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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 241GP에서 사망한채 발견 된 고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씨가 2009년 10월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커피숍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사건 당시 발견 된 김 중위의 현장사진을 보이고 있다.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 241GP에서 사망한채 발견 된 고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씨가 2009년 10월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커피숍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사건 당시 발견 된 김 중위의 현장사진을 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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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2월 24일 낮,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지역에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241 GP(관측소) 3번 벙커에서 소대장 김훈 중위가 머리에 총을 맞은 채 죽어있는 것을 소대원이 발견한다.

불과 2시간 후 군 당국은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고 발표했고, 이 사건은 부대에 적응하지 못한 한 나약한 장교의 자살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유족들과 천주교 인권위원회, 한 언론사의 집요한 추적 끝에 드러난 진실은 국방부의 발표와는 사뭇 달랐다.

특히 김훈 중위 소속 부소대장이 수시로 북한군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여론이 비등하자 창군 이후 최초로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아래 특조단)이 구성돼 재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특조단이 내린 최종결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김 중위의 사인은 자살임이 틀림없다는 것. 유족 측이 제기했던 화약흔, 혈흔, 권총 지문, 현장에 떨어져 있던 철모의 존재 등이 타살의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음에도 국방부는 이를 애써 외면하거나 거짓말로 일관했다.

국방부의 자살 결론에 대해 국회는 이듬해 국방위원회 산하에 '김훈 중위 사건 진상규명소위원회'를 설치, 조사활동을 벌인 후 군 당국의 부실 수사에 대한 의문 15가지를 제기하며 '김훈 중위는 타살 당했다'는 요지의 활동 보고서를 펴냈다.

대법원은 2006년 12월, '군의 초동수사가 잘못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며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을 3년여에 걸쳐 조사했던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군의문사위)도 '군 수사기관의 초동 부실수사로 인해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기 어렵게 되었다'며 김훈 중위 사인에 대해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했다.

국방부, 3개 국가기관의 판단에도 '모르쇠'

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이 책은 대한민국 군 의문사의 상징이자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모티브가 되었던, 판문점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의 진실 공방을 다루고 있다.
▲ 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이 책은 대한민국 군 의문사의 상징이자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모티브가 되었던, 판문점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의 진실 공방을 다루고 있다.
ⓒ 책으로여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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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와 대법원, 군의문사위 등 3개 국가기관은 김 중위의 사인이 자살이라는 국방부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국방부가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가운데, 김 중위의 유골은 13년째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한 군부대 영현실 창고 안에서 먼지를 맞고 있다. 고 김훈 중위 사건은 한 젊은 장교의 죽음을 명확한 증거도 없이 자살로 몰고 갔던 국가권력의 인권 유린사례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인권상황을 가름하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한 권의 책이 고 김훈 중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나직하지만 힘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책으로 여는 세상)는 지난 13년 동안 김 중위의 사인을 놓고 군 당국과 유족 측이 벌였던 진실공방을 담고 있다.

저자는 김훈 중위 사건 당시 천주교인원위원회 간사로 일하며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는데 큰 역할을 했던 고상만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기도 한 고씨는 '한 인권운동가가 13년 동안 추적한 판문점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의 숨겨진 진실'이란 이 책의 부제처럼 마치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어 가듯 그 날 판문점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고통스럽지만 생생하게 복원하고 있다.

다음은 고씨와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현장에서 발견된 철모가 도대체 누구의 것이냐"

 고 김훈 중위.
 고 김훈 중위.
ⓒ 김덕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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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인권위원회를 비롯해 인권연대, 반부패국민연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책을 쓰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사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함께 학생운동을 하다가 지난 90년에 의문사 당한 학교 선배의 죽음에 의혹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김 중위 사건은 사건 두 달 뒤 고 김 중위의 동생이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실을 찾아오시면서 처음 접하게 됐다. 그런데 조사를 해보니 정말 유족 측의 말대로 자살로 보기 힘든 여러 의문점들이 발견되었다.

그 의혹들에 대해서 우리는 최대한 노력했다. 예를 들어 김 중위의 손에서 권총의 뇌관화약 성분이 나오지 않은 점, 권총에 지문이 나오지 않은 점, 접사∙밀착사 여부 등을 들어 (자살이 아니란 증거를)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방부는 미국의 저명한 총기전문가이자 뉴욕주 법의학자 노여수 박사가 지적한 것처럼 '11개의 의문점에 대해 소수의 예외적 가능성들만 모아 놓고 자살했다고 결론 내려 버렸다'.

사실 국민들 입장에선 김 중위 사건의 많은 의혹들을 다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난 이 책에서 다른 의혹들은 차치하고 단 한 가지의 의혹만을 제기하려고 한다. 김훈 중위가 쓰러져 있던 현장에서 발견된 철모가 도대체 누구의 것이냐 하는 점이다."

- 현장에서 발견된 철모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달라.
"국방부가 나중에 국회에 제출한 200장의 사진 중에는 김훈 중위가 자살하는데 사용했다는 권총을 반쯤 덮고 있는 철모가 찍혀있는 8장의 사진이 있었다. 총 위에 철모가 있다는 것은 김 중위 사망 후 땅에 떨어진 권총 위에 누군가 철모를 놓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정황상 이는 타살자의 철모라는 가정이 가능하다. 또 하나 김 중위 머리의 피하조직에서는 둔탁한 물건으로 심하게 얻어맞았을 때 생기는 혈종이 발견됐다. 노여수 박사는 이런 종류의 상처는 뇌진탕과 함께 즉시 의식을 잃게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노 박사는 '현장에서 철모가 발견되었다면 그것은 살인자의 철모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그런데도 처음에 철모의 존재에 대해 숨겨왔던 국방부는 내피가 찢어지고, 턱 끈이 말려 있는데다가 녹색 위장 크림이 잔뜩 묻어 있던 이 철모가 현장에 출동했던 미군 군의관 아레스 대위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이 있던 한국군 위생병도 아리스 대위의 철모가 아니라고 했고 김훈 중위 소대원도 '이 철모는 우리 소대 철모'라고 얘기했다. 게다가 사진 속 철모에 있는 야광띠에는 한글로 쓴 이름 석 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당시 철모에 대한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국방부와 국회, 인권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이 사진의 원판을 크게 확대해서 야광띠에 있는 이름을 확인해보자고 했는데, 국장장관은 그렇게 하자고 해놓고 지금까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나는 이 철모의 존재가 은폐된 진실을 밝힐 수 있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 처음 <시사저널>을 제외하고는 이 사건에 대해 무관심하던 언론들이 나중에 국회에서 김훈 중위 소대의 부소대장이 북한군과 불법적으로 접촉한 사실, 각종 군기문란 사례들이 드러나면서 기사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이 사건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것에 대해 언론의 문제점도 지적했는데.
"당시 국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김 중위 소대의 한 병사가 부소대장이 북한군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증언하면서 김훈 중위 사건이 재조명 받게 되었는데, 부소대장을 살인자로 지목한 언론의 보도태도는 정말 황당했다. 조그만 천주교인권위 사무실에 기자들이 각 사별로 오전반, 오후반 나눠 상주하다시피 했다.

책상위에 있는 서류들을 허락도 받지 않고 집어가거나 책상 서랍을 뒤지기도 해서 기자들을 다 내쫓은 적도 있다. 내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내 이름으로 보도가 나가고, 언론이 부정확한 사실들이 마구 쏟아냈다. 언론이 처음에는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쓰더니, 나중에는 꼭 써줘야 할 이야기도 안 쓰더라. 참 기가 막혔다."

"무엇보다 군의문사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고상만 시민기자.
 고상만 시민기자.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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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건이 일어난 지 13년이 지났다. 이 책을 쓰면서 느낀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이 책을 쓰면서 우리가 그동안 제기했던 김훈 중위 사건의 의혹들이 모두 다 진실에 부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나도 깜짝 놀랐다. 재판기록과 군 의문사위 조사기록들을 살펴보면 그동안 국방부가 애써 무시하거나 외면해 왔던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났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고통도 느끼게 되었다. 자료를 정리하다 고 김 중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람들에게 아들의 부검 사진을 놓고 설명하던 모습이 찍힌 사진을 발견하곤 가슴이 턱 막혔다.

예전 젊었을 때는 업무로만 이 사건을 보았고, 또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이 사건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자식의 갈기갈기 찢긴 부검 모습을 마주하면서 느꼈을 김 중위 부모님의 고통과 상처가 느껴졌다. 이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야만적인 일인가."

- 김훈 중위 사건은 그동안 어둠 속에 묻혀있던 군 의문사 사건들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공론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수십 년 동안 군의문사 사건에 대해서 국방부의 대응은 국민들에게 전혀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 우리가 제기했던 합리적인 의혹에 대해 성실하게 소명하고 납득시켜야 하는 것이 국가기관으로서 최소한의 의무인데 그런 것을 회피한다. 군 의문사 문제에 대해 무응답, 무대책으로 일관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사그라지고 기억하지 못하게 될 때까지 시간을 끌 뿐이다. 이러다보니 국민들은 군에서 무슨 사건이 나면 군 당국이 또 무엇을 감추려고 한다고 의심을 한다. 다 군 당국의 자업자득이다.

군 당국은 군 의문사에 대한 새로운 관행과 관례가 생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가지고 있다. 김훈 중위 사건도 영화 '도가니'와 같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 왜 국방부에서 진실을 밝히지 않으려고 했는지도 드러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은 모든 군 의문사 문제를 풀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씨가 고 김 중위의 생전사진을 보이고 있다.
 고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씨가 고 김 중위의 생전사진을 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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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에서 발생한 사망사건 조사를 전담하는 상설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데.

"나는 군에서 일어난 사망 사건에 대해선 국가가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국방을 국민의 4대 의무로 규정해놓고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복무하다 죽음을 당했는데, 그 죽음의 진실에 대해 유족들은 알아야 할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는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고 앞으로도 군에서는 사망사고가 일어날 텐데, 국가가 그것을 규명할 책임을 지고 있다는 점에서 군내 사망사건을 조사할 기구가 상설화되어야 한다. 군 의문사위가 3년간 한시적으로 활동을 하고 해소되었는데, 진상규명 불능으로 처리되어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사건이 아직도 많이 있다.

무엇보다 군의문사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김 중위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나서 한 어머니가 날 찾아오셨다. 그 어머니 말씀이 걸레질을 하고 있는데 텔레비전 뉴스에서 김 중위 사건이 나오길래 '참 안됐다. 저 엄마는 너무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하는데 딱 전화벨이 울리더라는 거다. 받아보니 군에 간 아들이 죽었다는 전화였다. 정말 기가 막힌 사연들이 많았다. 군에 간 아들이 강원도 오지에서 죽었는데, 부대에서 차를 내주지 않아서 그 아들의 시신을 관광버스에 싣고 나온 한 어머니의 사연을 듣곤 강원도 그 첩첩산중에서 그 어머니가 흘렸을 눈물이 너무나 아프게 느껴졌다. 국민의 자식들을 불러다 국방의 의무를 지어주고는 사망 사고가 나면 모든 고통과 상처를 고스란히 유족의 몫으로 남겨놓는 국방부의 태도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김훈 중위#고상만#J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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