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2월 18일이었습니다. 둘째 아이가 이번에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아내는 교복을 사주겠다며 아이를 데리고 나가더군요. 학부모회에서 공동구매로 가격을 최대한 낮췄다고 하지만, 교복값은 운동복에 와이셔츠 등을 추가하면 30만 원이 훌쩍 넘는 듯합니다.

 둘째 아이 추정연 입니다. 태어난지 얼마 안되는 것 같은데 벌써 중학생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많은것을 뒤돌아 보게 합니다. 문제의 이날 교복을 사고나서 이름표등을 부착한 다음에 아이폰으로 찍은 인증샷 입니다. 이제는 나이 먹었다고 사진 찍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아마도 이런 기사에 올리는 마지막 사진(?)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둘째 아이 추정연 입니다. 태어난지 얼마 안되는 것 같은데 벌써 중학생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많은것을 뒤돌아 보게 합니다. 문제의 이날 교복을 사고나서 이름표등을 부착한 다음에 아이폰으로 찍은 인증샷 입니다. 이제는 나이 먹었다고 사진 찍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아마도 이런 기사에 올리는 마지막 사진(?)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추광규
또 메이커 제품이라도 사주려고 한다면 몇 만원이 추가되기에 웬만큼 넉넉한 살림이 아니고서는 결코 만만한 지출이 아니더군요.

게다가 첫째 아이는 고등학교에 입학해 분기별 수업료에 참고서를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두 아이 합쳐서 등교 준비에만 백만 원이 넘게 들어간 것 같습니다.

아직 대학교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니 한 학기가 시작되면 소위 '없는 부모'들은 등골이 휜다는 말을 절감했습니다.

"현금지급기 안에 돈... 어쩌지?"

아내는 이날 교복을 사겠다며 나갔습니다. 그런데, 교복값이 처음 생각하고 나갔던 금액 보다 비싸 돈이 조금 부족했답니다.

그래서 아이를 교복 매장에 잠깐 있으라고 말 한 뒤 부족한 돈을 찾으러 현금인출기로 갔다고 합니다.

돈을 찾으려고 현금카드를 넣는데, 투입구가 열려있었고 그 안에는 현금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꺼내서 세보니 5만 원이라고 하더군요. 누군가 돈을 찾으러 왔다가 깜빡하고서는 돈을 놔두고 자리를 떠나 버린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금방 찾으러 오겠지'라고 생각하고 한 손에 그 돈을 든 채, 또 다른 손으로는 현금카드로 원하는 금액을 인출했다고 합니다.

돈을 찾은 후 교복매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몇 분이 흘렀지만 돈 주인은 나타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내게 전화를 했습니다.

"돈을 찾으려고 보니까 현금 5만원이 남아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뭐? 어떻게 해, 기다려 보고 안 오면 현금지급기 옆에 있는 연락처로 연락해서 주인한테 문의 오면 자기한테 전화 하라고 신고해 놓으면 되지."
"그냥 놔두고 가면 안 되는 거야?"
"돈 없어지면 또 괜히 오해 받으니까, 우선 신고하고 네가 보관하고 있다가 보내주면 될 것 같아."

아내는 저의 조언에 따라 CD기 옆에 붙어 있는 은행 연락처로 전화를 했고, 상담원에게 사정을 설명한 뒤 휴대전화 번호 등을 남겼습니다. 아내는 그렇게 조치를 하고서도 또다시 3분 가량을 더 기다렸지만,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그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때, 교복값을 치르다 말고 돈을 찾아오겠다고 나간 엄마가 10분 이상 돌아오지 않으니 둘째 아이도 속이 타서 두 번 정도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빨리 오라고 재촉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날 소동은 마무리됐습니다. 아내나 저나 이것저것 바쁘다 보니 그 일은 까맣게 잊혀진 사건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한 달 만에 걸려온 '경찰서' 전화

그런데, 지난 3월 19일 오전 무렵. 아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낸느 대개 오전에 전화를 하지를 않는데, '무슨 일인데 전화를 했지?'라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내는 무척이나 화가 나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데?"
"지난 달에 교복 사러 갔다가 현금지급기 안에 5만 원 있어 가지고, 그거 자기한테 전화한 것 기억하지?"
"응!"
"근데 방금 경찰한테서 전화 왔어. 증거자료 가지고 경찰서로 나오래."
"…."

"뭘 그런걸 가지고 경찰서를 오라 가라 하는 거야? 그때 신고 했고, 연락처 남겨 놓은 당시 상황을 말해주고, 계좌번호 불러주면 보내주겠다고 말하면 되는 거지!"
"아니야! 그 경찰관이 내가 일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하니까, 호적에 빨간 줄 올라간다고 꼭 와야 한다고 하던데?"

"무슨 소리야? 호적에 빨간 줄?"
"응, 그래서 엄청 놀랐어. 내가 그 경찰관한테 사정을 설명해도 막무가내로 '내가 남의 돈을 가져갔다가 사용했기 때문에 호적에 빨간 줄 올라간다'면서 통화 기록 떼서 목요일에 꼭 오라는 거야!"

아내의 말을 종합해 보니 이 경찰관은 전화를 해 아내의 이름을 물어보고 지난 2월 18일 현금지급기에 있던 5만 원을 가져갔느냐고 물었고 아내는 당연히 그랬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이 경찰관은 그때부터 아주 고압적인 자세로 아내를 죄인 다루듯 하더랍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경찰서 문턱을 한 번도 넘어가 본 적 없는 아내로서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겠지요. 게다가 이 경찰관은 아내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신고했고 저렇게 조치했다며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지만 그런 말은 전혀 들어주지도 않은 채 협박(?)을 했습니다.

호적에 빨간 줄 올라간다고요?

글쎄요. 과연 이런 일 때문에 호적에 빨간 줄이 올라갈 수 있을까요. 아내의 전화를 받고 보니 무척이나 화가 나더군요. 분명히 당시 CCTV 녹화 영상을 증거로 확보하고 있을 것이고, 그 화면을 본다면 아내의 행동이 분명히 드러나 답변과 부합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굳이 그런식으로 말을 했을까요.

제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이 정도 사안에 제반 물증이 있다면 구두 진술이나 서면 진술서 제출로 종결지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알고 있는 상식이 맞지 않는다고 한다면 부드러운 목소리로 '절차가 이러저러하니 다소 불편하시더라도 한 번은 나와 조사를 받으셔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을까요.

경찰관의 태도, 그냥 넘어가야 할까요

아내의 전화를 받은 후, 해당 경찰관의 전화번호를 문자메시지로 찍어달라고 해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는 제 이름을 밝히면서 다시 한 번 당시 제가 아내로부터 전화를 받았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통화기록만 팩스로 보내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 경찰관은 무척이나 사무적인 목소리로 절대로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무조건 출두해서 진술을 해야만 하고, 출두하지 않으면 출석 요구서를 발부하고 정식으로 사건을 꾸며서 검찰 지휘도 받는다고 합니다.

더 이상 통화 해봤자 감정만 상할 것 같아 전화를 끊었습니다. 결국, 아내는 그 다음날 통화기록을 뗐고, 지난 22일 경찰서에 그 서류를 들고 갔습니다.

이날 아내는 직장에서 조퇴한 뒤 해당 경찰서 경제팀에 있는 경찰관에게 가 1시간 30여 분 동안 조서를 꾸몄습니다. 그리고 돈의 주인공을 불러서 합의(?)한 후 5만 원을 전달했습니다.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됐습니다.

'5만 원'의 주인공은 역 주변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일하는 20대 젊은이였습니다. 이 젊은 친구는 5만 원을 찾으러 갔다가 깜빡 잊은 채 현금지급기를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10여 분이 지난 후에야 돈을 빼오지 않은 사실을 알고 다시 왔지만, 돈이 없어 경찰에 신고했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그 젊은 친구는 아내에게 몇 번이나 죄송했다고 말했답니다.

일을 마무리 짓고 경찰서 경제팀 사무실을 나서는데, 그 경찰관은 제 전화가 기분이 나빴는지 친절하게 한마디 충고(?)를 건넸습니다.

"남편 분에게 참고인 진술조서로 끝냈다고 꼭 말씀드리세요!"

속 뜻은 별개로 하고 형법상 '점유이탈물횡령죄'에 해당 될 수 도 있는데 입건하지 않고 '참고인 조서'로 끝냈다는 말이겠지요.

그래서입니다. 제가 지금도 기분이 나쁜 것은 과연 이런 사안을 조사함에 있어 경찰관이 돈을 가져간 사람에게 '호적에 빨간 줄이 올라간다'고 협박(?) 해도 되느냐 하는 점입니다. 아줌마라고 얕잡아 보고 그렇게 위압적으로 전화하면 사건 처리가 빨리 끝난다고 생각해 그런 식으로 통보를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꼭 그런 식으로 말을 했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 마음속에는 앙금이 남아 있습니다. 솔직히 해당 경찰관에 대해서 이번 사안과 관련해 민원을 접수해 잘못한 게 있다면 징계를 내리라고 요구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아직 망설이고 있는 중입니다. 이 경찰관은 다른 누군가에게도 아내에게 한 것과 똑같은 행태를 반복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저라도 이같은 행태를 바로잡아줘야 하지 않나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입니다.

또, 이번 일을 겪으면서 누군가에게도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이런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행동은 무엇이냐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만약 돈을 찾으러 현금지급기에 갔는데 앞 사람이 돈을 빼가지 않았다고 한다면, 절대로 손을 대지 말고 옆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찾아서 곧 바로 나가는 게 가장 현명한 처사일 수밖에 없다'였습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은 교훈을 남긴 '현금지급기 5만원 사건'이었습니다. 경찰 권력의 남용이라는 측면에서 과연 경찰에게 수사권 독립을 허용해도 될는지에 대한 의문마저 일게 됐습니다.


#현금입출금기#단원경찰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화물차는 굴러가는게 아니라 뛰어서 갈 수도 있습니다. 물론 화물칸도 없을 수 있습니다. <신문고 뉴스> 편집장 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