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구두회(예수이야기교회)목사님께서 글을 주셨습니다.
"어릴 때 형제간에 이유 없이 소소히 다투며 자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리 넉넉한 시대가 아니라 옹기종기 하루하루 그저 내 부모님의 눈물과 땀방울 먹고 살아가는 거죠. 사과 한알 놓고도 한쪽 더 먹어볼 요량으로, 천리만리 가는 일도 아닌데 심부름 동생에게 미뤄 볼려고, 덜 헤진 양발 먼저 신겠다고, 왜 오빠에게만 도시락 바닥에 달걀프라이를 깔아 주냐고... -하략-"목사님의 묘사는 한 치도 어김없는, 제가 자라던 시절의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왜 오빠에게만 도시락 바닥에 달걀프라이를 깔아 주냐고...'라는 말씀이 제 기억 속, 우리 모두의 누이를 상기시켜주었습니다.
#2엄마는 남동생에게만 보리쌀을 살짝 걷어내고 쌀밥을 퍼주었지요. 어제 낳은 달걀이 세 개뿐이니 달걀프라이의 하나는 할아버지 상에 올리고 한개는 가족상에 올리면 나머지 하나가 남동생의 도시락 바닥에만 깔리게 되지요.
정말이지 너무도 당당했던 차별이었고, 그 차별이 당연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효자보다 효녀가 더 많은지 모르겠어요.
보리밥 먹고 자란, 달걀프라이 깔린 도시락은 먹어보지도 못하고 자란 우리의 누이들은 진학 대신 먼저 공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다니는 오빠나 남동생 대신 돈을 벌었지요. 누이의 쥐꼬리 월급은 가정의 희망이었습니다. 오빠나 남동생이 대학을 졸업하면 가정이 일어서고 가문이 바뀔 것 같은….
그런데 모질게 차별했던 그 엄마을 애틋하게 섬기는 이는 시집간 그 누이들입니다.
하얀 이밥 먹고, 달걀프라이 홀로 깔아갔던 아들은 늙은 엄니가 항상 기다려줄 줄 아나 봐요.
#3처는 한 달에 한번 고향의 엄마를 찾아갑니다. 연장근무로 얻은 휴가 하루를 보태어 이틀의 휴일을 만든 다음, 편도 700리 길을 갑니다.
그리고 엄마 얼굴보고,
흰머리 감추어드리고,
함께 목욕탕가고,
식당 갔다가 함께 잠을 자고,
집안 청소한 다음,
점심을 함께 먹고,
푼돈 몇 푼 손에 쥐어드리고 다음날 오후에 다시 700리를 거슬러 옵니다.
그러면 엄마는 딸이 떠난 텅 빈 집에 있는 대신 동네의 편한 말벗인 예지상회의 할머님께로 갑니다.
땅에 닿을 듯 등이 굽은 엄마가 올 봄에도 어김없이 꽃을 피운 매화나무 같은 웃음을 내년에도 웃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쌀밥에 달걀프라이 먹고 자란 아들들은 잘 모르나 봐요.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