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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실록 봉달수 스틸컷
인물실록 봉달수 스틸컷 ⓒ 드림인터내셔널

연극 <인물실록 봉달수>는 최소한 두 가지 관점 이상으로 분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이를테면 지우고 싶은 한 가정의 아픔이 다음 세대에 어떤 방식으로 전이되는가. 혹은 <톰과 제리> 같이 앙숙인 두 남녀 봉달수와 신소정이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가에 관한 분석 등으로 말이다. 필자는 이런 관점들 가운데서 주인공의 '성장'이라는 측면에 포커스를 맞춰보고자 한다.

뇌출혈을 겪을 나이인, 까딱하면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일보직전인 고령의 봉달수의 성장이라고? 이는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측면'의 성장이다. 봉달수는 종업원을 믿지 못하는 고용주다. 휠체어에 의지하는 불편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관여하지 않으면 회사 경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보는, 자신 이외에는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더불어 봉달수는 자아가 강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음에 있어서는 반드시 자신이 규정한 틀에 맞춰야 한다. 종업원이라면 모를까. 주종관계가 아닌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 관계 맺기가 껄끄럽기 그지없어 보인다. 자존심 강하기에 관해서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도도한 소설가 신소정과의 불협화음은 당연지사일 뿐더러, 심지어는 딸 봉미현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아버지 봉달수는 자신의 가업인 보청기 사업을 딸이 이어주길 바란다. 하지만 딸은 보청기 사업엔 털끝만큼의 관심도 없다. 봉미현은 대학에서 유급을 맞는다.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 전공을 하기 때문이다. 봉미현은 아버지의 희망과는 반대의 꿈을 꾼다. 문학에 관심을 갖고 그 꿈을 키우길 원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딸의 꿈이 돈이 되지 않는 일이라 여기고 이를 반대한다. 아버지의 염원과 딸의 희망은 절충안을 찾지 못하고 충돌한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자신이 규정한 틀에 맞추라고 강요하던 봉달수는 자신의 트라우마와 대면하면서부터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60 아니 70의 인생에서 전환점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봉달수는 아버지를 혐오하고 어머니를 연민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발화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그 옛날, 봉달수가 어릴 적에 어머니는 아버지의 손찌검에 고막이 터지고 만다. 봉달수는 어머니의 귀를 망가뜨린 아버지의 폭력을 혐오하지만 다른 형태로 아버지의 폭력을 답습하고 이를 세습한다.  

봉달수의 아내는 소아마비 장애인이다. 봉달수는 아내의 걷는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기 부끄러워 아내를 자신이 규정한 틀에 맞춰 꾸미기를 바란다. 그런데 아내를 향한 봉달수의 규정짓기는 아내를 향한 변형된 형태의 폭력이다. 아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절대로 걷지 못하도록 만들고 봉달수 자신이 원하는 메이크업과 복장을 갖추게끔 만든다. 비록 아내에게 물리적인 폭력은 행사하지 않더라도 정신적인 속박이라는 형태의 폭력을 행사하는 셈이다. 새장 안의 새가 되길 원하지 않았던 아내에게 봉달수는 자신이 규정한대로의 삶을 살게끔 만드는 변형된 폭력을 행사한다. 

본래는 동그랗게 자라는 수박도 네모난 틀 안에 가둬놓으면 네모난 수박이 되고 만다. 봉달수는 타인을 자신의 틀 안에서 규정하기를 원했던 '통제의 대가'다. 봉달수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자서전 집필 과정을 통해 자신의 과오를 깨닫는다. 사람이 변하기는 세상을 바꾸는 것 만큼이나 쉽지 않다. 하지만 봉달수는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변형된 폭력의 유산과 결별을 시도한다. 그리고 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딸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이는 생물학적 연령을 넘어서는, 봉달수의 '정신적인 성숙'과 연관되는 사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아칼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쓴 글에 한 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



#인물실록 봉달수#연극#공연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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