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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뚱한 사람을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범의 '얼굴'이라고 보도한 <조선일보> 9월 1일자 1면.
엉뚱한 사람을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범의 '얼굴'이라고 보도한 <조선일보> 9월 1일자 1면. ⓒ 조선일보PDF

수화기 너머로 마른기침 소리가 계속 들렸다. 지난 1일 <조선일보>의 오보로 '나주 성폭행 사건'의 범인이라고 잘못 알려졌던 A씨는 "토요일부터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계속 돌아다녀서 몸살기가 있고 머리도 아프다"고 말했다. 지난 3일 동안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A씨는 3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제2의 피해자가 나오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번 일은 "서로 언론사들끼리 경쟁하다보니 일어났다"며 "(앞으로 언론이) 심혈을 기울여서, 한 번 더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태풍 피해 집안에 '설상가상'... 부모님, 잠도 못 주무신다"

- 목소리가 안 좋다.
"토요일부터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오늘도 (사태 해결하려고) 계속 돌아다녔다. 밥도 제때 못 먹었다. 몸살기에 머리도 아픈데, 정신도 없다. 이제 눈 좀 붙이려고 한다."

- <조선일보>에 본인의 얼굴이 실렸다는 건 어떻게 알았나.
"(자고 일어나 보니 친구들로부터) 부재중 전화 몇 십 통이 와 있더라. 처음엔 가족이나 집안에 무슨 일이 생겼는 줄 알았다. 전화해보니 기사 좀 보라고 하더라. 처음엔 합성인 줄 알았다. 친구들이 개그 쪽(지망생)이니까 아침부터 장난치는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까 아니더라. 충격을 받아서 한 30, 40분 정도 멍하니 있었다."

- 마음을 좀 추스르고 나서 친구들과 포털에 글 올리기로 상의한 건가.
"승연이(포털 사이트에 글을 올려준 친구)가 '인터넷에 글을 올려줄까' 묻더라. 뭔가 해명은 하고 싶은데 기댈 곳이 없어서 그렇게라도 해달라고 했다. 토요일에 (신문에 사진이 실렸다는) 전화를 받고, 언론사에도 친구가 먼저 전화해줬다. 경찰서로 가며 부모님께 계속 전화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대신 좀 알아봐달라고 했다."

- 본인뿐 아니라 가족, 친구들 모두들 놀랐을 텐데.
"저는 스스로 성실하고 열심히 살고 착한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근데 느닷없이 이런 일이 생기니까…. 갑자기 제 친구들한테도 다른 사람들이 '네 친구가 나주 성폭행사건 범인이냐'고 하니까 충격을 받았다. (제가 아니라고 해명하느라) 제 친구들도 남들과 싸우고, 저를 걱정하고….

포털 사이트에 글 올린 승연이는 실명까지 밝히면서 저를 도와줬는데 '거짓말이다, 고소하라'는 댓글이 달렸더라. 정말 어이가 없었다. 제가 미안하다고 했더니 승연이가 '이런 거 감수하고 글 썼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또 저랑 같이 사진 찍은 친구까지 얼굴이 알려져 곤란한 상황이 됐다."

"곧 <조선일보> 간부들 만날 것... 직접 사과받고 대응 결정"

- 부모님은 오보 소식에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
"집에도 안 좋은 일이 있던 상황이었다. 저희 집이 전라남도 완도 쪽인데, 이번 태풍으로 쑥대밭이 됐다. 그 상황에서 아는 분 장례식에 다녀오는 길에 제 일까지 터지니까 온통 스트레스다. 부모님도 계속 잠을 못 주시고 식사도 제대로 못 하셨다. 아들이 하루 아침에 성폭행범이 된 건데, 악질 성폭행범이라고 알려진 얼굴이 아들이었는데 어떻겠냐. 저도 그렇지만 가족이나 친지분들도 충격을 많이 받으셨다. 다들 정신적 피해를 입었지만, 엎지른 물이어도 빨리 대처하자고 하셨다."

- 당시 <조선일보>에서 연락은 있었나.
"1일 오후 1시쯤 전화가 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결론적으로 실수였다고 하더라. 저는 너무 화가 나서 '아니 말이 되는 소리냐, 그런 게 먹힐 것 같냐. 나로선 무차별 공격을 당한 것과 똑같다'고 항의했다. 그랬더니 만나자고 했다. 가족들과 상의 후 일단 그날은 만나지 않기로 했다. 제가 원하는 날짜에 곧 <조선일보> 간부들과 만날 예정이다. 아직 시기는 확실히 정하지 않았다."

- 전날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것에 이어 3일 신문에도 사과문이 실렸더라.
"사과문에서 '죄송하다'고 한 내용은 봤다.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직접 사과도 받고 나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하려고 한다. 일이 좋은 쪽으로 아니면 나쁜 쪽으로 진행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조심스럽다."

- 이번 일 겪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하나밖에 없다. 언론사들끼리 서로 경쟁하다보니까 일어난 일이다. 심혈을 기울여서 한 번 더 확인 또 확인했어야 했다. 더 이상 제2의 피해자가 안 나오길 바란다."

- 오보의 또 다른 배경에는 범죄자 신상공개 문제가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신상공개해야 한다고만 봤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며, 설령 공개를 하더라도 정확하게 확인해서 이런 사례가 다시는 없도록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조선일보#나주#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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