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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빠 오늘 나하고 같이 가실 거예요?"
"어디를?"
"오늘 시 낭송 대회 하잖아요."

"시낭송 대회?"
"오늘 제가 시 낭송 대회 참가해요. 27번이예요."

"몇 시부터 하는데?"
"10시인지 11시인지 잘 모르겠어요."

막둥이, 시 낭송 대회 시간도 잘 모르고 참가

시 낭송 대회를 참가한다는 막둥이 말에 조금 멍해졌습니다. 그리고 몇 시에 하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막둥이.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토요일(14일) 아침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시간을 보니 오전 9시 40분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이것저것 정리한 후 시 낭송 대회를 하는 경남청소년수련관에 갔습니다. 역시나 였습니다. 대회 시간은 10시였습니다. 다행히 번호 27번이라 아직 막둥이 차례는 아니었습니다.

시낭송 대회에 참가한 아이들이 자기 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낭송 대회에 참가한 아이들이 자기 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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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당이 가득 찼습니다. 아이들은 지난 몇 달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뽐냈습니다. 소근거릴 정도로 작게 말하는 아이, 글을 읽는 것처럼 낭송하는 아이, 어떤 아이는 '웅변'처럼 목소리 높였다가 낮추기도 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시를 잊어버렸는지 중간에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레와 같은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시 낭송 대회'는 우리 집안에서 처음

시 낭송 대회는 우리 집안에서 처음입니다. 그런데 막둥이가 참가하다니. '경사났네, 경사났어'입니다. 막둥이가 시낭송 대회에 참가할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집에서도 시를 외우는 모습을 전혀 보거나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알고보니 한 달 전 쯤 엄마에게 시 낭송 대회에 참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내도 이내 잊어버렸습니다. 이유는 저처럼 막둥이가 집에서 시를 외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시를 외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과연 시를 다 외웠을까? 중간에 내려오면 어떻게하나?

"김막둥 시 다 외웠니?"
"다 외웠어요?"

"무슨 시 외웠는데?"
"권오삼 선생님 '물도 꿈을 꾼다'예요."
"아빠는 잘 모르는 시이지만 막둥이는 잘 할거야"
"조금 떨려요."
"괜찮아. 막둥이는 잘 할 수 있어. 까먹으면 그냥 내려와도 돼. 아빠는 시 낭송 대회에 참가한 막둥이가 대견하니까. 우리 집안에서 처음이야."


시낭송을 하고 있는 막둥이. 막둥이가 이런 대회에 나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시낭송을 하고 있는 막둥이. 막둥이가 이런 대회에 나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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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막둥이 차례가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잘했습니다. 한 번씩 머뭇거렸지만 다 외우고 내려왔습니다. 감정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다른 아이들보다는 못했지만 아내와 저는 감동했습니다. 이유는 '막둥이'가 시 낭송을 그것도 100명이 넘는 사람 앞에서 했기 때문입니다.

"막둥이 정말 잘했어!"
"아빠 잘 외웠어요?"
"그럼 잘 외웠지. 아빠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그런데 아내가 그만 당시 낭송 동영상을 지워버렸습니다. 결국 집에서 다시 낭송하는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났습니다. 막둥이가 낭랑한 목소리로 낭송한 '물도 꿈을 꾼다'를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입상을 했는지 궁금하신가요? 아빠와 엄마가 마음으로 일등상을 주었습니다.

▲ '물은 꿈을 꿉니다' 우리 집 막둥이가 시낭송 대회에 나갔습니다. "물은 꿈을 꿉니다"라는 권오삼님의 시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그만 당시 낭송 동영상을 지워버려 집에 와서 다시 낭송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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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도 꿈을 꾼다-권오삼

물도 꿈이 있기에 꿈을 꿉니다
꿈을 꾸기에
어디론가 흘러갑니다

작은 나뭇잎 싣고
조약돌 위로
졸졸졸 소리 내어 흐르면
노래하는 개울물이 되는


달과 별
산 그림자를
가슴에 품고 하늘을 우러르면
한없이 고요해지는 마음
생각하는 호수가 되는


벼랑을 만나면
스스로 몸을 던져
천지를 울리며
하얀 물보라를 피우는
폭포가 되는


물도 꿈이 있기에 꿈을 꿉니다
꿈을 꾸기에
노래하고
생각하고
물보라를 피우며
어디론가
흘러갑니다.


태그:#막둥이, #시낭송 대회, #권오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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