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에 촬영하는 웨딩포토가 대만에서 건너온 지 20년은 되었나 보다. 그때만 해도 웨딩포토는 연예인 또는 강남의 몇몇 부자들이나 촬영을 했었다. 나는 그때 음성에서 직장생활을 했었는데, 투잡으로 일요일이면 모 방송국의 선배 주선으로 웨딩촬영을 했었다.
20년 전 월급이 150만 원. 웨딩촬영 한 번 하면 200만 원이었으니, 웨딩촬영을 주선해 준 드레스 삽에 20%를 떼어주고도 원가를 제하면 140만 원 이상이 남았다. 150만 원짜리 월급쟁이가 매주 140만 원씩 한 달이면 최소한 400만 원 이상의 부수입이 있으니, 회사 사장이 뭐라고 해도 이사가 뭐라고 해도 잘못된 지시가 내려오면 따지기 일쑤였다.
남들은 회사에 손해가 나는 일이라도 사장과 이사 말이면 아무말 못 하고 일을 진행하는데,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현장감 떨어지는 사장을 설득시켜서 올바른 방향으로 일을 진행했다. 이런 이유로 회사 이사나 공장장도 어쩔 수 없이 내 눈치를 보곤 했었다. 나의 이런 자신감은 웨딩촬영이라는 부수입에서 나왔다.
"쫓아내려면 쫓아내라! 내가 여기 아니면 밥 못 먹고 사는 줄 아느냐?" 몇 년 후,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사진관을 개업했는데, 디지털카메라가 나오고부터 사양 산업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예전에 모아 놓은 돈까지 다 까먹고 이제는 사진관까지 내놓는 사태에 이르렀다.
지난주에 실로 오랜만에 웨딩사진 의뢰가 들어왔다. 문제는 요즘 웨딩포토라는 게 어떤 스튜디오에서 찍던지 신랑·신부 얼굴만 달랐지 포즈며, 소품 그리고 배경까지 대부분 비슷하다. 따라서 손님들에게 내놓는 이 앨범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
가는 집마다 똑같은 포즈에 비슷한 배경의 사진을 내놓으니 '사진이 예쁘게 나왔다, 근사하다' 속에 없는 말로 칭찬은 해야겠는데, 그만큼 재미가 없다는 말이다. 사진이라는 게 핀트가 덜 맞아도, 노출이 부족해도, 내 가족 내 자식 사진이면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지만, 타인의 사진은 그렇지를 못하다. 더구나 결혼식 사진은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별다를 게 없는 사진이기에 더욱 지루할 수밖에 없다. 웨딩촬영을 의뢰한 신랑·신부를 데리고 동네 근사한 중국집으로 데려갔다. 식사하면서 신랑·신부에게 위의 사정을 얘기하고 나의 사진촬영 스타일을 설명했다.
"내 사진은 흔들린 사진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신랑·신부만을 위주로 찍지 않습니다. 신랑 ·신부가 주제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결혼식 자체를 하나의 풍경으로 보고 또 그렇게 편집을 할 것입니다. 또한 가족사진이나 기타 단체 사진처럼 틀에 박힌 사진을 저는 좋아하지도 중요하게도 여기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결혼 앨범을 보는 이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게 꾸밀 자신은 있습니다. 40여 장의 사진이 들어가는 앨범 속에 두 분의 결혼식을, 두 분 만의 멋진 연애가 결실을 맺는 연애소설을 쓴다는 심정으로 촬영하고 편집을 할 겁니다. 이래도 저에게 촬영을 맡기시겠습니까?" "제가 원하는 바입니다. 그것 때문에 사장님을 찾았고 촬영을 부탁하는 것 아닙니까?"
나중에 신랑·신부가 앨범을 받아보고는 사진에 만족하며 돌아갔다. 친구들이 집들이를 와서 신랑·신부 웨딩앨범을 보며 자기들이 주제가 된 신혼부부의 앨범을 보고 흥겨워하며 이야기꽃을 피울 것이 눈에 선하다.
다만 예식장에서 분위기를 살린다고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아 흔들린 사진 몇 장이 앨범 속에 포함되었는데, 신부가 보더니 오히려 흔들린 사진이 더 재미있단다. 모르기는 해도 사진이 마음에 들기보다는 앨범 속 사진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참으로 오랜만에 즐겁게 촬영을 했고, 신랑·신부와 죽이 맞았던 웨딩촬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