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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원시장 입구에는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에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망원시장 입구에는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에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 김경훈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망원·월드컵 시장은 생긴 지 30년이 넘는 유서 깊은 시장이다. 역사만 오래된 것이 아니다. 재래시장으로는 보기 드물게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어 경쟁력있는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최근 망원·월드컵 시장 상인들에게 고민이 생겼다. 올해 8월 합정동에 홈플러스가 입점한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시장 부근에 이미 매출규모 전국 1위를 자랑하는 홈플러스 월드컵점과 기업형 슈퍼마켓(SSM)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있는데 또다시 합정역에 홈플러스가 입점한다는 말에 상인들은 분노했다.

이에 상인들은 홈플러스 입점을 막기 위해 나섰다. 오랫동안 반복된, 그러나 늘 재래시장이 지기만 했던 대형마트와의 싸움이 이곳에서도 시작된 것이다.

"홈플러스 들어온다고 해서 떡볶이 체인점 보류"

3일 오전 11시께 찾은 망원·월드컵 시장. 입구에 붙어 있는 "전통시장 망하게 하는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결사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현재 시장의 분위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두 달 전에 망원시장에 자리를 잡았다는 정성진(65)씨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홈플러스 들어오면 구청장부터 바로 안 볼 거야. 낙마 캠페인 벌이고, 상인들도 문 닫고 홈플러스 쳐들어가서 싸워야지."

"망원시장이 장사가 잘 된다는 말을 듣고 떡볶이 체인점을 차리러 왔다"는 정씨는 "홈플러스가 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보류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인테리어비가 5000만 원인데 홈플러스 생기고 가게 망하면 다 잃는 거 아니냐"며 "잘못하다가는 권리금도 못 찾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누구를 위해서 들어와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 대형마트가 지금 당장은 더 쌀지 몰라도 시장이 망하고 독점하게 되면 가격이 더 오를 것 아냐. 그러면 주민, 소비자도 피해를 보는 거야."

월드컵시장에서 4년째 속옷가게를 하고 있는 김아무개(50)씨도 "대기업은 가져가기만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소비자나 상인이나 상부상조하는 거예요. 지역경제 활성화되면 서로 이득 보잖아요. 그런데 대기업이 지역경제를 위해서 하는 게 뭐 있어요. 가져가기만 하지."

망원시장에서 15년째 이불가게를 하고 있는 양성식(48)씨는 홈플러스 월드컵점이 생길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월드컵 때는 그래도 허허벌판에 지어서 그렇게 타격이 크지는 않았죠. 그런데 합정동, 서교동은 주택 밀집지역이라 달라요. 여기 상인들도 많이 긴장하고 있어요. 가게 내놓는다는 분도 계시고."

20년째 이곳에서 지물포를 하고 있는 이철순(60)씨도 "홈플러스 월드컵점이랑 상권을 쌍끌이로 훑어가겠다는 거지, 바닥을 훑어서 종자를 말리겠다는 거야"라며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정성진 씨는 홈플러스가 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인테리어를 하지 않은 채 임시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정성진 씨는 홈플러스가 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인테리어를 하지 않은 채 임시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 김경훈

"홈플러스만을 위한 마포구... 관공서와 대기업의 상생"

상인들은 또다시 인근에 홈플러스가 들어온다는 것에 허탈해하고 있었다. 망원시장에서 장사를 한 지 5년 정도 됐다는 최태규(52)씨는 "홈플러스만을 위한 마포구"라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여기서 1~2㎞ 정도밖에 안 떨어진 곳에 홈플러스 월드컵점이 있어요. 망원역에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있고요. 아무리 외국계 자본이어도 도가 지나쳐요. 이게 대체 뭐하자는 건지."

홈플러스와 구청 사이에 뭔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곳에서 30년 정도 지물포를 하고 있는 최아무개(51)씨는 "하다못해 초등학생도 선거 나가면 공약을 내는 것처럼 정부나 홈플러스도 서로 내가 이만큼 해주면 너도 이만큼 해주는 그런 게 있지 않겠냐"라고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구청은 홈플러스 합정점이 들어선다는 사실을 상인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공덕시장이 그랬듯 이곳에서도 홈플러스가 들어온다는 풍문만 무성했고, 상인들이 구청에 어떻게 되고 있는지 문의한 후에야 홈플러스 입점 허가를 내줬다는 구청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상인들은 구청을 믿지 않았다.

'상생법'이 "관공서와 대기업의 상생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5년째 월드컵시장에서 반찬가게를 하고 있는 서경모(55)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생법에서 말하는 상생이라는 게 서민들을 위한 게 아니에요. 정치인, 대기업, 관공서 이런 사람들끼리 서로 상생하겠다는 거지."

이러한 격앙된 시장 분위기를 의식해서인지 마포구는 지난 2일 유통기업상생발전협의회를 열어 '홈플러스 합정점' 측에 입점철회 권고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고종순 망원시장상인회(상인회) 총무이사는 시장을 돌아다니며 상인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그는 "구청이 갑자기 (방향을) 선회했는데 비교적 희망적"이라고 했고, 양성식씨도 "입점철회 권고는 아주 획기적"이라고 말했다.

 월드컵시장 벽에 붙은 전단지.
월드컵시장 벽에 붙은 전단지. ⓒ 김경훈

입점 철회 권고안에 의견차... "철회할 것" vs. "포기할까?"

그러나 입점 철회 권고안으로 해결될 문제인지를 의심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망원시장에서 12년째 옷가게를 하고 있는 조증연(52)씨는 "당연히 구청에서 인허가 내기 전에 했어야 할 일 아니냐, 권고안도 하나의 변명일 수 있다"며 구청을 향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제까지 행동을 봤을 때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월드컵 시장에서 8년째 떡집을 하고 있는 박미정씨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처음부터 안 줬어야지. 내가 홈플러스 업주여도 허가받은 상황이면 권고안이고 뭐고 들어가지. 애초에 허가내준 정부 시책 자체가 잘못된 거야."

홍지광 망원동월드컵시장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협동조합) 이사장은 이런 지적을 수긍하면서도 "마포구를 대표하는 구청장이 보낸 것이기 때문에 홈플러스도 압박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가 "홈플러스가 권고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할 계획인가?"라고 묻자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러면 서울시 차원의 협의회에서 권고안을 보낼 거예요. 거기서도 입점 철회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요. 그것도 안 받아들이면 사업 조정 신청을 해야죠. 아직까지 대형마트를 사업 조정 신청으로 철회시킨 예는 없지만 일시 정지를 시킨 적은 있어요. 거기에 재연장까지 해서 입점을 몇 년 지연시키고, 그 사이에 여론을 만들어야죠."

그는 "홈플러스 입점을 막아낼 가능성이 90%는 된다"며 "대기업에 대한 국민 정서도 그렇고, 올해 총선과 대선이 있는데 정치인들도 이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고종순 상인회 총무이사도 "구청이 사업 조정 신청까지 한다고 했기 때문에 홈플러스 쪽에서도 쉽지 않다"며 입점 철회 가능성을 비교적 크게 봤다.

그러나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최아무개씨는 "막을 수 있을 거면 애초에 허가도 안 내줄 것"이라며 "주상복합도 올라가고 상권도 좋은데 홈플러스가 쉽게 포기할까"라고 회의적인 의견을 냈다.

박석병 협동조합 감사는 "입점을 한번 허락했으니 어렵다고 본다"며 "가능성은 반반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기자에게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보는지 되물었다. 기자가 "홈플러스가 쉽게 물러날 거였다면 애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거고, 구청도 믿을 수 없다"고 답했다. 이에 박 감사는 별다른 대꾸 없이 "그렇게 생각하냐?"고만 말했다.

박 감사와 한 인터뷰를 끝으로 망원·월드컵 시장 취재를 마쳤다. 어느새 주위는 어둑어둑해져 있었고, 시장에는 불빛이 하나둘 켜졌다.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이는 상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취재중 만났던 이철순씨의 말이 떠올랐다.

 "상인들이 노는 걸 못 봤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남들만큼 못 번다."

덧붙이는 글 | 김경훈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입니다.



#망원시장#월드컵시장#홈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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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2024.3 한겨레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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