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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절 아침, 해군이 대형 바지선을 투입해 강정바다에서 준설공사를 시작하고 있다.
3.1절 아침, 해군이 대형 바지선을 투입해 강정바다에서 준설공사를 시작하고 있다. ⓒ 강정마을

 

임기 1년 채 안 남은 대통령 한마디에 '일사천리'

 

말 그대로 군사작전이었다. 3·1절 새벽, 해군은 인근 화순항에 있던 대형 바지선을 어둠을 틈타 밤새 이동시켜 강정마을에 투입했다. 곧바로 기습적인 준설작업이 시작됐다.

 

2월 22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 22, 23일 관계부처 회의 → 29일 국무총리 주재 국가정책조정회의 → 3월 1일 기습적인 준설 공사. 대통령이 "제주 해군기지 건설 강행" 의지를 밝힌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이다. 

 

임기 1년이 채 남지 않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국회가 권고해 총리실이 운영했던 검증위의 "항만설계에 명백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허튼 소리'가 되고 말았다. '민·군 복합항' 적합여부를 둘러싼 지난한 논쟁은 대통령 스스로 '제주 해군기지'라고 명쾌하게 규정하면서 '쓸 데 없는 짓'이 되었다. 설계오류를 인정했던 국무총리는 말을 바로 바꿔 "공사방해 하는 자들은 엄단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모두 불과 일주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속도전으로 해군기지 공사가 시작되자 강마을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이들의 외침은 경찰에 의해 포구에서부터 원천봉쇄 당했다. 주민들이 불법공사를 감시하겠다며 카약을 타고 바다로 나가려 했지만 이 역시 원천봉쇄 당했다.

 

약 2시간 가까운 실랑이를 벌이고서야 주민 10여 명은 카약 5대에 나눠 타고 해군기지 준설공사를 감시하며 해상시위를 할 수 있었다. 강정주민들은 불법 공사가 계속 되는 한 공사저지를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경찰 역시 정부 방침에 따라 공사방해 행위를 엄단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주민들의 피해가 우려 된다.

 

주민과 활동가들, 극심한 무력감과 우울증 호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부 마을 주민과 활동가들이 정부와 해군, 경찰의 '막가파식' 공사강행과 편향적인 공권력 남용에 극심한 무력감과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주민과 활동가들은 소셜네트워크비스(SNS) 등에 "할 수 있는 게 죽음밖에 없을까" "나 하나 죽어서 해군기지 막을 수 있다면…" 등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글들을 올리고 있어 주변을 긴장시키고 있다. 공권력에 대한 절망감과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의 무관심이 강정마을에서 자칫 제2의 '용산참사'를 불러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려는 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1일 오후 강정마을 포구에서 한 평화활동가가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더 이상 없다"고 절규하며 투신을 시도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다행히 주위에 있던 이들이 재빨리 제압해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해군이 준설공사를 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서 카약을 탄 마을 주민들이 접근하자 해양경찰이 이를 에워싸서 제지하고 있다.
해군이 준설공사를 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서 카약을 탄 마을 주민들이 접근하자 해양경찰이 이를 에워싸서 제지하고 있다. ⓒ 강정마을

 

김복철씨는 자신의 페이스 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강정포구에서 활동가 한 분이 포구 아래로 투신하려는 것을 말렸다. 다행히 큰일 없었다. 공권력 앞에 너무 초라한 무력감에 서글퍼 껴안고 말없이 함께 울었다. 제2의 용산참사가 될까 싶어 두렵다. 이곳 강정은 전쟁터보다 더 인권이 침해되는 곳이다."

 

배기철 제주주민자치연대 대표는 "정부가 합당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막가파식으로 공사를 밀어붙이는 것은 전쟁을 하자는 것"이라며 "아무리 옳은 주장을 해도 힘없는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이 막강한 국가의 무력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냐"고 쓴 한숨을 내뱉었다.

 

심지어 한 활동가는 페이스 북에 "저들을 멈추게 할 우리의 마지막 카드는? 분신, 할복, 삭발, 단식... 생각하기 싫은 끔찍한 단어들이 머릿속을 맴돈다"고 극심한 자괴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김아현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은 "강정 해군기지 투쟁과정에서 연행이나 체포를 경험한 주민과 활동가의 수가 2012년 2월 27일 현재 총인원 330명을 넘었다"며 "이들 대부분의 혐의는 경범죄와 업무방해다, 이는 명백한 국가폭력이고 이 국가폭력이 일상이 되어버린 강정의 비극은 아직 진행형"이라고 고발했다.

 

여당후보도 반대하는데..."민주당 뭐하나?"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자 정치권 특히 제주 해군기지 공사 중단과 전면 재검토를 총선공약으로 하겠다던 민주통합당의 무관심을 꼬집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해군의 불법공사를 감시하겠다며 카약을 타고 바다로 나가려는 마을 주민들을 강정포구에 봉쇄하고 있는 경찰.
해군의 불법공사를 감시하겠다며 카약을 타고 바다로 나가려는 마을 주민들을 강정포구에 봉쇄하고 있는 경찰. ⓒ 강정마을

 

강정마을에 와서 평화자원활동을 한 지 이제 8개월째라는 한 활동가는 "서귀포시에 출마한 해군 출신 새누리당 후보조차 대놓고 제주 해군기지를 반대하고 있다"며 "그런데 해군기지 전면재검토를 총선 공약으로 하겠다던 민주당은 정부와 해군이 주민들 인권을 유린하며 밀어붙이기 식으로 공사를 강행하는데 와보지도 않는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특히 한명숙 대표를 향해 "이명박 대통령이 대놓고 모욕을 줬으면 입장이 달라졌다고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처럼 반박을 해야지 침묵하는 이유가 뭐냐"며 "한 대표의 침묵과 무관심은 제주 해군기지 공사중단하고 재검토하겠다는 민주당의 당론과는 다른 것인지 분명하게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한편 20년 넘게 해군에 복무했다는 새누리당  김중식 예비후보(서귀포시)는 "전 세계에 군사기지와 관광미항이 같이 쓰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며 "군사작전 및 훈련의 경우 계획없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언제든 민간선박이 통제될 수 있는 우리나라 안보 등을 고려할 때 민군복합형은 있을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김 후보는 또 "해군은 '이어도' 부근에 출몰하는 중국 순시선을 해군이 퇴치하겠다고 하는 데 이어도 부근은 중국과 배타적 경제수역(EEZ) 획정이 되지 않은 지역으로 분쟁 지역화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우리의 외교력이 중국보다 우위에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른 이 같은 주장은 이어도를 잃을 가능성을 매우 높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제주해군기지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강정마을#제주 해군기지#페이스 북#용산 참사#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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