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 동생, 조카와 함께한 경복궁 나들이 차멀미가 심한 엄마도 궁나들이를 참 좋아하셔서 때마다 궁을 찾는다. 궁을 다녀오면 며칠이고 그 이야기를 하시는 엄마에게 죄송하면서도 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엄마, 동생, 조카와 함께한 경복궁 나들이차멀미가 심한 엄마도 궁나들이를 참 좋아하셔서 때마다 궁을 찾는다. 궁을 다녀오면 며칠이고 그 이야기를 하시는 엄마에게 죄송하면서도 또 감사한 마음이 든다. ⓒ 박윤경

엄마는 아직도 종종 말씀하신다. 중매로 아빠와 선을 봤을 때 얼굴은 까맣고 작은 눈에 단발머리의 키 작은 시골총각이 별로였다고. 당시만 해도 어려운 형편이었던 외가댁으로선 얼른 한 입이라도 덜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도 평생을 함께할 사람인데 호감이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큰이모는 엄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고 한다. 두 번째 만남에서 양가 어른들과 함께 상견례를 하기로 했는데, 그때도 맘에 안 들면 엄마더러 이모 팔을 살짝 꼬집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운명의 날, 상견례 자리에 앉고 보니 엄마는 아빠가 갑자기 불쌍해 보였다고 한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여자들의 측은지심인지. 결국 결혼식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멋진 결혼식을 시작으로 험난한 결혼생활이 시작되었다.

이 이야기는 몇 번을 들어도 참 당황스럽다.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될 텐데, 왜 그랬는지 이해 못하겠다고 하면 엄마는 "그러게 말이다" 하시곤 웃으신다. 아빠랑 결혼하지 않았으면 아마도 지금쯤 동네 소금가게 아저씨랑 결혼해서 편하게 살았을 거라고 하시는데. 고생만 하고 살아오신 엄마가 속상해 때때로 "왜 그때 소금가게 아저씨랑 결혼하지 그랬냐?"고 물으면 엄마는 말씀하신다. "그럼 너희가 태어나지 못했을 텐데?" 하고.

엄마와 아빠가 부부의 연을 맺어 함께 살아오신 지도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다. 오빠와 나, 동생이 하나하나 커가는 과정 속에서 엄마는 참 많은 어려움을 헤쳐와야 했다.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친할머니의 호된 시집살이와 나이 어린 시동생들까지. 정말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을 지금도 나는 끊임없이 듣고 있다.

게다가 무뚝뚝한 엄마에게 자상하고 부드러움을 바라는 아빠, 전형적인 전라도 남자에 말도 많고 술 좋아하는 아빠에게 선비 같은 면을 바라는 엄마는 어쩌면 처음부터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요즘에는 성격이 조금만 안 맞아도 바로 이혼을 하는 세상인데, 용케도 다른 성격에 삼십 년을 넘게 살아오신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난 가끔 엄마와 아빠께 묻는다. 도대체 왜 삼십 년을 넘게 살아도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그런데 거기에 또 엄마가 대답하신다. "그러게 말이다"라고. 어릴 적에는 엄마의 "그러게 말이다"라는 말이 참 싫었다. 너무 체념한 듯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나이가 드니 이제 조금을 알 것 같다. 그것이 오랜 세월 함께해온 부부이기에 나오는 편안한 체념(?)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다툼과 오해 속에서도 엄마와 아빠는 삼십 년을 넘게 함께해 오시고 있다. 여전히 불같이 싸우고 투닥거리지만 그래도 우리는 꽤 유쾌한 가족이다. 이 유쾌함이 내내 이어졌으면 하는 것이 지금의 내 큰 바람이다.

33년 전 5월, 우리 엄마와 아빠는 결혼을 하셨다. 만약 상견례 자리에서 엄마가 이모의 팔을 꼬집었더라면 나는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것이고 기막힌 것인가 보다.

엄마, 앞으로도 이렇게 아빠, 우리랑 때론 친구처럼 투닥거리며 지내요. 사랑해요, 엄마!

덧붙이는 글 | * '기사공모 - 나의 어머니' 응모글입니다.



#어머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