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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분이나 타는 케이블카. 케이블카를 오래 타고 싶고 색다른 풍경을 경험하고 싶다면 토찰산 케이블카를 꼭 타보길 권한다.
40분이나 타는 케이블카. 케이블카를 오래 타고 싶고 색다른 풍경을 경험하고 싶다면 토찰산 케이블카를 꼭 타보길 권한다. ⓒ 김은주


토찰산 스키장을 오르는 케이블카 정류장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다들 멋진 스키복을 입었습니다. 여자인 관계상 여자가 입은 스키복이 눈에 들어왔는데 다들 정말 멋진 스키복을 입었고, 날씬하고 예뻤습니다.

케이블카는 토찰산 1500m 지점인 베이스정류장에서 제7 정류장이 있는 3700m 지점까지 7418m를 이동합니다. 총 소요 시간은 40여 분입니다. 케이블카를 타는 시간은 30분인데 중간에 3000m 지점에 있는 5정류장에서 다른 케이블카로 갈아타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40여 분이 소요되는 것이지요.

6명씩 한 대에 타고 해발 4000m의 토찰산을 천천히 올랐는데 그 풍경이 정말 근사했습니다. 처음에는 테헤란 상공의 희뿌연 하늘과 황량한 토찰산이 보이더니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갈수록 새파란 하늘이 나타나고 하얀 눈으로 뒤덮인 토찰산이 나타났습니다. 흰색과 파란색, 두 색의 선명한 대조로 눈이 부셨습니다. 마치 다른 세계, 우주에 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색다르고 환상적인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7정류장에 케이블카가 도착하고, 여기서 토찰산 호텔까지는 리프트를 타고 다시 내려가야 했는데, 이 상황에서 새로운 풍경에 들떠있던 기분은 완전히 곤두박질쳤습니다. 케이블카의 종착역인 제7정류장께는 매우 세찬 바람이 불고, 바람에 실린 얼음조각이 사정없이 볼을 후려치는 가운데 리프트가 정신없이 돌고 있었습니다. 그런 정신없는 가운데 난 리프트에 올랐습니다. 리프트는 붉은 통나무집까지 꽤 급한 경사를 내려가게 돼 있었습니다.

한 손에는 보드를 꽉 움켜잡고, 다른 손으로는 리프트를 꽉 잡았습니다. 세찬 바람이 지나가고 머리에 썼던 차도르가 벗겨지면서 머리카락이 바람에 슝슝 날리고, 설경에 눈이 부시고,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바를 잡지도 않고 발까지 흔들면서 여유 있게 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겁이 많은 나 자신이 정말 싫었습니다.

참 다행인 것은 리프트가 짧다는 것입니다. 지옥을 향하는 것 같던 리프트는 호텔 입구에서 우리를 내려주었습니다. 호텔 입구에는 스키나 보드를 탔던 사람들이 눈을 떨어뜨리면서 따뜻한 물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여유로운 느낌이었습니다. 앞에서 스키복에서도 느꼈지만 이란의 중산층 이상은 되는 사람들로 보였고, 그들의 여유로움이 전해졌습니다.

호텔 프런트에서 체크인하자 직원이 우리에게 클리닉에 가서 닥터를 만나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잘못 말하는 줄 알았습니다. 호텔에서 의사를 만난다는 걸 이해할 수 없어서 닥터가 누구 이름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의사였습니다.

정말 호텔에는 클리닉이 있었고, 의사가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스키장이다 보니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서 의사가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또 일설에 의하면 토찰산 호텔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텔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높은 곳에 위치하다 보니 숙박객의 고산병을 관리해주기 위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우리처럼 케이블카를 타고 급격하게 고도를 높이면 고산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했습니다.

 권위의식이 제로인 토찰산 의사. 그는 직접 환자를 찾아다니며 진료를 했으며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배려했다. 좀 놀라웠다.
권위의식이 제로인 토찰산 의사. 그는 직접 환자를 찾아다니며 진료를 했으며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배려했다. 좀 놀라웠다. ⓒ 김은주

 고산병 증세로 열이 오른 것처럼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른 작은 애에게 토찰산 의사가 산소마스크를 씌어주었다. 작은 애의 이 표정은 아주 어색해 하는 모습이다. 왜냐하면 위의 사진에 보이는 표정으로 토찰산 의사가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산병 증세로 열이 오른 것처럼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른 작은 애에게 토찰산 의사가 산소마스크를 씌어주었다. 작은 애의 이 표정은 아주 어색해 하는 모습이다. 왜냐하면 위의 사진에 보이는 표정으로 토찰산 의사가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 김은주

의사는 꽤 젊은 사람이고, 친근한 인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의사 가운을 걸치지 않았고 평상복 차림이었습니다. 또 그는 매우 친절했습니다. 여하튼 우리나라 의사하고는 분위기가 좀 달랐습니다.

의사는 한 사람씩 혈압을 재면서 머리가 아픈가, 어지러운가, 이런 걸 물었습니다. 앞 사람이 하고 있는 동안 의자에 앉아 기다렸는데 뭔가 둔탁한 것으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머리를 바닥에 누이면 한없이 가라앉을 것 같았습니다. 고산 증세가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머리가 아프거나 속이 울렁거리거나 어지럽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여하튼 좀 멍한 느낌이고 사물이나 현실이 명료하게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혈압은 정상으로 나왔습니다.

의사는 참 친절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다 외우고, 그 사람에게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은 심장이 좀 안 좋다고 했더니 한 시간 후에 다시 혈압을 재자고 했습니다.

고산 증세에는 많이 먹는 게 좋다고 들어서 몸의 컨디션을 조절하기 위해 식당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메뉴판이 이란어로 돼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빙을 하는 직원은 전혀 영어가 안 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하고 있을 때 의사가 나타났습니다. 이미 한 시간이 지났고, 그는 아까 심장이 안 좋다고 했던 사람의 혈압을 재기 위해 찾아왔던 것입니다. 혈압을 재러왔던 그는 친절하게 우리 주문까지 도와주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어제 팔레비 궁전에서처럼 치킨 케밥과 피시 케밥을 시켰습니다. 가격은 각각 8000토만 정도 했는데 샐러드도 없고 밥도 없었지만 치킨과 생선이 맛있고 감자를 튀김옷을 많이 입혀 바싹 튀겼는데 맛있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나니 확실히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방이 3층인데 3층까지 올라오자 다시 멍해지고 가라앉았습니다. 모두들 이게 무슨 증상이냐며 의아해 했습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들 하나 같이 지치고 힘들어 보였습니다. 숨도 차오르고 기운이 하나도 없고 그래서 모두들 침대에 소파에 쓰러진 채 한숨 잤습니다. 자고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침 의사가 우리가 묵고 있는 방으로 왔습니다. 그는 우리 상태를 보자 우리들에게 1층으로 내려가서 산소를 마시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1층으로 가서 생전 처음 산소 마스크를 썼습니다. 산소를 마시니까 확실히 머리가 개운해지며 사물이 명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의사는 약도 한 알씩 주면서 물까지 가져다 주었습니다. 심장이 안 좋은 사람은 주사까지 한 대 맞았습니다.

의사는 이때 속옷처럼 생긴 흰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가슴털이 조금 보였습니다. 좀 민망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였습니다. 그에게서는 정말 권위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권위의식 하나도 없이 무작정 친절하기만 한 의사, 정말 좋은 의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란 사람들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외국인에게 친절하지만 의사까지 이렇게 친절하고 권위의식이 없을 줄 몰랐는데 의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역시 이란 여행은 사람이 제일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토찰산#의사#고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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