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간인 사찰 의혹의 열쇠를 쥐고 있는 진경락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서울구치소에서 중앙징계위로 진술서를 보냈지만 이것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오마이뉴스>의 취재 결과, 진 전 과장은 지난 2010년 11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이후 민간인 사찰 의혹의 진실이 담긴 진술서를 써서 중앙징계위에 보냈다. 하지만 이 진술서가 중앙징계위에 접수되지 않고 청와대로 전달됐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1심에서 '1년의 실형'을 선고받자 '양심선언' 작심?


 '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 한마음 대표(왼쪽)와 이 사건의 청와대 개입 및 은혜 의혹을 폭로한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30일 오전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에서 처음 만났다.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 나란히 앉은 김종익씨와 장진수 전 주무관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 한마음 대표(왼쪽)와 이 사건의 청와대 개입 및 은혜 의혹을 폭로한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30일 오전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에서 처음 만났다.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 나란히 앉은 김종익씨와 장진수 전 주무관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진 전 과장은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혐의로 지난 2010년 8월 구속됐고, 같은 해 11월 1심에서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로 인해 진 전 과장의 '고민'이 깊어졌고, '양심선언'까지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인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가 공개한 '최종석-장진수' 대화 녹취록은 이러한 정황을 뒷받침한다. 이 녹취록에 따르면,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은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진경락 과장이 그간에 오늘 재판과정에서 증인신청을 쭉 해가지고, 뭐 청와대 수석들을 세우겠다, 뭐 이렇게 난리를 쳤거든.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자기는 억울하다. … 그래서 '장진수도 희생하고 있는데 당신이 그렇게 하면 득이 될 게 뭐가 있느냐' 설득하고 있는 상황인데…."

 

또한 지난 3월 22일자 <조선일보>가 인용한 한 사정당국 고위관계자의 발언도 1심 실형 선고 이후 진 전 과장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이 관계자는 "진씨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자 '(정권이) 나를 보호해 준다고 해놓고는, 이럴 수 있느냐'며 격분했으며, 변호사와 사건의 진상을 폭로하는 문제를 놓고 법률 검토까지 했었다"면서 "당시 유력 법조계 인사 등이 중간에서 (폭로를 말리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진 전 과장을 아는 A씨는 "진 전 과장이 구속돼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잠시 들어왔다가 (감옥살이를) 경험하고 곧 나갈 거다'는 식으로 얘기했다"며 "금방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진 전 과장이 1심에서는 실형을 받았다"고 말했다.


A씨는 "1심에서 실형을 받은 진 전 과장은 '가만 있지 않겠다'고 했다"며 "그런 와중에 중앙징계위가 열렸고, 진 전 과장도 '나가겠다'고 했지만 변호사들이 못 나가게 달랬다"고 전했다.

 

징계위에 보낸 '양심선언' 진술서는 어디로 갔나?

 

그런 상황에서 진 전 과장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지난해 초 중앙징계위에 탄원서 형식의 진술서를 보냈다. 당시 중앙징계위 위원장은 MB 핵심참모인 맹형규 현 행정안전부 장관이었다. 진 전 과장은 주변 지인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이 진술서에 다 썼다"고 얘기했다. 이러한 사실은 3월 31일자 <조선일보> 기사에서도 언급돼 눈길을 끈다.


이날 <조선일보>는 "진 전 과장이 2심 재판이 진행중이던 지난해 2월쯤 자신의 징계를 논의하던 중앙징계위에 탄원서를 보내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장석명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각각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의 배후로 지목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한 사정당국 관계자의 발언도 실렸다.

 

"작년 2월 구치소에 구속돼 있던 진 전 과장이 탄원서에서 '민간인 사찰은 이영호 전 비서관이, 사찰 증거인멸은 장석명 비서관이 지시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진 전 과장의 탄원서(진술서)에는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중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 셈이다. 검찰이 지난 2010년 수사를 통해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의 몸통으로 각각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과 진 전 과장을 지목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


문제는 진 전 과장의 진술서가 중앙징계위에 제대로 전달됐는지 여부다. <오마이뉴스>에서 취재한 바에 따르면, 진 전 과장은 주변에 "진술서가 징계위로 안가고 청와대에 인터셉트(intercept, 가로채기)당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장석명 비서관이 <조선일보>에 내놓은 해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 비서관은 "나에 대한 내용이 사실과 전혀 달라 당시에도 무시했다"고 말했다. 이는 진 전 과장이 중앙징계위에 보낸 진술서의 내용을 '청와대'에서 알고 있었음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영선 민주통합당 MB정권비리특위 위원장은 "진 전 과장이 중앙징계위에 진술서를 보낸 것은 사실이다"라며 "그는 거기에다 (민간인 사찰 의혹과 관련된 진실을) 사실대로 다 썼다"고 말했다. 다만 박 위원장은 "그것이 중앙징계위에 제대로 전달됐는지 다른 곳에 전달됐는지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진술서 보낸 이후 '폭로' 막기 위한 움직임 있었다?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청와대의 '증거인멸' 개입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실에서 박영선 MB정권비리 및 불법비자금 진상조사특별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진경락 공직윤리지원관실 총괄기획과장이 청와대에 매월 280만원씩 상납했다는 장진수 주무관의 진술 녹취록을 공개하고 있다.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청와대의 '증거인멸' 개입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실에서 박영선 MB정권비리 및 불법비자금 진상조사특별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진경락 공직윤리지원관실 총괄기획과장이 청와대에 매월 280만원씩 상납했다는 장진수 주무관의 진술 녹취록을 공개하고 있다. ⓒ 유성호

청와대가 어떻게 진 전 과장의 진술서 내용을 알게 됐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특히 진술서가 서울구치소에서 바로 청와대로 갔는지 아니면 중앙징계위를 거쳐 청와대로 갔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한 인사는 "진 전 과장이 진술서를 구치소에서 중앙징계위로 보냈다면 그것은 반드시 중앙징계위에 전달되어야 하는 게 맞다"며 "그런데 어떻게 청와대가 진 전 과장의 진술서 내용을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진 전 과장이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중대한 내용이 담긴 진술서를 정부기구에 제출한 사실만은 확인됐다. 장진수 전 주무관도 비슷한 시기인 지난 2011년 1월에 열린 중앙징계위에 출석해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이 증거인멸을 지시했다"고 진술했다(관련기사 : 장진수 '폭탄고백', 1년 전 정부 '알고도 숨겼다')


특히 진 전 과장이 중앙징계위에 진술서를 보낸 이후에 그의 '폭로'를 막기 위한 정권 차원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A씨는 "진 전 과장이 징계위에 진술서를 보낸 뒤에 하루에도 여러 번의 특별면회가 이루어진 걸로 안다"며 "진 전 과장의 말에 의하면 국회의원도 오고 그쪽(정권) 진영에서 그를 달랠 만한 사람도 왔다"고 전했다.


이는 한 사정당국 관계자가 "진 전 과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이후 양심선언을 검토하자 당시 유력 법조계 인사 등이 중간에서 말렸다"고 말한 것과도 대체로 일치한다.


하지만 진 전 과장은 자신이 양심선언을 시도했다는 주장에 "많이 왜곡된 것"이라며 "내가 사석이든 어디서든 억울함을 토로했을 수 있는데 그것이 잘못 전달된 것 같다"고 <오마이뉴스>에 해명했다. 다만 그는 "(청와대 수석들이 아닌) 장진수를 증인으로 세우려고 했다가 부하직원을 증인대에 세우는 게 볼썽사나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관련기사 : "내가 민간인 사찰 주범으로 둔갑... 사람들이 무섭다").


#진경락#민간인 사찰 의혹#중앙징계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