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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포동 주공아파트 1단지 내 상가. 부동산 중개업체들이 다수 입주해있다.
개포동 주공아파트 1단지 내 상가. 부동산 중개업체들이 다수 입주해있다. ⓒ 김동환

"없어요. 전화도 한 통 온 게 없어."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아파트 5단지 인근의 K부동산 중개업소 양승주(가명) 대표는 기자임을 밝히자 "손님은 안 오고 웬 기자들만 온다"며 투덜거렸다. 정부는 이날 오전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 분양권 전매제한기한 축소 등을 뼈대로 하는 부동산 규제 완화 대책을 발표했다.

양 대표는 따끈따끈한 정부 대책에 대해 "이미 두 달 전부터 소문이 돌았던 쉰 떡밥"이라고 평하며 "시장에 반응이 없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 개포동에서 만난 4명의 공인중개사들 모두 양 대표와 같은 생각이었다. 주공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개포동 주민들 역시 "하나마나한 수준의 규제완화"라고 입을 모았다.

부동산 중개업자, "나 같아도 안 당겨"

강남구 개포동 주공아파트는 1만 가구가 훌쩍 넘는 대규모 재건축을 추진 중인 강남의 대표적인 재건축 관심지역이다. 59.50㎡(18평) 이하 집들이 저층으로 쌓여있는 1, 2, 3, 4단지와 112.40㎡(34평) 이하의 비교적 넓은 면적의 집들이 고층으로 쌓인 5, 6, 7단지로 구분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1, 2, 3, 4단지에는 실소유주가 거주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5, 6, 7단지에는 비교적 거주하는 집주인들이 많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개포 2동 주민센터 부근에서 만난 5단지 주민 김성한(가명)씨는 오전에 발표된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해 "별 기대 안 하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부동산 가격이나 거래량으로 보면 강남3구는 이미 투기지역이 아니다"라며 "실질적으로 투기지역이 아닌 곳을 투기지역에서 해제하는 대책을 발표한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5단지 112.40㎡ 아파트의 요즘 시세는 8억6천만 원. 2006년경 찍었던 최고가 13억5천만 원에 비하면 약 40% 정도 낮아진 가격이다. 거래량도 계속 말라있는 상태다. 이 인근 L부동산 중개업소 김영수 대표는 "5, 6, 7단지 근처에 부동산 중개업소가 20여 개 있는데 그 업소들이 한 달에 한 건 하면 장사 잘하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이번 대책 내용이 두 달쯤 전부터 돌았는데 뭔가 효과라고 느낄 만한 징후는 없었다"며 "솔직히 나 같아도 지금 조건이라면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교적 평시 거래량이 많은 편인 1, 2, 3, 4단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개포동 1단지 안 상가의 ㄱ부동산 중개소의 이진희(가명) 팀장은 "이쪽(1단지) 같은 경우는 4월에는 거래가 좀 많았는데 5월 들어 점점 줄더니 오늘은 전화도 없다"고 말했다.

"우리 집은 광고도 많이하고 이렇게 정부 정책 발표 같은 게 있으면 600명 넘는 관리고객들에게 문자 안내도 다 보내드리거든요. 관리고객들이 이런 소식에 민감한 고소득자나 전문직 종사자들이어서 기대감이 있으면 보통 전화가 빗발치게 옵니다. 그런데 전화가 한 통도 없어요."

"지금 같은 경기엔 무슨 대책도 안 통해"

정부가 발표한 이번 부동산 대책의 이름은 '주택거래 정상화 및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지원방안'이다.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시키겠다고 발표한 정책에 왜 시장은 묵묵부답일까? 현장 상인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이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안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진희 팀장은 "사실상 이 정도면 정부가 풀 수 있는 건 다 푼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사람들이 집값이 오른다는 확신을 안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4월에 급상승했던 1, 2, 3, 4단지 아파트 가격을 가까운 예로 들었다.

이 팀장의 설명은 이렇다. 이 지역은 원래 재개발을 놓고 서울시와 주택정책 갈등이 있었는데 4월 말 박원순 시장이 다녀가면서 재개발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고 그것이 바로 급격한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6억2천만 원대에 매물대가 형성됐던 이 지역 42.98㎡(13평) 아파트 가격은 일주일 새 6억8천만 원까지 올랐다.

 개포동 주공아파트 1단지.
개포동 주공아파트 1단지. ⓒ 김동환

ㅂ부동산 중개소 문성호(가명) 대표 역시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어붙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규제가 어떻든 산 집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확신만 있으면 사람들은 땡빚을 얻어서라도 집을 산다"는 게 문 대표의 생각이다.

문 대표는 "지금과 같은 경기 상황에서는 무슨 정책을 써도 안 통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LTV(주택담보인정비율)과 DTI(총부채상환비율)를 더 풀어주면 거래가 늘어날 거라고 하는데 요즘 집 사러 오는 사람들 거의 자기 돈만 가지고 사러온다"며 선을 그었다.

부동산 매매에 따른 세금 비율 자체를 큰 폭으로 조정하면 반응이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ㅇ부동산 중개소의 한희경(가명) 팀장은 "강남에서 부동산 거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주택자들이라 집 살 때마다 집값의 4.6% 정도를 취등록세로 내야 한다"며 "이런 세금을 파격적으로 감면해주면 거래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5단지 주민 이유경(가명)씨는 "살고 있는 아파트가 너무 옛날 집이라서 이사하고 싶지만 취등록세 같은 세금 부담 때문에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이씨는 이날 기자가 부동산 중개소들을 돌아다니며 마주친 유일한 고객. 그녀는 "정부가 대책을 내려면 시장원리에 맞게 자유로운 거래를 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개포동#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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