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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 하루 만인 3월 2일 교과부장관(이주호)에 의해 임용이 취소된 박정훈 교사는 2000년에 겪은 일을 평생 잊을 수 없다.

박 교사는 현직 교사이던 2000년 8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 당시 공안당국은 '반국가단체 가입', '지도적 임무 종사죄' 혐의라고 밝혔는데 이 혐의는 국가보안법상 최고 무기징역에 사형까지 처해질 수 있다. 그런 박 교사가 그해 12월 학교로 돌아왔다. 어떻게?

풍선 든 학생들 "선생님 사랑해요"

 2000년 12월 8일 이화외고(신문 사진 설명에 '이화여고'로 되어 있는데 두 학교는 같은 운동장을 쓴다. 정확히 말하면 신문에 나온 학생들은 이화외고 학생들이다) 운동장에 들어선 박정훈 교사. 학생들은 박정훈 교사를 환영하며 그에게 "출석부와 분필통, 그리고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는 이 학생들의 얼굴을 보자. 이것이 증명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주호 장관은 정말 모르겠는가?
2000년 12월 8일 이화외고(신문 사진 설명에 '이화여고'로 되어 있는데 두 학교는 같은 운동장을 쓴다. 정확히 말하면 신문에 나온 학생들은 이화외고 학생들이다) 운동장에 들어선 박정훈 교사. 학생들은 박정훈 교사를 환영하며 그에게 "출석부와 분필통, 그리고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는 이 학생들의 얼굴을 보자. 이것이 증명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주호 장관은 정말 모르겠는가? ⓒ 교육희망(캡쳐)

2000년 12월 7일 박 교사는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무기징역에 사형까지 내려질 수 있는 지도적 임무 종사죄로 구속된 인물이 보석으로 석방되는 국가보안법 역사상,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보기 드문 사건이었다.

석방 다음 날인 12월 8일 학교로 다시 출근하는 박 교사는 운동장에 들어서면서 마음속으로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벌어진 것이다. 초겨울 쌀쌀한 바람에도 전교생들이 박정훈 교사를 환영하기 위하여 운동장에 나왔고, 손에 손에 풍선을 들고 "박정훈 선생님 사람해요"를 외치며,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학생들을 대표하여 반장이 박 교사에게 준 것은 "출석부와 분필통 그리고 꽃다발"이었다. 그는 너무나도 감격하여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참으며 다짐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평생을 학생들에게 갚는 마음으로 살아야지"라고….

이 때 주위 사람들은 "비록 몸은 공안당국에 의해 탄압받지만 이런 학생들을 둔 박교사는 마음은 행복한 교사"라고 부러워했다.

교복 입은 여고생들 "주체사상? 우린 지구과학만 배웠어요"

2000년 8월 서울의 이화외고 학생들은 여름 방학을 마치고 개학한 날 깜짝 놀랐다. 얼마 전까지 함께 수업하던 과학 선생님이 출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며칠 뒤 신문 보도를 보고는 기절할 만큼 놀랐다. 이름도 무시무시한 '민족민주혁명당'에 가입하여 학생들에게 주체사상을 주입한 여고 교사가 구속되었다는 뉴스가 여기저기 나왔는데, 그 학교가 자신들의 학교이고, 그 선생님이 자신들의 과학 담당 박정훈 선생님이라는 것이다.

공안당국은 주체사상을 학생에게 가르치던 현직 교사를 체포했다고 의기양양했지만 곧 상황은 반전되었다. 그에게 수업을 받던 여학생들이 거짓말이라며 박 교사 구제운동에 나선 것이다.

 2000년 8월 22일 명동성당. 수능을 68일 앞둔 그날 고3 제자들까지 거리로 나서 박정훈 교사를 풀어달라고 시위에 참가했다. 인터넷은 이미 난리가 난 상황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직접 거리로 나선 것이다. 중간중간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이고 평복을 입은 학생들도 보인다. 전교생 800명 중 400명이 이날 집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 이것이 무엇을 증명하는 것일까?
2000년 8월 22일 명동성당. 수능을 68일 앞둔 그날 고3 제자들까지 거리로 나서 박정훈 교사를 풀어달라고 시위에 참가했다. 인터넷은 이미 난리가 난 상황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직접 거리로 나선 것이다. 중간중간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이고 평복을 입은 학생들도 보인다. 전교생 800명 중 400명이 이날 집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 이것이 무엇을 증명하는 것일까? ⓒ 김행수

"그분이 계실 곳은, 바로 우리의 학교입니다. 그분은 선생님이시니까요. 저희들이 사랑하는 '선생님'이시니까요. 선생님의 죄목이 '학생들에게 주체사상을 주입시켰다'라는 것이라면, 선생님은 분명히 무죄입니다. 왜냐하면 저희가, 저희 이화외고의 전교생이 절대로! 주체사상 따위는 교육받지 않았으니까요. 저희들의 선생님을 돌려 주세요."
- 2000년 8월 25일 이화외고의 학생이 인터넷에 올린 글(일부)

학교 홈페이지는 수천건의 글이 올라오면서 난리가 났다. 죄 없는 선생님을 돌려달라는 학생들의 눈물과 분노의 목소리가 넘쳐났다. 청와대, 교육부 홈페이지 그리고 언론사 홈페이지는 선생님을 구제해 달라는 이 학교 학생들의 호소글로 넘쳐났다. 이들 중에 박 교사에게 주체사상을 교육 받았다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애초 국정원과 공안검찰은 박 교사가 반국가단체에 가입하여 고등학생들에게 주체사상을 가르치는 일을 전담하는 고등학교 사업부서의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직접 학생들에게 주체사상을 교육한 혐의라고 했지만 이런 국정원의 주장은 며칠 못 가 뒤집어졌다.

그에게 직접 수업을 받은 학생들이 사이버 공간을 넘어 "주체사상? 우리는 지구과학만 배웠어요"라며 직접 길거리로 나섰기 때문이다. 수능이 68일 밖에 남지 않은 9월 8일,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집회와 거리 서명운동에 여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직접 참여했다.

당시 이화외고의 전교생이 800여 명인데 그 중에 400여 명이 직접 거리 집회에 참가한 것이다. 학교도 깜짝 놀랐고 공안당국은 질겁을 했으며, 교육당국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고3 학생들까지 박 교사 구명운동에 나서는 것을 보고 학부모들까지 학생들을 믿고 동참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도 올라있는 사설로 해직

무시무시한 반국가단체 가입, 지도적 임무 종사죄, 주체사상 교육 어쩌고 하면서 언론 플레이를 하던 공안당국이 학생들의 시위로 그 주장이 거짓임이 드러났다. 공안검찰의 주장을 재판부는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선일보의 NK조선 홈페이지  박교사가 가지고 있었다는 이적표현물인 노동신문 사설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로선을 끝까지 견지하자'는 조선일보의 이 홈페이지에도 있다. 지금도 이 사설은 인터넷에서 누구나 쉽게 구해서 읽어볼 수 있다. 주체사상 교육이니 반국가단체 지도적 임무종사니 하는 것들 중에 유죄로 인정된 것은 단 하나 바로 이 사설을 인쇄한 것이 전부였다.
조선일보의 NK조선 홈페이지 박교사가 가지고 있었다는 이적표현물인 노동신문 사설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로선을 끝까지 견지하자'는 조선일보의 이 홈페이지에도 있다. 지금도 이 사설은 인터넷에서 누구나 쉽게 구해서 읽어볼 수 있다. 주체사상 교육이니 반국가단체 지도적 임무종사니 하는 것들 중에 유죄로 인정된 것은 단 하나 바로 이 사설을 인쇄한 것이 전부였다. ⓒ 김행수

중형에 처해질 수 있는 반국가단체의 지도적 임무 종사죄에 대해서 재판부는 아예 인정도 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했다. 반국가단체 가입 혐의에 대해서도 박교사가 교사가 되기 전 학생운동 시절, 또는 청년운동 시절인 1992년 이전의 이야기로 유무죄를 따질 것도 없이 공소시효가 지났으므로 "면소" 판결을 내려버렸다. 검찰은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결국 마지막으로 검찰이 찾아낸 것은 이적표현물이었다. 당시 박 교사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로선을 끝까지 견지하자'는 제목의 노동신문 사설 인쇄물이 발견된 것이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운받아 출력물 형태로 보관한 것이라며 검찰은 이를 이적표현물이라며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우스운 것은 이 노동신문 사설은 지금도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NK조선>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라있다. 여기에 가면 노동신문사설 뿐 아니라 주체사상 관련 원전, 선군정치 찬양 사진 등을 누구나 쉽게 다운받을 수 있다. 더 황당한 것은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대학 도서관에서 북한의 노동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태산을 울릴 듯 현직 교사 주체사상 교육, 지도적 임무 종사 어쩌고 하면서 시작된 박 교사 사건은 결국 쥐 한 마리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인쇄물 한 장'으로 끝났다. 전형적인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다.

박교사는 이렇게 인쇄물 한 건 때문에 2002년 대법원에서 징역1년,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되어 교단에서 물러나게 것이다. 그런 교사에게 다시 교단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광복절을 맞아 노무현 대통령 8.15 특별사면을 받은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8.15 특별 사면... 서울교육감에 복직 권고 공문

 2006년 2월 교과부의 복직권고 공문. 박교사는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8.15특별사면으로 공무담임권을 회복하였고, 교육부가 서울교육청에 복직을 권고하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그런데 이 공문을 공정택 당시 교육감이 집행을 거부했는데, 곽노현 교육감이 집행한 것을 이제 와서 안 된다고 우기고 있다.
2006년 2월 교과부의 복직권고 공문. 박교사는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8.15특별사면으로 공무담임권을 회복하였고, 교육부가 서울교육청에 복직을 권고하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그런데 이 공문을 공정택 당시 교육감이 집행을 거부했는데, 곽노현 교육감이 집행한 것을 이제 와서 안 된다고 우기고 있다. ⓒ 김행수
뒤이어 2006년 2월 3일 교육인적자원부는 서울교육청을 비롯한 전국의 시도교육청에 민주화유공자와 8.15사면복권자들에 대한 복직 권고 공문을 내려보냈다. 그 공문에 박정훈 교사의 이름도 복직 대상으로 올라있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는 박정훈 교사를 비롯한 3명의 임용을 취소하면서 "사립학교 교사는 사립학교 원직 복직이 원칙이므로 공립 특채는 불법이다. 교육공무원법 제23조의 제1항 제2호의 임용 예정직 상응 3년 경력은 교사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 공문에 의한 발령 유효 기간은 1년이다" 등등의 주장을 하고 있지만 모두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이 공문을 근거로 2008년, 심지어 2009년에도 복직을 한 사례가 있고, 또한 이 공문은 특별 채용 법적 근거가 교육공무원법 제23조제1항제2호임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공문에 의해 선일여고·경문고·중동고 등 사립학교의 해고자들이 공립으로 특별채용되었다.

또한, 이 공문은 명백하게 "8.15특별사면자의 경우 특별채용 여부를 임용권자(서울교육감)이 판단·결정"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곽노현 서울교육감이 교육부의 이 공문에 근거하여 특별채용 권고를 받은 사람을 특별채용한 것인데 이제 와서 교과부가 온갖 거짓말로 꼬투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이 공문이 교육청에 내려온 이후 서울교육청(당시 공정택 교육감)은 이화외고에 박정훈 교사를 받으라고 공문을 보냈고, 이화외고는 자신들이 징계해서 해직된 것이 아니니 국가(교육청)가 책임져야 한다고 하며 서로 복직 책임을 미루었다. 이렇게 교육청과 이화학원이 서로 핑퐁게임을 하듯 책임을 미루는 사이 박정훈 교사는 이 사태를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공문에 따라 곧 복직될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생계를 위하여 택시 운전도 하고, 실업수당으로 생활하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복직을 포기하고 학원강사로 취직하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지만 그는 곧 서게될 아이들 앞에서 당당하기 위해서 학원 강사 취업 대신 2011년에는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면서 학생·교사들과 지냈다. 그리고 2012년 3월 드디어 서울교육청에서 특별 채용으로 교단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이렇듯 교육부가 복직시키라는 공문 보내서 복직시켰더니 이제와서 교육부가 복직시키지 말라고 임용 취소를 하고 있는 꼴이 참으로 우습다.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추어야 할지 모르겠다.

새누리당 이재오·임해규·정병국도 국보법 징역인데... 학생들에게 물어보라

새누리당의 국회의원과 MB정권 실세 중에도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이 여럿 있다. MB정부 최고의 실세 중 한 명인 이재오 의원(전 특임장관), 정병국 국회의원 겸 전 문광부장관, 국회 교육상임위원인 임해규 위원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은 전력이 있다.

MB정부의 핵심 참모인 박형준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문수 경기도 지사 등은 국보법 폐지와 연방제 통일을 주장했던 민중당과 관련 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금 <동아일보>와 같은 보수언론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가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고 난리를 떨고 있다. 특히, 이들의 '주체 사상 드립'은 눈물겹다.

이주호 장관은 박정훈 교사에게 지구과학을 배웠던 이화외고 학생들과 지난 2011년 박 교사가 기간제 교사로 과학을 가르쳤던 세현고 학생들에게 뭘 배웠는지 직접 물어보라. 정말 그가 주체사상을 단 한 줄이라도 가르쳤다면 그 아이들이 가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2000년 여고생들의 외침이 아직도 선하다.

"빨갱이요? 우리 선생님은 주체사상과 공산주의가 아닌 삶과 과학을 가르쳤습니다!"

박정훈 교사가 주체사상을 가르치지 않았으며, 훌륭한 과학교사라는 것은 그 때 그 제자들이 명동성당과 인터넷에서 이미 증명한 것 아닌가?


#임용취소#박정훈#이화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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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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