쪽이 현금을 받고 다른 한 쪽이 부동산의 소유권을 갖는 방식이 될 것입니다. 재산분할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반적으로 기여도에 따라 40~60% 선에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복녀씨, 힘드시겠지만 남편이 무단 가출하거나 딴 살림을 차리는 정도는 아니므로 명백한 이혼사유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일단은 두 분이서 관계회복을 위해 노력해 보셨으면 합니다. 남편이 마음을 돌리는 게 우선이겠지요. 이혼은 그 다음에 생각해 보실 문제입니다.

만일 이혼할 결심을 굳혔다면 그동안 있었던 일을 잘 정리해서 이혼 소장에 기재하고, 남편이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밝힐 만한 객관적인 자료를 첨부하여 재판을 하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재판에서 이기려면 법원을 설득해야 하니까요. 부디 이혼까지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연재기사와 관련해 알려드립니다
1. 기사에서 언급한 상담내용은 개인의 신상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명을 사용했으며, 사연을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2. 여러분의 의견을 받습니다. 현재 이혼 문제로 고민 중이거나 부부생활과 관련된 궁금한 점, 그 밖에 부부문제, 자녀양육의 법적 상담이 필요하시다면 연락주십시오. 여러분과 함께 고민해보겠습니다. 연애중이거나 결혼을 앞둔 남녀의 고민도 환영합니다. 단 소송중이거나 개인 간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사건은 사양하며, 전화나 면담상담은 하지 않습니다. 보내주신 상담내용은 개인의 신상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연재기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보내실 곳 : jundorapa@yahoo.co.kr

덧붙이는 글 |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법률책 <생활법률 상식사전>(2010)과 <생활법률 해법사전>(2011)을 썼습니다.



태그:#이도남, #다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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