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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호의 춤음악극 <사도>. 사도세자(조재혁 역)가 뒤주에 갇혀 절규하는 장면.
국수호의 춤음악극 <사도>.사도세자(조재혁 역)가 뒤주에 갇혀 절규하는 장면. ⓒ 문성식 기자

지난 10일과 11일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국수호의 춤음악극 <思悼(사도)-사도세자 이야기> 공연이 있었다. 한국 무용계의 거성으로 수십 년간 수많은 무용공연에서 획을 그어왔던 국수호디딤무용단의 단장이자 춤작가인 국수호는 이번 공연 역시 그 특유의 스타일로, 아비로부터 버림받고 뒤주에 갇힌 비운의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음악과 무대로 연출해 내었다.

전체 18장으로 구성된 공연에서는 시작부터 무대에 세워진 네 개의 커다란 인형들이 눈에 띄었다. 조선시대 궁중복식을 입은 색색의 큰 인형은 허수아비처럼 무대 뒤편에 위치하며 인생무상의 처연함과 슬픔을 표현하는 듯 보였다. 그 앞으로 피아노 두 대와 남성성악, 바이올린이 위치하며, 공연의 주요요소로 스토리를 이끌어가며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4장 '순간 2 - Love'.  극한 상황 중의 사도(조재혁 역)와 혜경궁 홍씨(이윤경 역)가 애틋한 사랑의 춤사위.
4장 '순간 2 - Love'. 극한 상황 중의 사도(조재혁 역)와 혜경궁 홍씨(이윤경 역)가 애틋한 사랑의 춤사위. ⓒ 문성식 기자

전반적으로 비극적 스토리를 표현하기 때문에, 슬픔과 아픔, 분노의 동작 위주지만, 11일 사도역의 조재혁과 혜경궁 홍씨 역의 이윤경의 사랑 장면인 4장 '순간2-Love'에서는 밝은 음악과 함께 두 무용수가 완벽한 호흡으로 아름다운 동작을 표현하여 행복한 시절이 비극과 대비되며 더욱 애틋하였다. 또한 정조 역의 정지욱 역시 아비 잃은 슬픔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역시 국수호의 연출이므로 무용은 한국 전통정서를 다채로운 표정과 몸짓, 발짓으로 표현하고 있었고, 특히 모든 무용수가 손동작으로 정서와 상황을 표현하고 있었다. 3장 '순간1 -Love and Hatred', 7장 '순간4-Character'에서 영조(손관중)가 손을 하늘로 치켜세우며 아들 사도(조재혁)를 폐위시키는 강한 처단을 내리는 장면에서는 그 카리스마와 왕권과 분노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7장 '순간 4 -Character' 손을 치켜든 영조(손관중 역)의 증오과 정조(정지욱 역)와 혜경궁 홍씨(이윤경 역)의 슬픔.
7장 '순간 4 -Character'손을 치켜든 영조(손관중 역)의 증오과 정조(정지욱 역)와 혜경궁 홍씨(이윤경 역)의 슬픔. ⓒ 문성식 기자

대형 연못을 무대중심부의 바닥으로 배치한 것이 특이하다. 이 연못에서 혜경궁 홍씨(이윤경)와 아들 정조(정지욱)가 동시에 한손으로 연못물을 조용히 휘젓는다. 이것은 1장 '영혼의 소리I' 에서는 앞으로 일어날 사도세자와 아버지 영조 사이의 비극적 스토리를 암시하고, 마지막인 18장 '영혼의 소리V-영가'에서는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을 회상하며 결말을 짓는 역할을 한다.

음악은 작곡가 홍동기가 맡았다. 춤음악극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음악은 무대 한쪽 구석이 아니라 무대 뒤편 중앙에서 엄연히 무대미술을 구성하며, 의상도 전통복식 스타일로 고풍스러운 멋을 연출하였다. 음악가들은 극의 스토리를 설명하는 해설자로 역할하며 제1피아노는 사도세자의 테마를, 제2피아노는 영조, 혜경궁 홍씨, 정조의 테마를 전담하여 들리는 음악만으로도 상황표현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또한 바이올린(인생의 바람-김현남)의 처연한 선율과 소리(영혼의 소리-지혜근)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장면 연출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6장 '순간 11 - Death'.  사도가 공중에서 격정적으로 생의 끈과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16장 '순간 11 - Death'. 사도가 공중에서 격정적으로 생의 끈과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 문성식 기자

음악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불가피하게도 극의 주제가 비운의 죽음을 표현하므로 메인테마인 C#단조의 주제음형이 극의 후반부인 13장 '순간8-Think'부터 17장 '순간12- Shock'까지 사도세자의 죽음 장면 즈음에서는 너무나 계속적으로 반복되어 듣기에 단조로움을 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바로 다음 마지막 장인 18장에서 성악과 피아노 반주로 이어지는 선율은 다른 단조 주제로 이동하여서 다행히도 계속 반복될 것 같던 운명의 순환고리를 끊어주어 후련하였다.

16장부터 18장까지의 마지막 장면들에는 가장 격정적이고 인상적인 장면들로 가득하다. 16장 '순간11-Death'에서는 무대 천장에 매달린 붉은 끈에 매달려 생의 끈과의 몸부림과 죽음을 표현하였다. 17장 '순간12-Shock'에서 사도가 연못으로 빠질 때 앞줄 관객석에는 정말로 충격적으로 물이 튄다. 이것으로 사도의 죽음과 헤경궁 홍씨와 정조의 충격을 표현하였다. 18장 '영혼의 소리V-영가'에서는 무엇보다도 연못에서 빠져나와 알몸으로 유유히 걸어나오는 사도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고 슬픈 장면이지만 아름답다.

18장'영혼의 소리 V -영가'.  죽은 영혼인 알몸의 사도는 유유히 걸어가고 영조와 혜경궁 홍씨, 정조는 슬픔을 아련히 표현하고 있다.
18장'영혼의 소리 V -영가'. 죽은 영혼인 알몸의 사도는 유유히 걸어가고 영조와 혜경궁 홍씨, 정조는 슬픔을 아련히 표현하고 있다. ⓒ 문성식 기자

무용극으로서는 긴 80분이라는 공연시간 때문에 후반부부터는 다소 반복성과 지루함이 무용동작이나 음악에서 보였다. 하지만 요사이 현대사회의 불안이나 성적 소재나 테크노 분의기로 주제화되는 무용계에서 다시 한번 우리의 전통을 상기시키고 품위 있는 공연을 보여준 것이 큰 존재감으로 작용하였다.

이 공연의 관객층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전 문화부 장관님이나 여러 저명한 안무가들, 유명 배우들이 이 사도세자 공연을 관람하러 왔다. 느린 호흡선과 힘 있는 동작선과 현장감 있는 다른 무용공연의 짧고 재빠른 진행과 동작, 많은 수의 무용수의 군무에 익숙하던 관객들에게는 다소 덜 익숙하거나 지루했겠지만, 우리의 전통과 기상을 힘주어 표현하고 알리고 싶어하는 무용계의 거성에게는 앞으로도 일관된 이야기가 무궁무진할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KNS서울뉴스(http://www.knsseoulnews.com)에도 함께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기사에 한하여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춤음악극 <사도>#국수호#국수호 디딤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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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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