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을 치르고 이제 꽉 찬 3주가 지났습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새내기 티를 완전히 벗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제법 관계의 영역을 넓혀가며 초등학생이 되어 갑니다. 이렇게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 걸맞게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바로 "1학년이 하는 학급 토론"입니다.
점심 밥상(급식이라 하면 너무나 맛이 없는 느낌입니다)을 마치고 아이들이 양치질을 합니다. 양치컵과 칫솔이 볕이 잘 드는 창가에 나란히 놓여져 있습니다. 자기 사물함에서 치약을 꺼내려고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이 밥을 다 먹지 못한 아이들의 식판이나 물병을 건드릴까 조금은 염려스럽기도 하고 아이들도 귀찮을 거 같아서 제가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얘들아, 우리가 지금은 치약을 각자 사물함에 놓고 쓰고 있잖아. 그런데 치약을 다 모아 놓고 한 개씩 꺼내 놓고 다함께 쓰고, 다 쓰면 다른 거 꺼내 놓고 이렇게 다 같이 쓰면 어떨까?" 아이들의 얼굴이 알 듯 모를 듯 하다는 표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열심히 설명을 합니다.
"함께 쓰면 치약이 다 떨어졌는데 깜박 잊고 안가지고 걱정 없고, 한 곳에 놓고 쓰니까 사물함에 왔다 갔다 하지 않아도 되고 좋지 않을까?" 잔뜩 설명을 하고 아이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주말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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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소를 타기만 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시소 위에 올라가 균형을 잡으며 왔다 갔다 합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감을 발견해 갑니다. 아이들이 모험도 도전도 조금씩 대담해지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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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우리반 칠판 이야깃거리에는 ① 치약 사용 ② 화장지 사용 ③ 자리 바꾸기 세 가지가 적혀 있습니다. "치약 어떻게 쓰는 게 좋을지 생각해 봤어? 선생님이 두 가지 방법을 얘기했지. 하나는 자기 치약을 가져와서 혼자서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치약을 다 모아 놓고 다 함께 나누어서 쓰는 거야. 첫번째 자기 치약은 자기가 쓰는 게 좋은 사람 손들어 보자. 아니면 다함께 쓰는 게 좋은 사람?" 이렇게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다함께 쓰면 좋겠다는 아이들은 깜박 잊고 치약을 안가져와도 괜찮으니까 좋다, 사물함에 왔다 갔다 하는 게 귀찮으니 좋다 이런 말들도 있었지만 그냥 그게 좋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반면, 자기 것을 자기가 쓰면 좋겠다는 아이들은, 그렇게 하면 아껴 쓸 수 있다, 내 치약이 내 마음에 들기 때문에 내 것을 쓰고 싶다, 치약을 한 개만 놓으면 여러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수 있다, 내가 가져온 치약은 너무 작은 것이어서 함께 나누어 쓰기 어렵다(이것은 미안한 마음에 어렵다는 것인지, 너무 작아서 다함께 쓸 수 없다는 뜻인지 ^^;;)처럼 다양한 의견들을 내 놓았습니다. 마지막에 결정적으로 치약을 함께 쓰면 병균들이 옮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자기 거를 쓰고 싶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나눈 후에 모두 일어나서 교실 앞 쪽에 구역을 정해 줍니다. 각자 쓰자와 함께 쓰자로 나누어 보니, 1명의 기권(너희들이 알아서 해! 하는 친구가 있어서 그런 것을 기권이라고 한다고 했지요.)을 해서 11:11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각자 자기편으로 회유를 하기 시작합니다. "세균" 문제에 대해서 저도 미리 생각해보지 못했던 터라 그 부분에 대해서 더 이야기가 진행되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15:7이 되었습니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 마무리를 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가르치면서 어떤 물건을 사용하는데 이렇게 각자 쓰는 것이 좋다고 결정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너희들이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에 그것을 존중한다. 지금처럼 자기가 자기 치약을 가져와서 쓰는 것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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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이 그린 것을 보고 서로 평가합니다. 구경하는 것은 재미난 일입니다. 구경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평가가 나옵니다. 내가 한 것과 다른 친구가 한 것을 비교하면서 생각하게 됩니다. 다음에는 나도 이렇게 해봐야지 마음 먹기도 합니다. 그렇게 배우며 성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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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약 문제는 "세균" 문제가 결정적이었기 때문에 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론이 난 것에 대해 별 부담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화장지" 사용 문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화장실에 화장지가 비치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 휴지를 쓸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필요한 경우가 있어서 화장지를 사물함에 놓고 쓰는데 이것을 모아 놓고 함께 쓰는 것이 어떤지 의견을 물었습니다.
일단 치약 사용에서 "자기 것 쓰는 것"으로 결정된 것이 대세였기 때문일까요? "자기 물건" 챙기는 것에 대해 일찍부터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일까요? 자기 것을 혼자 써야 한다는 아이들의 이유는 참 다양하고 어른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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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을 밀어내는 아이들처럼 아이들의 대근육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감각통합놀이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벽을 밀쳐내는 아이들처럼 밀어도 밀리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전심으로 우리가 밀쳐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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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쓰면 내가 내 것만 조금씩 아껴 쓸 수 있는데 다 같이 쓰면 많이 쓰는 친구들이 다 써버릴 수 있어요." 공공의 것과 개인의 것, 구분이 분명한 시대. 공유와 사유의 양 날이 함께 돌아가기보다 공유의 날은 금세 무뎌져 버리고 사유의 날만 날카롭게 돋아나는 시대를 사는 아이들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가치를 가르쳐야 할까 고민도 깊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