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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재무상담을 진행한 후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기자 말>

남편 김철수 이야기

한국인 남편 김철수씨(44세, 가명)는 6남매 중 늦둥이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보다 큰형님 부부로부터 마치 부모님처럼 보살핌을 받고 자랐다. 생계 또한 큰형님 부부가 오랜 기간 운영해오신 식당에서 20여 년간 지속적으로 일하면서 유지했다고 하니 상당히 의존관계가 깊었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기에 술 담배도 안 하고 건전한 생활을 해왔지만, 사업을 시작하는 절친한 친구에게 그동안 모은 돈을 빌려주었다가 오히려 빚까지 떠안게 되는 등 '착해서 손해 본'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해맑게 웃으며 어려운 친구 사정을 더 걱정하고 원망하는 마음조차 없는 참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다만 계속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요일만 빼고 매일 일하는 상황에서 어렵사리 성실하게 모은 돈이 날아가자 장가들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큰형님 내외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국제결혼을 도모하게 되었다.

아내 수리남 이야기

수리남씨(31세, 가명)는 7남매 중 넷째 딸로 태어나 부모 빚을 갚느라 공장에서 모진 고생을 다하며 20대를 보냈다. 이미 시집간 두 언니를 빼고 바로 위 언니와 악착같이 돈 벌어서 부모님 빚을 다 갚아드렸다. 더 이상 가난도 싫고, 캄보디아 남자들을 보노라니 뭐 달리 더 나은 삶도 없을 것만 같았다. 캄보디아가 답답하고 싫어져서 국제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을 때 재산은커녕 빚을 안고 있는 사람이었음을 결혼 전에 미리 알았지만, 그냥 사람이 좋아 보여 믿고 결혼하였다. 캄보디아 남자들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최소한의 의무감도 없이 마냥 놀고 먹으며 지내는 사람이 많아 대부분 엄마들이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해 돈도 벌고 집안일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현재의 남편이 가족을 사랑하고 성실해 보이는 것이 맘에 들었다. 돈은 없을 수 있지만 내 가족 먹여 살리려는 의지로 두 부부가 힘을 모은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고 그런 삶이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나먼 한국으로 시집오자마자 한 개에 20원 하는 부업을 종일 하고, 남편의 수입을 모아 결혼 2년 만에 모든 빚을 청산하고서 두 사람은 마냥 행복했다.

현재는 한국 고등학교 2학년 과정을 공부하고 있고, 한국어 의사소통이나 글쓰기 등에 상당한 수준이었다. 워낙 성실하고 알뜰하게 살아온 이 부부는 가계부도 꾸준히 쓰고 신용카드도 교통카드 기능 외에는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물론 신용카드를 만들어서 한때는 썼는데, 그 씀씀이가 감당이 되지 않아 스스로 없앴다고 수줍게 웃으며 말하는 아내 수리남씨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더불어 사는, 부부 이야기

남편은 결혼 초부터 살림을 아내에게 아예 맡겨버렸다. 어차피 살림이란 게 여자가 해야 하는 것도 있고, 다른 다문화 부부의 경우 아내가 한국의 전반적 경제상황을 잘 모르기에 돈 관리를 시키지 않고 그저 용돈만 주었더니 마치 딸처럼 돈 달라고 손 내밀고, 남편한테서는 계속 돈이 나오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보기 좋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아내는 남편보고 '잔머리'가 보통이 아니라며 막 흉보고 웃었다. 자기한테 전적으로 돈 관리를 맡기는 바람에 오히려 자신은 돈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니 자기만 손해라면서 웃는다.

그렇지만 30세 갓 넘긴 아내의 알뜰한 가계부는 정말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한국 물가도 정확히 알고 있거니와 아이들을 위해 저축도 알뜰히 하고, 무엇보다 어디에 얼마 정도 쓰고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아직은 아이들 보육료가 지원되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이런저런 추가 사교육비가 발생된다는 것 또한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저부터 빨리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고 뭐라도 배워서 일자리를 찾을 준비를 해야죠. 남편만 기대고 있으면 안 돼요. 게다가 남편 나이가 저보다 많으니까 앞으로 돈 벌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중단될 수도 있구요."

작년 여름 물난리가 났을 때 반지하 방에서 수해를 겪고 고생이 많았다. 상담받기 불과 몇 주 전 어렵사리 같은 건물 2층으로 이사를 하고 둘이서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고 한다. 다행히도 좋은 집주인을 만나서 수해복구 과정도 수월했고 2층 집도 돈을 더 받지 않고 이사하도록 배려해주셨다고 한다.

이제 집은 지금 정도면 충분하고 여한이 없다고 한다. 집에 가급적 더 돈들이지 말고 지금부터 모으는 돈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준비하겠다며 야무진 미소를 짓는다.

더 좋은 집에 살면서도 좀더 나은 주거 환경에 대해, 주택의 보유가치에 대해 한도 끝도 없는 욕구를 가진 대한민국 가정에 비해 이들의 행복은 참으로 소박했다. 물론 '교육비'에 대한 견해는 여느 한국 가정처럼 부부의 의견이 조금 달랐다.

역시나 남편은 아이들 사교육에 너무 목매고 싶지 않다고 한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아이답게 자라야 하는 거고 이래저래 간섭하며 돈 들여봐야 부모 마음 편하자고 돈 낭비하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반면 아내는 "남편 믿음 참 좋아요. 하나님이 다 주시니 걱정 말래요. 우리가 노력하지 않는데 그냥 주시진 않아요. 하나님도 주시겠지만 저도 노력해야 돼요! 많이 가르치자는 게 아니라 기본만큼은 채워주자는 거에요!"라고 당차게 말한다.

그들은 다문화가정 자녀에게 지원되는 보육비를 정중히 사양하고 싶어한다. 무조건 다문화가정이라고 해서 지원해주기보다 다문화건 한국 일반 가정이건 우선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지원해주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한다.

물론 '보육비'를 사양하자 해당 부서 사람이 '사양할 권리'는 없다며 웃으셨다고 한다. 안 받는다고 더 어려운 사람에게 가는 것은 아니니 일단 아이들 잘 키우시는 데 사용하시라고 했단다. 엄연히 행정적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안 받겠다고 하면 그 돈 처리가 행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다. 

남편의 꿈은 한국에 정착하지 못한 많은 다문화가정들의 정착을 돕는 것이라고 한다. 너무 많은 다문화가정이 문화적 격차와 근본적 사고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걸 보면 무척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뭔가 크게 이익보려고, 편하려고 결혼하는게 아닌데, 한국 남자들은 '결혼' 자체에 대한 준비가 여러 모로 더 필요하다고 한다.

결혼은 이익 보려고, 편하려고 하는 게 아닌데

이번 이사 비용 대출만 다 갚고 나면 곧바로 캄보디아 가족에게도 생활비를 송금해드리고 싶다고 하는 남편은 자기 아내를 '멀리 캄보디아에서 온 천사'라고 불렀다. 그녀를 만나서 마이너스 인생이 플러스 인생이 되었고 가정도 생기고 아이들도 생겼다면서 상담 내내 참 행복해했다.

이제부터 성실히 열심히 산다면 못 이룰 일은 없을 것 같다면서 서로를 보고 웃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부부란 이렇게 서로에게 의지가 되면 생각보다 큰 힘을 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래서 험한 세상 더불어 손잡고 사는 거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정말 해맑고 따스한 가정의 모습이었다.

30세를 갓 넘긴 어린 캄보디아 아내를 보며 문득 한국의 어머니 세대가 떠올랐다. 어찌 보면 평생 가족에 대한 희생만으로 인생을 살아오면서도 저렇게 당차게 내일을 준비하고 부단히 자신을 성장시키는 꿋꿋하고 밝고 건강한 여인의 모습이 참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이역만리 낯선 타향에서 남편 빚 갚는 일로 시작해서 두 아이를 건사하면서도 방통대 진학이 꿈이라며 활짝 웃는 이 여인이 너무 빛나 보였다.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부부 서로 누구 탓도 하지 않고 같이 힘써 노력하는 과정을 보면서 행복이란 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서 만들어가야 하는 삶의 가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행복'은 마땅히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삶의 축복 같은 게 아닐까.

"재무상담을 받으면서 다시 한 번 우리 가정의 경제 상황을 총점검해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어디에 얼마를 쓰기로 소비예산을 책정하고 정해진 만큼 쓰는 것은 아주 좋은 방식인 것 같아요. 게다가 무조건 가계부를 쓰면서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예산에 맞추어 필요한 곳에 쓰고 결산해보는 방식은 뭔가 오히려 풍족함을 주네요.

가계부 쓰면서 월별 통계 내느라 시간 엄청 걸렸었는데 상담을 받고 이젠 통계내기도 간편해졌어요. 정해진 곳에 그냥 돈이 빠져 나간다고만 생각했는데, 소비 예산을 세우고 돈을 쓰니 정해진 돈 어디에 어떻게 쓰는 것이 잘쓰는 일인지에 대해 자꾸 생각해보게 되요. 저희 부부의 돈 관리, 앞으로도 잘 지켜봐주세요."

덧붙이는 글 | * 생활경제상담센터 '푸른살림'에서는 가계부를 넘어선 아주 특별한 돈 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캠페인과 교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 박미정 시민기자는 현재 (사)여성의일과미래 생활경제상담센터 '푸른살림'에서 참경제교육과 생활경제상담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태그:#다문화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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