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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 신호등 찾아."

눈에 안대를 한 이광훈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뭉치는 재빨리 신호등으로 향했습니다. 그때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이 우르르 건널목을 건넜습니다. 뭉치 곁에 있던 사람들이 건널목을 향해 뛰기 시작했습니다. 뭉치도 건널목을 향해 달음질을 쳤습니다.

"어? 뭉치 왜 갑자기 빨리 뛰는 거야?"

뭉치와 연결된 하네스(강아지 가슴줄)를 잡고 있던 이광훈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뭉치. 그렇게 뛰지 마라니까!"

뭉치와 이광훈 선생님 뒤에서 둘을 지켜보시던 강성호 선생님이 큰소리로 뭉치를 야단치셨습니다.

'알아요. 나도 아는데요.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잖아요. 모든 사람이 바쁘니까 뛰어서 건널목을 건너잖아요. 그래서 나도 뛴 건데….'

뭉치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강성호 선생님은 뭉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훈련 때면 어김없이 뭉치를 야단치십니다.

"뭉치야. 오늘은 그만 할까?"

이광훈 선생님이 안대를 풀며 말씀하셨습니다. 뭉치는 이광훈 선생님이 아주 좋습니다. 선생님은 뭉치를 데리고 자동차로 향했습니다. 안내견을 태울 수 있도록 특별히 개조된 자동차입니다. 그렇습니다. 뭉치는 지금 안내견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벌써 여러 달 이렇게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곧 훈련이 끝나면 뭉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일을 하는 개. 바로 안내견이 될 것입니다.

"이 선생. 뭉치는 안내견으론 적합하지 않겠지? 너무 성격이 급하단 말이야."
"글쎄요. 우리 뭉치 머리도 좋고 길이나 목적물을 찾는 능력도 뛰어난데 조금 덜렁거리는 게 문제긴 하죠. 이제 곧 최종 평가이니 두고 봐야겠지요."
"내가 안내견 훈련사 10년인데 뭉치 같은 녀석은 처음 보는 걸."

뭉치를 태운 자동차는 안내견센터로 돌아왔습니다. 안내견센터에 도착하고 자동차의 문이 열리자마자 뭉치는 쏜살같이 밖으로 달려나갔습니다. 저 멀리 흰지팡이를 또닥거리며 오는 선생님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안내견센터에 근무하시는 한성수 선생님입니다.

'어? 오늘은 왜 선생님 곁에 영웅이 형이 안 보이지? 잘 됐다. 오늘은 영웅이 형 대신 내가 한성수 선생님 안내해야지!'라고 뭉치는 생각하며 곧장 선생님께로 달려갔습니다. 영웅이 형은 선생님의 안내견입니다. 늘 선생님 곁에서 함께하는 영웅이 형이 오늘은 왠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흰지팡이로 바닥을 토닥거리며 조심스럽게 안내견센터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바로 앞에 어제까지는 그 자리에 없었던 자전거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뭉치는 선생님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재빨리 달려간 뭉치는 그대로 자전거를 몸으로 받았습니다. 우당탕탕~ 자전거가 옆으로 넘어졌습니다. 그 바람에 놀란 한성수 선생님이  "어이쿠 깜짝이야!" 하며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이광훈 선생님이 급하게 달려오셨습니다.

"한 선생님 괜찮으세요?"
"아. 이 선생님이시군요. 그런데 지금 무슨 일이죠? 뭔가 넘어진 것 같은데…. "
"뭉치가 달려와서 선생님 앞에 있던 자전거를 몸으로 받았어요. 아마 녀석은 자전거가 선생님께 위험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하하하, 오늘도 뭉치가 변함없이 사고를 치는군요."

한성수 선생님은 엉덩방아를 찧고도 사람 좋게 웃었습니다. 뭉치는 선생님께 매우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넘어진 선생님의 손을 핥으며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하하, 뭉치 고맙다. 그런데 녀석아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돼. 괜스레 자전거만 고장이 나잖아."

'왜 난 제대로 되는 일이 없지. 선생님을 구하려고 했는데…. 쩝.' 뭉치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꼬리만 흔들었습니다.

"호기심 많고 덜렁거리는 뭉치는 안내견에 맞지 않아요"

뭉치가 받고 있는 안내견 훈련은 매우 까다롭습니다. 아무나 안내견이 될 수도 없습니다. 안내견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적합한 품성을 지닌 엄마, 아빠에게서 태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1년 동안 안내견 공부를 위한 사회 적응을 합니다. 이 기간을 퍼피워킹이라고 합니다. 주로 자원봉사자들이 퍼피워킹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퍼피워킹이 끝나면 본격적인 훈련을 받게 됩니다. 뭉치는 바로 이런 훈련 과정에 있습니다. 훈련도 만만치 않습니다. 식사나 배변 등은 기본 훈련에 속합니다. 응가나 쉬를 아무 곳에서나 하지 않도록 하고, 식사도 아무 음식이나 먹지 않고 정해진 사료만 먹도록 훈련받습니다. 이런 기본 훈련이 끝나면 안내견이 해야 할 일. 그러니까 다양한 도로 환경에서 안내하는 훈련이나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훈련, 계단이나 문 등 주인이 지적하는 목적물을 찾는 훈련, 장애물이나 위험 상황을 인지하여 주인의 명령과는 관계 없이 안전한 방향으로 행동하게 하는 불복종 훈련 등도 모두 거쳐야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훈련이 끝나면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 마리의 진정한 안내견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뭉치는 이제 곧 모든 훈련을 마치게 됩니다. 뭉치는 '자신의 주인은 누굴까?' 생각하며 까만 눈망울을 반짝거립니다.

드디어 반년이 넘는 기나긴 훈련이 모두 끝났습니다. 뭉치를 비롯한 모두 6마리가 이번 훈련 과정을 마쳤습니다. 모든 훈련사 선생님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뭉치와 같이 훈련을 마친 번개, 설악, 짱구, 아롱이, 모란이도 함께 참석했습니다.

"이번 훈련 과정을 거친 6마리 중 뭉치에 관해 여러분의 의견이 필요할 듯 합니다. 이미 번개와 설악이는 안내견 부적합 판정을 받아 어르신도우미견과 치료도우미견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자, 뭉치에 관한 여러분의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훈련사 팀장인 황윤덕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뭉치는 안내견보단 설악이처럼 치료도우미견이나 구조견이 더욱 적합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냄새 반응도 예민하고 인내심도 대단해서 구조견으로 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조건들도 모두 갖추었습니다. 무엇보다 안내견으로는 성격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호기심이 많고 너무 덜렁거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강성호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뭉치는 그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한 번도 자기가 안내견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네. 뭉치의 훈련 성적은 매우 우수합니다. 목적물을 찾는 훈련, 기본 훈련, 도로 보행 훈련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한 훈련 성과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덜렁거리는 성격과 호기심이 많은 탓에 종종 복종 훈련과 불복종 훈련에서 엉뚱한 일을 한다는 것이죠. 이런 면은 안내견으론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강성호 선생님 의견대로 구조견이 뭉치의 성격에 더욱 맞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김선우 선생님도 강성호 선생님의 말씀을 거들었습니다. 뭉치는 초조해졌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을 도울 사람이 없을까?'하고 두리번거렸습니다. 뭉치의 오른편 앞쪽에 이광훈 선생님이 앉아 있었습니다. 뭉치는 살짝 다가가 이광훈 선생님의 발을 건드렸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뭉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이광훈 선생님마저 뭉치를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서류를 앞에 두고 열심히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여기 뭉치의 훈련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입니다. 복종 훈련에서 모두 9차례, 불복종 훈련에서 3차례. 지시 내용과 다른 행동을 했습니다. 아무리 기본 훈련과 도로 보행 훈련의 성과가 좋다고 해도 복종 훈련과 불복종 훈련의 결과가 이렇다면 안내견으론 곤란합니다. 특히 불복종 훈련은 시각장애인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시각장애인의 명령을 거부하는 훈련입니다. 주인의 명령과 달리 안전한 방향으로 행동함으로써 시각장애인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훈련 과정입니다."

강성호 선생님은 뭉치가 안내견이 될 수 없다고 쐐기를 박듯이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선생님들도 모두 뭉치가 안내견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뭉치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곁에서 설악이가 뭉치에게 말했습니다.

'뭉치야. 잘하면 이제 우리는 헤어지지 않아도 되겠다. 너도 치료도우미견 훈련을 받게 되면 같이 지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그러나 뭉치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보았던 형이나 누나들처럼 멋진 안내견이 되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훈련을 받으며 시각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조금이나마 그런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한두 달 더 지켜보기로 한 선생님들... 뭉치의 운명은?

"저는 의견이 다릅니다. 뭉치야말로 가장 안내견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뭉치의 담당 훈련사로서 누구보다 뭉치를 잘 알고 있습니다. 뭉치는 시각장애인의 안내견으로 매우 적합한 품성과 자질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무엇보다 뭉치는 시각장애인의 위험이나 요구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강성호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뭉치는 매우 덜렁거리는 성격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안내견으로 부적합하다는 것에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시각장애인 중에서도 마라톤 같은 활동적인 운동을 즐기는 사람도 매우 많습니다. 오히려 뭉치의 덜렁거리고 활동적인 성격이 그런 이용자에겐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또한, 강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뭉치의 훈련 성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강 선생님 말씀대로 뭉치는 복종 훈련과 불복종 훈련에서 지시와 다른 행동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원인을 파악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행동에 대해 뭉치를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한 가지 예로, 불복종 훈련에서 다른 행동을 한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뭉치가 불복종 훈련을 어긴 사례로 건널목에서 빨간 신호 당시 훈련자의 진행 명령을 어기고 정지해야 함에도 한 걸음 움직인 행동이 지적된 사례입니다. 당시 뭉치가 어떤 명령에도 상관 없이 멈춰야 하는 상황인 빨간 신호에서 훈련자의 '앞으로!'라는 명령에 한 걸음 움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는 '앞으로'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라 당시 뒤에서 달려오던 자전거가 훈련자와 충돌하는 것을 피하려고 취한 행동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당시 뭉치의 하네스는 강성호 선생님이 잡고 계셨고 안대를 하신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강 선생님은 뭉치가 훈련 명령을 어긴 행동에 대해 파악은 하고 계셨지만, 자전거 등의 주위 환경은 제가 체크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뭉치가 훈련 과정에서 명령과 달리 취했던 여러 행동은 모두 이처럼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위험을 인지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한 행동들이 대부분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뭉치는 시각장애인의 요구를 파악하고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이 다른 어떤 훈련견보다 우수하다고 생각됩니다."

이광훈 선생님이었습니다. 이 선생님은 그러면서 다른 선생님들에게 서류 뭉치를 건네주었습니다.

"맞아요. 저도 뭉치의 훈련을 위해 안내를 몇 번 받아 보았는데 아주 편하다는 느낌이 들곤 했어요. 다른 안내견들도 물론 장애물이나 위험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은 모두 같지만 뭉치와 함께 걸으면 왠지 아주 편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뭉치가 장애물만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고 제 마음을 미리 읽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것처럼 말이죠."

한성수 선생님도 이광훈 선생님의 말을 거들었습니다. 한 선생님의 말에 다른 선생님들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뭉치의 덜렁거리고 급한 행동은 안내견으론 적합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신호등을 보고 뛴다든가 하는 행동은 시각장애인에게 매우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강성호 선생님은 끝까지 뭉치가 안내견이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일단 뭉치를 이번 훈련 과정에서 졸업시키는 것이 아니고 보류 상태로 두고 한두 달 행동을 고치는 훈련을 하도록 말이죠. 그 결과를 보고 안내견으로 일할 수 있을지 다른 도우미견으로 일을 할지 결정하도록 말입니다."

황윤덕 선생님께서 말씀하시자 모든 선생님이 동의하였습니다. 그동안 함께 고생했던 번개와 설악이와는 이제 헤어져야 했습니다. 뭉치는 일단 다른 활동견으로 보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태그:#안내견, #안내견 훈련, #시각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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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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