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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주신 생필품들 고맙습니다.
▲ 어머니가 주신 생필품들 고맙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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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기야, 줄 게 있으니 왔다 가거라."

지난 11월 13일 일요일 오후 4시경 저는 울산 동구에서 남구에 살고 계시는 어머니 집에 갔습니다. 어머니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이것저것을 큰 장바구니에다 꾹꾹 싸넣었습니다. 큰아들 좋아한다며 매일 일부러 누룽지를 눌려 모아둔 것도 주셨고, 무채 김치도 만들어놓았다 주셨습니다. 휴지 한 뭉치, 계란 한 판도 주셨습니다. 동네 슈퍼에서 5000원 정도 구입하면 쿠폰 한 장을 줍다고 합니다. 그 쿠폰을 20장 모으면 계란 한 판 준다네요. 그렇게 구해놓은 것이라 합니다.

"뭐가 밉노, 그래도 아들인데. 난 하나도 안섭섭하다. 그저 니들만 잘살면 된다."

어머니에게 "호강도 못 시켜드리는 장남이 밉지도 않으시냐" 물었더니 그렇게 대답하네요.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선 속도 없으신가 봅니다. 겉으로야 그냥 태연한 척했지만 잘해드리지 못하는 자식 심정이 정말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일요일 그날 저는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같이 먹고 양손에 생필품을 무겁게 들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요즘 가정생활이 힘들어 고민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하루하루 살고 있는 중입니다.

자식 잘되라고 절집에 25만 원이나 내다니... 

"니는 엄마 생일도 모르나. 엄마 생일인데 자식이 아무도 전화 한 통 안 하니 참 섭섭하더라."

아차 싶었습니다. 7일은 어머니 생신이었는데, 몰랐습니다. 9일 수요일 날 일하고 있는데 어머니에게 전화가 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미안했지만 바쁘다며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울산에서 버스 운전하는 동생이 언제 시간 나는지 물길래 토요일 날 어머니랑 만나 점심이나 먹자 약속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 같이 가고 싶었으나 말 못할 사정 때문에 딸만 데리고 갔습니다. 동생도 혼자 나왔습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오리불고기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이거 집에 갔다가 잘 보관해라. 다 너희들을 위해서다."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또 어머니가 무슨 일 저지르신 거 아닌가 하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큰 서류봉투 속에 있는 것을 꺼내 보고는 어머니께 마구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내민 것은 울산서 2시간이나 가야 있다는 절에서 발행한 문서였습니다. 내용을 보니 절에 큰 범종을 제작하는 데 돈을 냈다는 증표 같은 것이었습니다. 얼마 냈냐고 물어보니 25만 원 냈다고 했습니다. 울산에서 버스 대절해 사람들이 많이 갔다고 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그 절간에서 조직적으로 사람을 모은 거 같았습니다.

그 종에 새겨넣으면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날 것이고 복 받게 될 것이라 했다 합니다. 이미 아버지 이름도 그 절에 맡겼으니 제사 안 지내도 된다 하셨고, 어머니도 이름 올려두었으니 앞으로 걱정할 것 없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왜 그리 쓸데없는 짓거리 해요? 차라리 그 돈으로 어머니 보약이나 해드세요. 석가모니가 언제 절간에다 종 만들어 치라 했나요?"

저는 화가 나서 어머니에게 서운한 말을 많이 했습니다. 어머니는 "다 자식 잘되라고 그랬다"고만 하십니다.

어머니가 건넨 문서 절간은 돈벌고 어머니는 돈 버리고...
▲ 어머니가 건넨 문서 절간은 돈벌고 어머니는 돈 버리고...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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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이 다 돼도 알 수 없는 어머니의 마음

제가 어려서부터 어머니는 점쟁이나 무당집을 자주 찾곤 했습니다. 워낙 힘들게 살아오셔 그런지 아직도 그런 곳에 의지하고 계십니다. 자식들이라도 잘 풀리라며 굿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하면 앞날이 잘 풀리고 좋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 나이 오십이 다 되어 생각해보면 '쓸데없는 짓거리' 했다는 생각만 듭니다.

살면서 터득한 것은 외우는 능력이 탁월해야 교사나 공무원 같은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있고 기술자라도 되려면 손재주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처럼 외우는 기능도 안 되고 손재주도 없으면 하고한 날 허드렛일만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 백 날 점치고 굿해봐야 '그 인생이 그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좋아진 것도 나빠진 것도 없이 그냥 내 인생을 살고 있을 뿐입니다. 점치고 굿해봐야 헛돈만 날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더 화가 났습니다.

"그 절간만 부자 만들어주는 짓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글도 모르는 순진한 우리 어머니를 또 누가 꼬드겼을까요?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렇게 순진하게 사시니 맨날 사기꾼에게 당하는 것이겠지요.

어머니와 대판 싸우고 헤어졌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화가 많이 나셔서 당분간 연락도 않으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헌데, 어머니는 다음 날 오후에 전화를 하셨습니다. 불러 갔더니 양손 무겁게 생필품을 싸주시고 저녁도 차려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정말이지 자식 앞에서 속이 없으신가 봅니다. 자식들보면 그저 측은하고 안쓰럽기만 한가 봅니다.

제 나이 오십이 다 되어 갑니다. 저도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고 있지만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장남으로서 늙으신 어머니께 어떻게 해드려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남편이 되고, 좋은 아버지가 되고, 좋은 아들이 되는지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가 이제 일흔이 다 되어 가지요. 저도 그 나이 정도 되면 그 모든 도리를 알게 될까요?


#울산#동구#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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