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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재판이 막바지에 들어 섰다. 15일 311호 중법정에서 열린 제 17차 공판에서는 강경선 피고인에 대한 신문절차가 모두 끝나고 이제 마지막 곽 교육감에 대한 검찰신문에 들어갔다.

재판장(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 김형두 부장판사)은 다음 기일(23일)이든 다다음 기일(26일)이든 곽 교육감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까지 끝나면 바로 결심할 터이니 검찰 측에 미리 구형을 준비해 두라고 했다. 그리되면 다음 달 중에는 선고가 내려지게 될 터이다.

곽 교육감을 대신해서 박명기 교수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혐의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강경선 교수는 이날 신문 말미에, 이번 사건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준비해 왔는데 읽어도 되겠느냐고 재판장의 허락을 구했다. 그는 허락을 받고도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그의 뒷모습밖에 볼 수 없는 방청객들이 의아해 하고 있는데 재판장이 "물을 좀 갖다 드리라"고 한다. 방청객들은 비로소 그가 울먹이고 있는 것을 알았다. 법정이 숙연해졌다.

그는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고 했다. 하나는 박 교수에게 돈을 준 배경과 처음 박 교수에게 돈을 주자고 한 사람은 자기라는 사실이다.

사건이 터지자 걱정해주는 친구 변호사들이 찾아와서 "왜 우리와 상의하지 않았느냐?" "왜  돈을 주었느냐"고 나무랐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 죽든 말든 돈을 주면 안 되는 것이었다"는 법률가의 판단에 동의할 수 없었다고 했다. 만일 그렇다면 더 이상 헌법과 인권에 대해 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인권의 최정상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고, 생명권은 여기에 중핵적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기에 생명을 포기한 인권은 생각할 수 없다는 것.

율법보다 복음이 우선이라는 믿음

강 교수는 예수가 안식일에 손 마른자의 병을 고쳐주고 바리새인들로부터 안식을 거룩히 지키라는 율법을 어겼다는 힐책을 받았을 때 "너희들은 안식일에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건져내지 않느냐? 사람이 양보다 귀하다. 안식일의 주인은 사람이다"라고 말했다는 성경구절을 인용하기도 했다. 율법보다 복음이 더 중요하며, 오늘날 우리 법체계에 복음으로 다가와 있는 헌법정신을 볼 때 헌법이나 선거법이나 사람을 살리는 데 근본취지가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또한 돈을 주자고 한 사람은 자기임을 강조했다. '산에서 뛰어 내리고 싶을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박 교수에게 돈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판단에 곽 교육감이 응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전혀 선거에 대해 알지 못했고, 다만 곽 교육감이 선거과정에서 사전합의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리고 단일화가 필요는 하되, 조건을 단 단일화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만을 확신하고 박명기 교수를 만난 것임을 강조했다. 만나는 과정에서 박 교수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경제적 도움이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생겼고, 돈 얘기를 꺼내며 부끄러워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마음도 함께 안타까웠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박 교수는 피고인석에 앉아 연신 허공을 쳐다 보다 바닥을 쳐다 보다 했으며 몇몇 방청객들은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치기도 했다. 잠시 울먹이던 강 교수의 심경고백은 계속됐다.

그는 자신의 이런 긍휼(Mercy)의 마음 외에, 만일 박 교수가 유서를 써놓고 자살하거나 하면 어쩌나, 그로 인한 수습불가능의 사회적 파장이 일어나고 곽 교육감이 꿈꾸는 모든 교육개혁이 와해되는 상상도 해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돈을 제공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평소 자신의 말을 잘 들어 주었던 곽 교육감이 별 말없이 자신의 의견에 따라 조기지급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실제로 재판받고 있는 지금까지도 가까운 친구들은 곽 교육감에게 돈을 주라고 한 자신을  지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 강 교수는 사건의 진실을 보려면 '곽노현 교육감 사건'이라고 불리는 '곽노현 프레임'에만 매어있으면 안되고 또 다른 프레임으로도 바라봐 줄 것을 부탁하면서 말을 마쳤다.

'의인들의 어리석음' 혹은 '바보들의 선행' 프레임?

강 교수는 사실 이 사건 수사 초기, 검찰의 수사방향과 의도를 잘 알지도 못한 채 정확하지 않은 기억에 근거한 진술을 정제되지 않은 자신의 어법에 맞춰 장황하게 풀어 냄으로써 검찰과 법원이 사건의 실체를 일정부분 오해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의 법정신문의 많은 시간이 검찰에서의 진술을 교정하는 데 할애됐을 정도다.

예를 들어 박 교수는 강 교수와 두 번째 만난(2010년 11월17일)후부터는 전혀 돈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12월 22일에야 비로소 돈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도 강 교수 자신이었는데도 검찰에서는 "박 교수가 항상 돈 얘기를 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당시 늘 돈 문제가 자신의 뇌리를 짓눌렀던 기억 때문에 검찰에서 아무 생각없이(그것이 어떤 법률적 의미가 있는지 모른 채) 박 교수가 그때 돈요구를 했을 것이라는 추측만으로 그렇게 진술했다는 식이다.

12월 4일 인덕원에서 여럿이 만나 술자리를 했을 때 박 교수가 "합의이행조로 7억 원을 달라"고 했다고 검찰에서 한 진술도 전혀 사실이 아닌데 "당시에는 조서를 여러 번 고쳐 달래기가 미안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박 교수가 "2억 원으로는 부족하다"고 한 것도 12월 22일 한 번이었는데, 자신의 머릿속에는 그 액수가 늘 박혀 있어서 "'계속' 2억 원이 부족하다고 하더라고요"라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항상' '계속' '매우' 등의 단어를 실제 뜻과 달리 구사하는 것이 자신의 어법인데 거기서 오해가 비롯된 것이다.

그는 "모른다 해라, 묵비권 행사해라"는 충고를 들었지만 남이 아니라 자신과 관련된 일에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은 '정직과 진실'의 가치에 반하는 것이어서 묻지도 않은 사실을 적극적으로 얘기하다 보니 힘들게 됐다며, 정확하지는 않은 상태에서 열심히 개요를 설명했는데 검사가 직업적으로 조서를 꾸며 "속상하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강 교수의 심경고백이 끝난 뒤 배석판사가 물었다. 거의 말없이 법정을 지켜 보던 배석판사가 질문한다는 것은 정말 궁금한 부분, 핵심적인 부분에 관한 경우가 많다.

배석판사 : "곽 교육감한테 12월 4일 전에는 돈 줘야 한다는 얘긴 안 했고 돈이 필요한 사람이라고만 말했다는 것인데 이보훈하고 공소시효(12월 2일) 얘기한 것은 12월 2일 이전 아닌가요. 곽 교육감이 돈 주겠다는 약속도 하기 전에 이보훈하고 공소시효 문제를 컨설팅한 셈인데."

강 교수 : "(이보훈과) 돈을 주긴 줘야 한다고 했지만 어떻게 줘야겠느냐를 의논하고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배석판사 : "금액을 정하기 전에 돈을 줘야겠다는 의사결정은 누가 언제 했나요."

강 교수 : "제가 1차(11월 11일) 2차(17일) 두 번 만난 뒤 혼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곽 교육감은 언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릅니다. 이보훈이 법률지식이 많기 때문에 그와 의논했습니다."

주심판사 : "곽 교육감과는 상의없이 한 거냐를 묻는 겁니다."

강 교수 : "그렇습니다. 제가 문제가 많습니다."

배석판사 : "곽 교육감이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강 피고인 혼자 (돈을 줘야겠다고) 생각한 것인데 만일 곽 교육감이 끝내 안 된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요."

강 교수 : "실망했겠죠. 하지만 곽 교육감은 내 뜻대로 했을 겁니다. 만일 안 됐다면 방법을 찾았겠죠. 내가 점점 더 깊이 개입하고. 내 생각이지만 곽 교육감이 묵묵부답이었지만 속으로는 (경제적 지원을) 생각하고 있었을 겁니다."

다음 날인 16일에는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항소심 결심공판이 403호 법정에서 열렸다. 이 공판에서 검사는 한 총리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린 1심 재판장을 사정없이 공격했다. 검찰은 '항소이유와 검사의 최종의견'을 통해, 뇌물사건은 두 사람 사이에 친분이 있는가, 동기가 있는가, 과정이 자연스러운가, 누구 말이 사실과 일치하나 등을 따져야 하는데 1심 재판장은 전혀 그 어느 것도 판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전 총리 무죄판결로 검찰 공격받은 재판장

또한 "1심 재판장은 공정하고 중립적인 심판역할을 포기했으며, (돈을 줬다는) 곽영욱의 자유로운 증언을 방해했을 뿐 아니라, 검사의 증인신문에 수시로 개입했고, 곽영욱에게는 '위증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며 위압적으로 신문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피고측 증인과 변명의 합리성과 신빙성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고 유리하게만 해석"함으로써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주장했다.

검찰로부터 이렇게 혹독한 비판을 받은 '편파적인 판사'가 바로 곽 교육감 재판을 맡고 있는 김형두 부장판사다. 그런데 검찰은 한 총리 재판 중 재판장의 '편파성'에 대해 항의는커녕 하소연 한번 한 적이 없다.


#곽노현#강경선#교육감#선거법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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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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