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완연한 봄날 같은 날씨지만 아직도 바람이 차게 불어온다. 유독 바람이 강하게 불어 며칠 동안 밖 야외활동을 하기에는 불편하였다. 봄꽃들이 서서히 피기 시작하고 개나리가 노오란 물결을 일으키고, 진달래는 이제 제법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쯤 피기 시작하는 벚꽃은 아직 꽃망울만 있어 아마 다음 주 정도 돼야 만발할 듯하다. 봄 기운을 느끼려고 경주 걷기길을 한 번 걸어 본다.
경주시에서 새로이 개설한 신문왕 호국 행차길을 지난 4일 걸었다. 신라왕궁 월성에서 동해안 이견대에 이르는 이 길은 죽어서도 동해 앞바다의 용이 돼 신라를 지키고자 한 문무왕의 장례길이며 돌아가신 문무왕과 김유신 장군이 내려주는 보물을 받기 위해 행차했고, 용이 전해줬다는 옥대와 만파식적을 받아 환궁했던 길이다.
예전에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이 길을 걸어 봤으나, 새로이 정비되고는 참 오랜만에 걷는 길이다. 가는 길은 경주 추령터널 입구 옆에서 황용 약수터를 지나 추령마을 일명 모차골이라 불리는 길 끝까지 간다. 이제 출발 지점에는 신문왕 호국 행차길이란 안내 이정표도 있고 갈림길마다 찾아 갈 수 있게 잘 정비돼 있다.
정비된 길이라고 하나 아직은 인적이 매우 드문 길이다. 걷는 동안 정말 사람 한명 마주치지 않는 그야말로 첩첩산중 속 길이라고 해야 할까. 길은 걷기 좋은 흙길이며 일부 구간들은 많이 정비된 것이 드러난다. 이제 제법 안내 이정표와 중간 중간 설명문들이 잘 설치되어 있다.
말 없이 산 속을 무한정 걷다 보니 어느새 불령재 고개마루에 이르렀다. 이 고개에는 비스듬히 누워있는 돌이 하나 있다. 그 곳에 글자도 새겨져 있는데 바로 불령 봉표이다.
불령봉표에는 '延慶墓 香炭山因 啓下 佛嶺封標'이라 적혀 있다. 해석하자면, '연경의 묘에 쓸 향탄 즉 목탄을 생산하기 위한 산이므로 일반백성들이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임금의 명을 받아 불령에 봉표를 세운다'는 뜻이다. 길가에 방치된 듯해 보호시설이 필요해 보였다.
이곳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면 바로 천년고찰인 기림사 뒷길과 만나 연결된다. 기림사 방면으로 10여 분을 내려오면 용연폭포를 만나게 된다.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출입을 금하고 있으나 다들 한두 번은 그냥 들어가 보는 장소이다.
이 폭포는 삼국 유사에 나오는 현장이라고도 하는데 동해 바닷가 대왕암에서 피리를 얻고 용으로부터 검은 옥대를 받은 신문왕이 여기서 여장을 풀고 점심을 먹을 때 태자 이공(효소왕)이 기뻐서 달려왔던 바로 장소다.
용에게 받은 검은 옥대가 그 자체로 용이라며 한쪽을 떼어 이 물에 담갔더니 곧바로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고, 그 자리는 못이 돼 용연(龍淵)이라 불렀다는 역사적인 장소. 가뭄이 있어도 늘 폭포 소리만큼은 힘차게 들린다. 한참을 주변 공기와 함께 여유를 즐긴다.
경주에 많은 길들이 조성되어 있지만 이 길만큼은 그야말로 역사적 보아도 신라 옛길이라 할 수 있으며 사람들이 걷기에 좋은 길이다. 봄 기운이 느껴지는 이 때에 꼭 알맞은 길이다. 추천할만한 걷기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