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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병교육대 수료식 후 아들과 함께 한 컷.
 신병교육대 수료식 후 아들과 함께 한 컷.
ⓒ 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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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간 아들에게 만 원만 부쳐달라는 전화가 왔다. 평소에 담배도 안 피우고, 간식도 잘 안 먹는 아들이 일병 월급 8만 8천 원으로 한 달을 잘 보내리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만 원을 보내라니…. 지난해 10월에 입대한 이후 지금껏 한 번도 그런 적이 없기에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아들에게 물었다.

"제가 군에 오기 전, 올해 1월부터 '나라사랑' 카드에서 매달 5만 원씩 빠지는 적금을 들고 왔어요. 이병 때는 월급 7만 8천 원을 받아서 5만 원정도 적금하고, 나머지 돈으로 생활했어요. 그런데 일병이 되니까, 월급은 더 많아졌지만, 신병 대대에서 우리 대대로 배치되는 사병과 가끔은 PX(군대 매점)도 갔어요. 또 전투 모자도 사고, 계급장을 수선하는데도 돈이 필요했어요.

또, 매달 적금이 빠지는 날짜가 30일인데 12일로 할 수 없는지 은행에 알아봐 주세요. 월급을 타는 다음날 바로 빠질 수 있게. 그래야 적금부터 빠진 후 나머지 돈을 조절해서 생활하려고요."

아들의 고백에 깜짝 놀랐다. 우리 집 경제력은 풍족하지 않지만, 남편과 내가 열심히 일해서 군대 간 외아들을 경제적으로 어렵게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아들은 군대에 가서도 알뜰히 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너무 짠돌이라고 미움받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현했더니, 아들은 "별걱정을 다 합니다"고 말했다. 덧붙여서 아들은 "밥이 잘 나오기 때문에 간식을 먹고 싶지 않고, 여자 친구도 없어서 선물을 살 일도 없어요"라며 "제 의지를 한번 시험해 보고 싶어서 적금을 들었습니다"고 말했다.

 아들이 적금하고 있는 나라사랑 통장
 아들이 적금하고 있는 나라사랑 통장
ⓒ 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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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의지를 시험해 보려고 적금 들었어요"

아들에게 한 가지 제안하고 싶다. 다음에 전역하더라도 그 돈은 쓰지 말고, 고이 간직이라고 말하고 싶다. 군대에서 받은 훈장처럼. 군대 월급으로 모은 돈의 맛은 그 어떤 돈보다 가치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 달에 8만 원 남짓한 월급으로 어떻게 저축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을까? 곰곰이 따져보니, 아들의 절약 정신은 우리 부부가 생활 속에서 가르친 것 같다.

 곧 자대에 들어갈 아들과 함께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곧 자대에 들어갈 아들과 함께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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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흔한 모델하우스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또, 주식이나 펀드는커녕 복권조차 사 본 적이 없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남들은 아파트를 분양받아서 비교적 수월하게 집을 마련했다고 들었다. 몇 채를 분양받아 억대의 프리미엄을 주고 팔아, 돈벌이하기도 한단다.

솔직히 옛날에 살던 집 바로 옆 부천 상동 지구에서 아파트를 분양하는 줄도 몰랐다. 내 일에 미쳐서 정신없이 강의 들으러 다니고 강의를 하다 보니, 부동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러다 보니 지금 사는 집을 살 때도 1억 원대의 프리미엄을 주고 샀다. 그때 받은 대출금을 갚느라고 아직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독서 토론 강사로 활동하여 받은 강사료는 기껏해야 시간당 3만 원 내외다. 1시간 강의를 위해서는 그 몇 배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수업 준비부터 학생, 학부모 관리까지. 3개월 단위로 수강생을 모집하는데, 수강생이 떨어지면 바로 폐강이다.

학부모 공개 수업에다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학기 종료시점마다 학생과 학부모 만족도 조사해야 한다. 여기서 역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1년마다 하는 재계약이 불투명해진다. 이런 살얼음판을 딛는 듯한 생활을 10년 이상 해 오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래도 내가 참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3개월짜리 인생(?)을 10년 이상 버텨왔으니 말이다.

1시간을 강의하기 위해서는 온 집안에 신문과 책 등을 늘어놓고 강의안을 짜낸다. 그 모습을 아들은 보고 자랐다. 한 학기가 끝날 때쯤에는 학생들이 활동한 자료를 걷어와서, 상황을 체크하며 밤을 새워가며 평가서를 썼던 모습도 지켜보았다.

집에서도 수업의 연장 선상에 있는 나를 보고 아들은 "엄마는 수업하는 시간보다 준비하는 시간이 더 많다"며 "그만 하고 밥 달라"고 푸념했었다. 아들이 군대에 가서 했던 첫 마디가 "군에 오니, 제시간에 밥이 딱딱 나와 좋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종합소득세 신고를 해 주는 친동생이 한 말도 내내 잊혀 지지 않는다. "언니는 몇 군데를 장돌뱅이처럼 돌아다니며 일을 하는데 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수입이 적다"고 안타까워했다.

아들은 엄마의 생활을 지켜보며 돈을 버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군에 가서도 절약하는 생활이 몸에 밴 것 같다. 한 짝 잃어버린 장갑을 버리지 못하고, 휴가 때 집에 가져온 '짝 잃은 장갑'을 보고 나는 울었다. 아들은 "두툼한 방한용 장갑이 아까워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한 쪽을 잃어버린 아들의 장갑, 차마 버리지 못 하고 가져오기까지 했다.
 한 쪽을 잃어버린 아들의 장갑, 차마 버리지 못 하고 가져오기까지 했다.
ⓒ 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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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주식이니, 부동산이니 등으로 한방에 쥘 수 있다는 그 돈. 나는 평생을 벌어도 못 벌 것 같다. 둘러보면 부모님가 물려 준 재산으로 일찍이 내 집을 마련하여 편하게 살아가는 주변 지인도 있다. 그러나 난 그런 사람이 결코 부럽지 않다. 벌이 꿀을 모으듯, 차근차근 일구어 가는 재미도 쏠쏠하기 때문이다. 진정, 돈의 소중함도 가슴 깊이 깨달을 수 있기에 허투루 돈을 쓰지 못한다.  

무엇보다 아들이 이렇게 생활하는 나를 보고 돈의 가치를 알고, 군대에 가서도 체계적인 경제 개념을 익히고 있는 점이 기특하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부모들이 저지르는 큰 실수 중 하나는 아이에게 돈을 관리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군인 월급으로 모은 종잣돈을 계기로, 건전한 돈의 단맛을 알아가고 쓸 줄 아는 아들이 되었으면 한다.


#돈의 맛#일병 엄마가 전하는 병영일기 #군대생활#군인 월급#일병 아들의 적금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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