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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학교를 옮긴다. 2월이면 만기근무를 마친 교사는 메뚜기떼처럼 이동을 시작한다. 교사에게 '전근'은 아이들이 입학하는 것처럼 설레면서도 낯선 환경을 앞에 두고 긴장되는 일이다. 인간의 심리는 낯선 곳에 적응하기 두려워 옛정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동물적으로 새로운 환경보다는 적응된 옛날이 편하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이번에 부임 받은 학교는 여학교다. 여학생들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부드럽고 생기발랄하겠지만 더 큰 부담감이 밀려오는 이유는 뭘까?

나는 설렘보다 걱정이 앞선다. 전임지 학교에서 남학생들과 부대끼다 보니 은연중 거칠어져 있을 것이리라. 말투 또한 거칠고, 배려가 투박할 터이다. 아무래도 여학생들은 아기자기하고 예민한 문화일텐데 워낙 무덤덤하고 건조한 남학교에 익숙하다 보니 내심 걱정인 것이다. 4년 내내 유머보다는 호통이, 진지함보다는 경직된 통제가 지배적인 습관이었을 것이기에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막힘없이 소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남학생들은 의리를 따진다지만 좀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여학생들과의 소통은 다소 막막하기까지 하다. 요즘 아이들의 세태는 자기방어를 위해서라면 쉽게 거짓말을 입에 달고 명백한 사실도 아니라고 우긴다. 싫은 소리는 옳을지라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더더욱 세대차가 날로 벌어지는 나로선 자기 울타리를 넘을 줄 모르는 아이들 앞이 두렵다.

새로 가는 학교는 전통에 빛나는 명문(?) 여학교다. 솔직히 그것 때문에 부담인 것은 아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어느 학교로 간들 새로움에 대한 부담이 어찌 안 되겠는가. 업무배정, 수업시간, 학급운영, 진로, 상담활동, 학습지도, 인간관계 등 한 인간에 대한 인생의 설계를 조력하는 일이요, 개별인간의 성공적인 삶을 위해 지원하는 일이니 모든 과정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고운 여학생들 앞에 서려면 옷차림도 신경써야 할 것 아닌가. 넥타이도 잘 골라서 매고, 교실 앞에서 옷매무새를 확인하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심성 고운 아이들이 깔깔대며 수업에 참여하고 생기발랄한 모습이 되도록 유머시리즈, 한담거리도 들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남학생들에게 하듯 칠칠맞게 생활해서는 안 될 일이다.

또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다. 딱딱한 수업이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지식만 주입하는 수업이 되지 않기 위해서 칠판 앞에서 늘 고심에 찬다. 갈수록 아이들의 지식접근능력은 교사들보다 훨씬 능수능란하고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를 많이 발견한다. 그들의 능력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도록 기를 살려주고 그들의 꿈의 실현을 위한 교사들의 코디능력은 날로 거듭나야 한다.

더더욱 담임으로서 학급 아이들은 어떻게 만나야 할까? 아이들의 교실생활은 가정생활이나 다름없다. 아이들이 숨쉬고, 공부하며, 휴식을 취하는 복합적인 공간이다. 가정에서보다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에게 편식하지 않고 정신적인 방황이나 심리적 공황에 빠지지 않고 균형있는 생활을 유도하는 일은 모두 산파여야 할 담임의 몫이다.

전근은 이렇게 많은 고민의 보따리를 끌고 다니게 한다. 해년마다 만나는 아이들이지만 그들과 어떻게 1년을 살 것인가는 늘 무거운 짐인 것이다. 그들에게 현실을 위선으로 포장하지 않고 삶의 진실을 깨우칠 수 있을까? 조바심치는 심정으로 아이들과 첫 만남을 가져보지만 죽을 때까지 첫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결혼생활이 되고 마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열정을 쏟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들 앞에서 늘 부담이다.

오늘은 새 학교에 인사하러 간다. 교문을 들어서면서 얼마전 한 신문에서 소신있는 어느 교사가 근무해오던 학교를 갑자기 그만두고 쓴 귀농소식이 크게 귓전을 울려온다. "아이들을 세상의 때를 묻히지 않고 무균질의 깨끗한 공간에서 키우겠다는 것은 만용이자 허영이다"라며 입으로 하는 실천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몸으로 살기를 선택한 것이다. 매번 전근을 갈 때마다 나도 유사한 고민에 빠진다. 그 교사와 같은 고민의 근원은 뭘까?


#전근#학기초 교사들의 고민#학교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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