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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의 봄  이 일주문을 통하게 되면 자재암의 경내로 들어가게 된다
▲ 소요산의 봄 이 일주문을 통하게 되면 자재암의 경내로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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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 뒤의 소요산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23일 작은 금강산이라고 불리는 소요산을 찾았다. 주말 이틀 동안 내내 비가 내려 문득 소요산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계절의 여왕 5월을 며칠 앞둔 탓인지 나무마다 어린 새싹이 돋아나 산이 차츰 푸르러지고 있었다.

평일인데다 비 온 뒤끝이라 그런지 모처럼 소요산은 한산하기 그지 없다. 평소 같으면 북새통을 이룰 산행길이지만 오늘은 산이 휴식을 맞아 안도의 숨을 쉬고 있는 것 같다. 산행에 접어들자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물소리였다. 안개 때문에 산은 구름위에 떠 있는 것 같다. 여기저기서 콸콸 쏟아지는 물은 아름다운 노래소리처럼 들렸다.

단풍나무길이 오늘은 화사한 꽃길로 변해 있다. 단풍나무에도 연한 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다. 북적거리던 먹자골목도 모처럼 한산하기 그지없다. 길거리에서 산나물을 파는 아주머니의 얼굴에 봄이 묻어나는 듯 화사하다. 하지만 오늘은 손님이 없어 산나물을 많이 팔수 없을 것같다며 섭섭한 표정을 짓는다.  

소요산을 오르는 동안 계곡에서는 맑은 물이 콸콸 소리내고 흐른다. 평소에는 바닥을 들어내고 작은 웅덩이 같은 곳에 물이 조금 고여 있을 뿐이었는데 오늘은 온통 여기저기서 물이 흘러넘쳐 소요산은 물소리로 가득하다. 계곡 군데군데 나무들이 앙상한 뿌리를 들어내고 있어 2011년 폭우의 아픔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소요산의 봄 원효대 아래에 있는 작은 동굴, 원효대사가 원효대에서 수행에 전념하다 피곤하면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고 한다.
▲ 소요산의 봄 원효대 아래에 있는 작은 동굴, 원효대사가 원효대에서 수행에 전념하다 피곤하면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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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의 봄  원효폭포의 모습, 원효동굴 옆에 있으며 높이 10미터로 많은 물이 흘러내려 장관을 이루고 있다.
▲ 소요산의 봄 원효폭포의 모습, 원효동굴 옆에 있으며 높이 10미터로 많은 물이 흘러내려 장관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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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은 해발 587미터로 기암괴석이 절묘하게 봉우리를 이루고 있어 만물상을 연상케하고 있는 산이다. 심연 계곡의 오묘한 정취와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은 경기의 소금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 소요산의 자재암은 실라 선덕여왕 14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깊은 사찰로 보물 제1211호로 지정된 반여바라밀다심경약소가 보관되어 있다.

일주문을 들어서자 원효대사의 숨결이 들리는 듯하다. 요석공원이 있는데 이곳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와의 깊은 사랑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30대의 원효대사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나에게 자루없는 도끼를 빌려주면 나는 하늘을 떠받드는 기둥을 찍으리라 ' 하자 당시 임금이었던 무열왕은 필경 귀부인을 얻어서 귀한 아들을 낳겠구나, 하고 요석공주와 짝을 지어주어 설총을 낳게 했다.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은 후 원효대사는 파계승이 되어 속인의 옷을 입고 표주박을 두드리면서 노래하고 춤추며 교화하던 중 괴암 괴석으로 아름다운 소요산에 머물면서 수행에 전념하게 되자 요석공주는 아들 설총을 데리고 이곳에 와서 작은 별궁을 짓고 아침 저녁으로 원효대사를 향해 예배를 올렸다고 한다.

일주문을 지나면 자재암으로 오르는 왼쪽에 바위산이 있고 그 산 밑에 원효대사가 고행 수행중 자주 내려와 휴식을 취했다는 원효폭포가 있다. 높이가 10미터로  많은 비가 내려서 하얀 물줄기가 힘차게 쏟아져내려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소요산 골짜기를 흔들고 있다. 폭포위에 원효대사가 도를 깨쳤다는  원효대가 있다.

소요산의 봄  해탈문이다. 이곳에서 종을 치면 108번뇌가 사라진다하여 산을 찾는 이들이 종을 치고 있다.
▲ 소요산의 봄 해탈문이다. 이곳에서 종을 치면 108번뇌가 사라진다하여 산을 찾는 이들이 종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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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의 봄  산속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자재암의 모습, 2011년 폭우피해로 지금은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 소요산의 봄 산속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자재암의 모습, 2011년 폭우피해로 지금은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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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암을 오르는 길에는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다는 속리교, 마음을 씻는다는 세심교, 부처님의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옥락교, 원효대사가 수도하던 중 관음보살을 친견했다는 관음봉, 자재암에서 입적한 추담선사(1898-1978)의 공적을 기리는 공덕비와 사리탑이 있다. 이외에도 백팔 계단과 해탈문은 속세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있다. 

자재암 주방 한쪽에도 거센 물줄기가 소리내며 흐르고 있어 위태롭게 보인다. 2011년 7월 쏟아지는 폭우 피해로 자재암은 온통  공사장을 방물케하고 있다. 이 폭우로 자재암 앞 가파른 절벽이 무너져 내려 가슴이 철렁했다는 데 다행이 보수 공사가 순로롭게 진행 중에 있다.

물소리를 들으며 잠시 자재암 뜰에 앉아 도시에서 묻은 마음의 때를 벗기기로 했다. 쉬면서 김밥으로 때늦은 점심을 때우고 나니 배도 부르고 마음도 한결 깨끗해 지는 것 같다. 해질 무렵 산을 내려오는 데 문득 원효대 아래에 적힌 고려말 나옹선사의 시가 있어 흥얼거려 보았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소요산의 봄 자재암에서 바라본 관음봉, 원효대사가 수도하던 중 관음보살을 친견하였다는 장소로 알려지고 있다.
▲ 소요산의 봄 자재암에서 바라본 관음봉, 원효대사가 수도하던 중 관음보살을 친견하였다는 장소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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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나도 나옹선사가 된 기분이다. 그러나 시는 있으나 작자 이름이 빠져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천천히 하산하는데 입구에 소요산 안내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조형물 중 다람쥐나 노루 같은 것은 이해가 되지만 원숭이 모습을 한 동물이 있다. 곰을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곰으로 보기에는 원숭이와 너무 닮아 있어 혼란스럽다.  
취객이 돼지 껍질에 소주를 두 병을 했다며 얼큰하게 취한 모습으로 가방을 열어보인다. 쑥이며 민들레가 가득 들어 있다. 69세의 노인이라고 하지만 청년같다. 노인은 이렇게 해야 늙으막 마누라에게 구박을 받지 않는다며 내일에는 용문산쪽으로 갈까하는 데 그쪽에서 만나 소주라도 한 잔하면 어떻겠느냐며 비죽 웃는다. 

막 지려는 저녁해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자 소요산이 맑은 물에 세수라도 한듯 산뜻한 모습을 들어낸다.


#소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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