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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시계 어느 금연사이트를 통해 본 나의 금연시계. 금연 670일째인데 102일의 수명이 연장되었고, 160여만원을 절약했다고 알려준다.
▲ 금연시계 어느 금연사이트를 통해 본 나의 금연시계. 금연 670일째인데 102일의 수명이 연장되었고, 160여만원을 절약했다고 알려준다.
ⓒ 금연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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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수명이 102일 연장되었습니다.'

정말일까? 믿거나 말거나. 어쨌거나 금연 덕분에 102일의 생명연장과 167만 원의 금전절약을 이뤘다고, 내가 가입한 금연사이트는 친절하게 알려준다. 지난 11월 1일을 기준으로 담배와 작별한지 꼭 670일이 되었다. 2010년 1월 1일부터 시작된 나의 담배탈출기는 과연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릴 수 있을까.

금연 670일...수명이 100일 연장되었다고?

나이 40에, 20년간 피워온 담배를 겨우 2년 정도 피우지 않았다고 '금연' 운운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안다. 주변에서 몇 년 동안 굳은 의지로 끊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담배를 무는 이들을 수없이 보지 않았던가.

술김에 못 이기는 척 한대씩 피우다가, 부부싸움을 했다거나, 직장에서 상사나 고객이 열받게 했다거나, 혹은 글이 잘 안 써진다는 이유 따위로 슬그머니 흡연자의 대열에 합류하던 모습들.

금연 실패를 비웃을 의도는 추호도 없다. 나 역시 그런 식으로 수차례 실패해왔고 더구나 인생에서 금연은 각자의 선택일 뿐이니까. 다만 담배를 끊는 게 얼마나 힘든지 금연을 한 번쯤이라도 시도해본 흡연자들은 뼈저리게 느낄 터이다. 

20대부터 수차례 금연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주 오래된 애인과 작별하는 듯한 서글픈 감정이 들어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몇 달 동안 잘 이겨낸 적도 있었으나 이러저러한 핑계를 들어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

"아빠, 집에선 담배 좀 안 피우면 안돼?"
"당신 또 피워? 어이구, 그럼 그렇지. 또다시 금연하네 어쩌네 호들갑 떨기만 해봐!"

아들이 타박하고 아내가 비웃어도 소용없었다. 20년지기 담배와 헤어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잊지 못할 첫사랑과 깨끗이 헤어지라면 차라리 그게 더 쉬울 듯 싶었다.     

사실 20년간 흡연이 남긴 흔적은 결코 적지 않다.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화장실에서, 밥을 먹고 나서, 글을 쓸 때, 일이 풀리지 않을 때, 화가 났을 때, 기쁘거나 슬플 때, 술잔을 기울이면서, 잠자리 들기 전까지 매순간 담배를 찾았으니.

금연이 어려운 데는 동기부족도 있었다. 이를테면 적당히 조절하면 되지, 굳이 힘들게 안 피울 이유가 있느냐, 남들보다 며칠 더 살겠다고 까다롭게 굴지말고 남들처럼 피우면서 살자, 인생이 다 그런 거 아니겠느냐, 뭐 이런 식이었다. 주위에서 흡연을 정당화하는 '레퍼토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담배를 안 피운다고 오래 산다는 보장도 없다."
"억지로 금연하느라고 스트레스 받느니 차라리 기분좋게 적당히 피워라."
"이렇게 복잡하고 험한 세상 담배라도 없으면 어떻게 살아가냐."

20년지기 담배와 작별하기로 결심한 까닭은...

 담배를 피고 있는 사람의 손.
 담배를 피고 있는 사람의 손.
ⓒ 오마이뉴스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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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금연을 굳게 결심했느냐고? 아주 단순하다.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해서다. 2009년 이맘때였다. 그때부터 연말까지 직장일과 집안일이 겹친데다 글쓰기에도 몰두하느라 난 그야말로 "정신없이" 보냈다. 어떤 날은 한 두 시간 자고 출근할 정도였다. 게다가 술 담배를 입에 달고 살았으니 몸이 당해낼 재간이 없었으리라.

결국 그해 마지막날 '징조'가 찾아왔다. 몸이 좋지 않아 그저 감기몸살 정도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심각했다. 나중에는 온몸이 쑤시고 침을 삼키면 목구멍을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새해 첫날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는 "목(편도)이 곪아서 수술을 해야 한다"며 입원을 권유했다. 다행히 수술은 피했지만 의사는 "재발하면 수술할 거니까 주의하라"는 경고를 했다. 그렇게 1주일 넘게 입원하면서 많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우선 담배를 계속 피우게 된다면 지금의 몇 배 이상의 고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지만 고통 속에서, 아니면 건강을 잃은 모습으로 중년과 노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몸이 힘들어서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모습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더구나 난 이제 겨우(?) 40대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앞으로 살 날이 태산같고 하고 싶은 일도 너무나 많다. 이런 내가 정신은 말짱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하고픈 일, 해야 할 일을 포기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건 비극 그 자체였다.

내 좌우명대로 '세상을 향한 발톱자국'을 제대로 남기기에도 인생은 너무나 짧았다. 그러자 담배부터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이제 동기는 충분한 셈이고 실천만 남았다. 그래, 담배와 이별하자!

굳은 결심 때문인지 몇달간 거뜬히 이겨냈다. 몇차례 술자리의 유혹도 잘 넘겼다. 그런데 200일이 지나갈 무렵 정말로 힘들어졌다. 특히 아내와 싸웠을 때, 한밤중에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땐 포기하고 싶었다. 아, 이렇게 또 무너지는가.

그래서 택한 초강수는 공개 금연이었다. 주위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직장 내부 게시판에 금연을 선포했다. '나 담배 안 피웁니다'라고. 예상외로 반응이 뜨거웠다. 전국에서 격려와 축하의 댓글, 전화, 메일이 답지했다. 의도했던 일이긴 하지만 사태가 너무 커져 버렸다.

직원 중에는 금연으로 응급실에 실려가거나 공황장애를 겪어서 병원신세를 졌다는 사람도 있었고, 10여년만에 다시 담배를 피웠다며 자책하는 이도 있었다.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 말은 "어쩌다 한대를 피웠다 하더라도 몇십 년 수절과부가 몸을 허한 것처럼 모든 걸 포기하지 말고 금연을 이어가라"는 격려였다. 

내가 금연중이라는 사실을 수천 명에게 알린 건 마음을 다잡고 자극을 받기 위해서였다. 공개선언을 하고 난 뒤 담배를 피우면 정말로 '개망신'을 당할지도 모르니까. 그 덕분인지 다행히 지금까지 한 대도 피우지 않고 있다.

금연은 모질게, 공개적으로 시작하자!

금연스티커 화장실에서 발견한 금연스티커. "당신의 폐가 재떨이입니까?"라는 문구가 충격적이다. 금연에는 효과가 있을까.
▲ 금연스티커 화장실에서 발견한 금연스티커. "당신의 폐가 재떨이입니까?"라는 문구가 충격적이다. 금연에는 효과가 있을까.
ⓒ 국민건강보험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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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을 계획하면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 몰래 금연을 시도해서 완전히 끊은 후 나중에 커다란 감동을 선사하겠다는 사람이 있다. 내가 보기엔 순진한 발상이다. 담배를 완전히 끊은 시점인 '나중'이라는 말은 언제 다가올지 모른다.

1년, 2년 아니라 10년이 지나도 흡연욕구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피우지 않고, 혹은 참고 있을 뿐이다.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금연은 모질게 시작하고, 이왕 시작했다면 공개적으로 하는 게 상책이다.

난 흡연의 폐해를 지적하거나 금연을 예찬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나 스스로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금연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리고 성공하기 위해 이렇게 또다시 공개적으로 글을 올린다. 20여년 전 나의 의지로 담배를 피웠던 것처럼 또다시 나의 의지로 담배를 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하면서 말이다. 

주위에선 2년 됐으면 금연에 성공한 것 아니냐고 말한다. 아직 멀었다. 그저 참고 있을 뿐이다. 금단증상이 생기던 처음보다야 낫지만, 특히 술자리에서 유혹은 아직도 만만찮다.

그럴 때마다 내가 담배를 다시 물 때 "너 그럴 줄 알았다"며 고소해할 사람들(특히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거나 병원에 누워있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아이들의 실망하는 눈빛까지.  

난 실리를 택했다. 나의 이익을 위해 금연을 하기로 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건강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흡연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던 점만은 분명하니까(이젠 나도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이제 최소한 한 여름에 호주머니에 담배와 라이터를 구겨넣거나 한 겨울에 찬바람 맞아가며 니코틴을 섭취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만으로도 기쁘다.    

금연을 시작하면서 건강한 삶을 고민하게 되었다. 막연히 담배를 끊고 몸이 좋아져야겠다는 생각을 넘어, 이젠 제대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나이 40대에 접어드니 간혹 체력의 한계를 실감한다. 하지만 아직 할 일이 많다. 아니 본격적인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 남은 인생에서 최소한 몸이 맘을 따라주지 않아 소중한 일을 포기하는 불상사는 겪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금연의 열정으로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자! 오늘도 무사히!


#금연#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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