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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4시 모이자! 모두가 잠든 새벽 4시에 대리기사들이 대리기사권익실천연대 결성을 위해 모이고 있다.
▲ 새벽4시 모이자! 모두가 잠든 새벽 4시에 대리기사들이 대리기사권익실천연대 결성을 위해 모이고 있다.
ⓒ 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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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새벽 4시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 인근 논현동의 한 음식점.
두툼한 잠바차림의 사람들이 한 명, 두 명씩 식당 안으로 들어온다.
입구에서 회비를 내고 명찰을 목에 두르는 것으로 보아 평소에 잘 아는 사이 같지는 않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자 6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손에 인쇄물을 들고 사회자는 이동 메가폰의 마이크를 잡는다.

한쪽 벽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대리기사 권익실천연대 발대식'
아하~ 이들은 대리운전기사들이다.
남들은 곤한 잠자리에 빠져 있을 새벽 4시에 모여서 발대식 행사를 진행하다니 참으로 묘한 풍경이다.

도대체 대리기사가 무슨 권익을 찾겠다는 것일까?
손님으로부터 비인간적 모독이라도 당했다는 말인가? 술 마신 사람들이니 적당히 양해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느 기사님이 이야기한다.
"대리기사를 가장 못살게 구는 것은 손님이 아니라 대리업체입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대리업체가 대리기사를 못 살게 굴다니?

대리기사가 대체 뭘 잘못한 거죠?

"대리기사를 가장 못살게 구는 것이 대리업체입니다" 대리기사들은 대리업체의 횡포에 맞설 제도적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대리기사를 가장 못살게 구는 것이 대리업체입니다" 대리기사들은 대리업체의 횡포에 맞설 제도적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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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기사들의 이야기들은 이렇다.

대리운전기사 업무를 수행하려면 스마트폰이나 PDA등 단말기의 프로그램 어플을 통해서 올라오는 여러 개의 콜(주문 오더)을 보고 자신에게 적합한 콜을 선택(배차)한 다음 손님을 만나서 업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그 콜을 올리는 곳이 대리업체 콜센터다.

그런데 대리운전 업무의 특성상 가끔 상황에 변화가 생기거나 손님과 마찰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콜센터는 전후 사정을 듣지도 않고서 무조건 대리기사의 잘못으로만 몰아가거나 심지어 '락'이라는 것을 건다. '락(Lock)'이라는 것은 대리업체가 그 기사에게 해당업체의 주문 오더를 프로그램에서 아예 구경조차 못하도록 일방적으로 배차 제한을 두는 것을 말한다.

해당 프로그램회사에는 월 1만5천 원의 정해진 사용료를 선불로 지급하며 사용하고 있는데, 그 프로그램에 연결된 여러 대리업체 가운데 몇몇 업체의 배차가 제한돼버리면 대리기사는 업무를 수행하는데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 결국 이는 수입의 감소로 이어진다.

"아니, 생각해보세요. 대리기사가 도대체 손님이나 업체에게 잘못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대리기사 업무를 3년째 하고 있다는 어느 기사의 말이다. 따라서 기사들은 대리업체의 잘못이 있더라도 제대로 항변조차 못하며 심지어 인격적인 모독을 당해도 그냥 참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생활에 타격 주는 '똥콜'을 아십니까?

모래알도 뭉칠 수 있다 업무여건상 한자리에 모이기가 어려워서 모래알이라 불린다는 대리기사들이 새벽4시 한자리에 모였다.
▲ 모래알도 뭉칠 수 있다 업무여건상 한자리에 모이기가 어려워서 모래알이라 불린다는 대리기사들이 새벽4시 한자리에 모였다.
ⓒ 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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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러한 프로그램마저 예전에는 1~2개 정도면 업무수행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3~4개 이상을 사용하도록 대리업체들이 업무환경을 유도해가고 있다. 대리업체들끼리 합종연횡을 하며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분화시켜서 대리기사들의 프로그램 사용료 부담을 늘리고 있다고 한다.

대리업체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바로 대리기사들이 지불하는 프로그램사용료의 일부를 프로그램회사와 결탁하여 업체의 수입으로 환원해가기 때문이다. 대리 오더는 갈수록 질(가격)과 양(오더 수)이 떨어지는데 그나마 이런 저런 프로그램으로 나눠서 오더가 올라오면 기사들은 마지못해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결국 대리기사는 수입 감소와 사용료증가의 이중고에 시달리는데 대리업체는 수입이 증대되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대리업체의 대리기사 주머니 착취는 비단 사용료만이 아니고 패널티(벌금)과금, 보험료편취, 수수료인상, 단말기강매 등 여러 경로에서 진행된다. 즉 단말기에 표시된 콜의 출발지나 목적지, 상황 등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아서 자세한 내용을 보려고 배차칸을 눌렀다가 취소를 해도 벌금을 물린다. 건당 500원에 불과한 이 금액이 하루 몇 건씩 한 달 동안 쌓이면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또한 기사들이 지불하는 보험료마저 일부를 업체에서 수입으로 가져가는데 기사 개인이 보험회사에 직접 가입한 대리운전보험은 인정을 해주지 않는다. 월 보험료로 6~7만 원을 지불하는 이 대리운전 보험도 실상은 혜택이 엉망이어서 노예보험이라 불린다.

"그렇게 부당한 짓을 하면서 가격이나 제대로 올리면 또 모르지요…. 이건 완전 똥콜 천지입니다"

똥콜이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대리기사들 사이에서는 대리가격이 현저하게 낮아서 도저히 수행하기가 어려운 저가의 오더를 일명 '똥콜'이라 부르는데 요즘에는 전체 오더의 상당수가 이 '똥콜'에 해당돼 대리기사의 밥줄을 위협하고 있다고 한다.

대리업체가 정상적인 영업을 통해서 이익을 발생시키지 않고 대리기사의 주머니에서 수입원을 찾다보니 정작 대리기사의 수입에 해당하는 콜 수행 가격은 엉망으로 내버려둔다는 것이다.

함께 하겠습니다 대리기사권익실천연대는 공동대표로 산내들님(강성원,왼쪽), 동삼님(박구용)을 선출하였다.
▲ 함께 하겠습니다 대리기사권익실천연대는 공동대표로 산내들님(강성원,왼쪽), 동삼님(박구용)을 선출하였다.
ⓒ 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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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대리업체의 부당한 횡포에 맞서 싸우자는 대리기사들이 모여서 '대리기사 권익실천연대'를 만든 것이다. 참석자들은 이날 박구용씨(ID 동삼님)와 강성원(ID 산내들님)을 공동대표로 추대했다.

박구용 공동대표는 "최소한의 노동조건마저 위협받는 대리기사의 생존권을 찾고 대리업체의 부당한 일들이 시정되도록 관계기관에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강성원 공동대표도 "대리기사가 정당한 노동 대가를 떳떳하게 누릴 때까지 여러 단체와 연대해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로 수도권 대리기사들이 모인 이 단체는 약칭 '대리연대'로 부르기로 하고 이미 진행중인 대리업체 악습철폐 서명작업과 함께 앞으로 대리기사의 사회적 보장을 위한 여러 가지 제도를 강구해 나갈 예정이다. 또한 대리노조를 결성한 대구, 대전의 대리기사 모임과도 연대할 계획이다.

모든 대리업체가 부당하게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양심적으로 운영하는 대리업체도 있다. 이날 지방에서 대리업체를 운영하는 한 업체의 대표도 참석해 "사회공익실현을 목표로 대리운전업을 운영하자"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한 회원은 "자체로 대리운전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대리기사의 희망을 찾자"는 제안도 했다.

아이디가 '대리만족'인 회원은 "사회양극화 최후의 보루에서 일하는 대리기사인만큼 장기적으로는 사회양극화를 해소할 근본적인 방법에서 대리기사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의 비틀거림까지 해결할 대리기사

보험료를 반환하라! 대리기사권익실천연대는 이날 결성식과 함께 대리업체 횡포에 맞서 싸우자는 대리기사실천선언문을 채택하였다
▲ 보험료를 반환하라! 대리기사권익실천연대는 이날 결성식과 함께 대리업체 횡포에 맞서 싸우자는 대리기사실천선언문을 채택하였다
ⓒ 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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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은 대리기사 스스로의 열악한 환경개선을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대리기사가 양산되는 지금의 사회구조에서도 문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대리연대'는 인권유린과 부당현실 철폐를 위한 '실천선언문'외에 대리기사 스스로 사회적 모범을 보이자는 '도덕선언문'도 함께 채택했다.

대리기사는 대리기사 스스로도 모래알이라고 칭한다. 그만큼 여러 가지 여건상 함께 모여서 일을 도모하기가 쉽지 않은 데서 나온 말이다.

수도권 곳곳에 퍼져서 운행업무를 하다가 수입 감소를 감수하면서까지 한 장소에 모인 새벽 4시의 '대리연대' 발대식. 참석한 인원 수 60이 숫자 이상의 엄숙함으로 다가온다. 음주자의 안전 귀가를 책임지는 일선의 대리기사들이 과연 우리 사회의 비틀거림까지 함께 치유할 날이 올지 궁금해진다.


#대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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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중부일보 기자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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