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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활 4년 내내 목표였던 여신 머리를 포기합니다. 하루에도 12번씩 할까 말까 고민하며 이틀 내내 울었습니다. 그러나 학교 대표자 중 한 명으로서 이것도 못하면 부산대학교 학우들과 전국의 300만 대학생에게 부끄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제 제 소망이었던 여신 머리 대신 모든 대학생의 소망인 반값등록금을 바랍니다."

 

여신 머리, 전지현 그녀가 그랬듯 5:5 가르마에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걷는 모습은 여자는 물론 남자들에게도 '로망'일 것이다. 여신 머리의 고지를 목전에 두고 삭발을 한 부산대학교 부총학생회장 진자령씨는 "삭발 중엔 울지 않았는데, 지금 그림자로 비치는 내 머리를 보니 실감이 난다"며 울먹거렸다. 총 11명의 대학생이 삭발했고 그 중 여학생은 대부분 눈물을 흘렸다. 기자 또한 취재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또 삭발식이야?... 이제 정말 마지막이 될거야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이하 한대련)에서 주최하는 삭발식이 지난 17일 청계광장에서 열렸다.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한대련 마지막 삭발식'은 다시 한번 '반값등록금'을 세상에 외쳐보자는 취지로 이루어졌다. 11명의 삭발예정자가 모두 발언을 하고 삭발을 한 뒤, 결심발언을 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처음은 묵념으로 시작했다. 비싼 등록금을 견디지 못해 세상을 등진 모든 이들을 위한 짧은 시간이었다.

 

'삭발식, 또... 이젠 좀 지겹지 않니?' 되새겨봤다. 사실 취재 전 이 삭발식이 기삿거리가 될까도 의문이었다. 나 또한 수많은 삭발식에 무뎌진 듯했다. 이런 속내를 다 안다는 듯 한대련 교육위원장 윤태은씨는 "사람들이 매년 되풀이되는 삭발에 면역돼서 '쟤네 또 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삭발 결심을 하는 우리는 참 가슴이 아려온다"고 말했다. 이어 윤씨는 "2012년 이번에 하는 삭발은 단순히 내년·내후년에도 하는 삭발이 아니라 올해 반드시 '반값등록금'을 실현해서 마지막으로 만들 것"이라며 투쟁의지를 밝혔다. "등록금이 대학을 가는 데 필요한 돈이 아닌, 대학생들의 자살도구가 되지 않았냐"는 말 또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는 듯했다.

 

삭발대학생 중 한 명인 동아대학교 총학생회장 권오민씨는 "지난 몇 년간 정부와 대학은 철저하게 책임 떠넘기기 하면서 등록금을 꾸준히 인상해 왔다"며 "지난해 반값등록금을 외치는 대학생들을 ▲등록금 소폭인하▲불공평한 조건에서 이뤄진 '등록금심의위원회'같은 학교측 꼼수▲반값등록금 무마용 국가장학금 등을 내놓음으로써 기만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권씨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대학생들의 열의는 아직 꺾이지 않았다"며 "반값등록금이 실현되는 힘은 본인의 힘"이라고 말했다.

 

등록금뿐만이 아니라 한미FTA 발효 등 MB정부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역시 삭발대학생 중 한 명인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권민영씨는 "2008년 무수히도 많았던 촛불을 무시한 채 한미FTA를 발효시키고, 2011년 무수히도 바랐던 촛불을 무시한 채 반값등록금을 실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도대체 왜 국민의 생명을 팔아먹고 식량 주권을 앗아가는 한미FTA는 날치기까지 하면서 통과시키더니 반값등록금 공약·학생들의 구구절절한 호소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총선에서 반값등록금을 지지하는 후보들을 뽑아 이 삭발식이 정말 마지막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생이 밀어주는 머리, "미안하다 동생아" ... 눈물이 뚝뚝

 

"제 머리는 친동생이 밀어주었습니다. 제 동생은 올해 국립대학교에 입학한 새내기입니다. 저는 빨리 '반값등록금'이 실현돼서 동생이 가고 싶은 대학에 갈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그러나 (반값등록금은 실현되지 못했고) 제 동생은 대학 원서를 쓸 때 가·나·다군 모두 국립대학교를 써야만 했습니다."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 김인애 또한 눈물을 흘렸다. 속 쌍꺼풀에 칠했던 마스카라가 번져서 검은 눈물이 흘렀다. 김씨는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지인들이 '뒤에서 응원한다'는 문자와 전화를 많이 받았다"며 "나를 위해, 내 동생을 위해, 모든 학우를 위해서, 뒤에서 응원하지 말고 앞에서, 우리와 같이 반값등록금을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하는 삭발대학생들 뒤에서 눈물을 훔치는 한 대학생을 발견했다. "삭발하는 이들 중에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니오"라고 답한다.

 

"그러면 왜 우세요?"

"너무 슬퍼서요 이 상황이. 이제 막 대학에 입학했는데 이런 행사를 처음 봤어요."

 

덕성여대에 재학 중이라는 안모(20)씨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새내기공연팀에서 알게 된 언니들이 등록금 문제를 설명해줬고 이 행사를 알려줬다. "아직은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면서도 "투표는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동국대 재학 중인 이모(20)씨 또한 "보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들다"고 말했다. "대표자들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고 말하는 한편 "생일이 늦어 투표권이 없는 것이 아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상황이 심각할 줄 몰랐고 분위기가 숙연할 줄 몰랐다, 마음이 아프다"며 같이 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삭발식은 5~6명 교대로 진행됐고 머리카락이 눈물처럼 뚝뚝 떨어졌다. 떨어지기도 전에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나의 손을, 점퍼를 뒤덮었다. 울고 있는 삭발대학생과 자꾸 눈이 마주쳤다. '차라리 렌즈 속에 눈을 집어놓고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머리카락이 입으로까지 들어가는 와중에도 미친 듯이 사진을 찍었다. 머리를 깎은 언니와 머리를 깎아준 동생, 그 상황을 보고 있는 어느 대학생 그리고 기자까지, 모두가 울었다.

덧붙이는 글 | 강혜란 기자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총선특별취재팀입니다


#반값등록금#21C한국대학생연합#4.11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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