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침, 저녁으로 지하철 역 입구에는 어김없이 무가지가 있다. 처음 이 무가지를 접했을 때 신문을 공짜로 나눠주는 것처럼 보여서 깜짝 놀라기도 했었다. 그러나 신문과 무가지는 엄연히 다르다. 신문이 정보와 뉴스 전달이 주요 기능이라면, 무가지는 신문처럼 보이지만 정보와 뉴스는 부가서비스일뿐 광고전단지 묶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사처럼 보이지만 실은 상품 광고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목이 "겨울에는 피부 관리에 주의해야" 라는 기사가 있다고 하자. 내용을 읽다 보면 겨울철 피부관리에는  OO회사의 OO제품이 좋다고 아예 직접적으로 말한다. 이것은 기사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광고이다. 무가지가 공짜로 배포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무가지는 광고비를 받아 운영하는 사업이다.

무가지야 원래 사업 모델이 그렇기에 광고가 대부분인 것이 당연하다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뉴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광고에 불과한 신문기사나 TV뉴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백화점 전단지인가? 신문기사인가?

언론사 페이지 한장면
 언론사 페이지 한장면
ⓒ 해당 언론사

관련사진보기


<현대百 100억원대 명품 떨이하는 이유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는 10일부터 12일까지 100억원대의 해외 명품을 최고 80% 할인한 가격에 '정리'한다. …. 물량이 대거 나온 만큼 통상 1개층에서 진행했던 이전과 달리 문화홀과 대행사장을 포함한 3개층에서 진행된다 …. 이러한 염가 행사를 하게 된 이유는 전반적인 소비 심리 위축 속에서 겨울 장사가 재미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 롯데백화점 일산점은 50∼70%를 할인하는 모피 행사를 이달말까지 지속할 계획이다. …  백화점업계의 한 관계자는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는 듯하다"면서 "소비심리가 침체하고 날씨까지 영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언뜻 보면 명품까지 떨이를 해야 할 정도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단순한 뉴스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비틀어서 따져보자.

기사 내용은 백화점 행사를 아주 친절하게 안내해 주고 있다. 백화점 이름과 그 행사가 열리는 지점, 행사 날짜, 행사규모, 할인율까지 보여주고 있다. 만약 이게 뉴스라는 형식을 빌리지 않았다면 그냥 백화점 광고전단지와 다를 게 없다. 더군다나 "명품 떨이"라는 말이 얼마나 자극적이고 유혹적인 제목인가? "명품 80% 세일이라고? 나도 한번 가볼까? 혹시 운 좋게 싸게 명품 하나 건질지도 모르잖아"라는 생각을 할 가능성이 훨씬 클 것이다. 이 뉴스 덕분에 백화점 할인행사를 알게 되고 그곳을 방문한 고객들이 늘어났을 거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노후대비 정보인가? 연금가입 광고인가?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다가오는데 노후준비는 돼 있지 않다는 뉴스가 자주 등장한다. 이와 관련해 2월 6일자 한 TV 뉴스의 내용을 살펴보자.

은퇴를 앞둔 50대 뿐만 아니라 40대의 노후 준비가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자녀 교육비 등 쓸 곳은 가장 많은 때지만 수입은 제 자리에 가계 빚만 늘고 있습니다. …. 회사원 OOO씨,올해 43살입니다.  재산은 아파트 한 채가 전부, 주택담보대출로 빚이 많고 저축은 거의 없습니다. 초조한 마음에 최근 개인연금에 가입했습니다. <인터뷰> OOO(회사원/43세) : "일한 날보다 일할 날이 적어요. 그게 갑자기 느껴지더라구요. " ….  40대 가구주의 평균 자산은 1년 새 6% 늘어나는데 그친 반면 부채는 9%나 증가하고 있습니다. … 40대라면 소득의 최소 10%는 은퇴준비에 투입할 시기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이 기사에서 노후준비를 위한 대책으로 제시한 것이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소득의 10%를 은퇴준비에 하라고 한다. 인터뷰한 회사원 OOO씨도 최근 개인연금에 가입했다고 말한다. 이 뉴스를 보면서 같은 처지의 많은 사람들은 노후에 대해서 불안함을 느낄 것이다.  "그래 나도 지금이라도 뭔가 노후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인터뷰에 나온 사람처럼 연금이라도 가입해야 하나?"하는 마음도 들 것이다.

이 뉴스에서 노리는 점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준비 없는 노후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그 대책으로 저축을 늘리라고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연금가입을 말한다. 혹시나 보험사의 연금보험 판매를 간접적으로 광고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너무 음모론적인 비약이 아니냐고 반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잘 따져보면 이 기사는 앞 뒤가 맞지 않다. 40대 가구주의 부채가 9%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 40대 가구주가 노후를 위해 저축할 생각은 하지 않고 소비만 해서일까? 노후대비를 못하는 이유가 소득의 10%를 노후준비에 써야한다는 사실을 몰라서일까? 아니다. 40대 노후준비가 어려운 이유는 기사 앞 부분에 "수입은 제자리에 가계 빚만 늘고 있다"라고 정확하게 나와있다.

인터뷰한 회사원 OOO씨도 역시 빚이 많고 저축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노후준비를 할 줄 몰라서 또는 돈을 마구 써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노후준비를 할 돈이 없다는 것이 정확한 답이다. 대한민국 평균 가계저축율이 4.3%이라는 사실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뉴스에서 말한 것처럼 소득의 10%를 그것도 20년 뒤 쓸 노후를 위해 저축하라고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해답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인터뷰에서 43살의 나이에 개인연금에 가입했다고 말한 회사원 OOO씨의 선택이 위험하다. 그는 지금도 저축이 거의 없다. 자녀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 지출은 더욱 더 늘어날 것이고 반면에 소득증가는 쉽지 않다. 그런데 지금 가입한 연금을 과연 55세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중도에 손해보고 결국에는 해지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실제로 우리나라 개인연금 유지율은 20%에 지나지 않는다 10명중 8명이 중도에 해지한다는 뜻이다.

이 기사의 앞·뒤가 맞으려면 저축이 없는 상황에서 노후불안감에 휩싸여 40대의 나이에 연금가입을 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안이 전혀 맞지 않는 이 기사를 연금가입을 "은근히 부추기는 광고가 아닐까? 연금보험을 판매하는 회사에서 뿌린 보도자료만 그대로 갖다 만든 기사는 아닐까?"라고 의심하는 것을 너무 과민반응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언론은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이라고 여겨진다. 사람들은 기사를 당연히 광고와는 다르게 생각한다. 불행히도 우리가 접하는 수 많은 뉴스들 중 어떤 것들은 형식만 뉴스일 뿐 광고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가 매 순간 이건 광고야 뉴스야를 고민해야 하는 건 불가능하다. 광고와 정보를 구별하는 것도 쉽지 않기에 소비자들은 그냥 무방비로 낚이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가장 믿을 수 있어야 하는 언론에게서 광고의 향기가 나는 지금의 현실은 그래서 너무나 위험하다.

덧붙이는 글 | 이지영 기자는 현재 (사)여성의일과미래 생활경제상담센터 푸른살림에서 경제교육 강사와 재무상담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소비, #광고, #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