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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부터 운동과는 별 인연이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체중은 이미 세 자리 수를 넘겼고, 실종된 턱선과 바지벨트를 흘러넘치던 뱃살을 바라보며 한 줌 남은 나의 자존감은 설 곳을 잃어갔다. 대학진학 이후에도 별반 변화가 없던 나의 신체를 바라 볼 때마다 심한 자괴감에 빠졌다. 모름지기 몸은 마음의 창이라, 마음의 상태가 그러하니 몸도 나날이 나빠졌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마음먹고 도전한 운동이 유도였다. 대학교에 있는 동아리를 통해 유도에 입문한 나는 '무식하게' 운동했다. 도장에서 정해진 연습량을 채우며, 꾀부리지 않고 두어 달 수련하자 눈에 띄게 군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어느새 체중감량은 내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욕심이 생긴 것이다. 더 강해지고 더 많은 상대를 쓰러뜨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런 와중 매년 서울시에서 개최하는 대학 동아리 유도대회에 참가할 기회를 얻었다.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는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심호흡을 하고 시합장에 들어섰다.

 

상대방의 큰 기합소리와 동시에 나는 상대의 도복 깃도 한 번 제대로 잡지 못한 채 파죽지세로 땅바닥에 내리 꽂혀버렸다. 그 찰나의 순간, 작은 승리들에 도취해 기고만장했던 나의 모습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대회가 끝나고도 나는 줄 곧 부끄러운 마음을 숨기려 급격한 체중감량, 시합당일 나의 몸 상태 등 내가 아닌 다른 이유들로부터 패배의 탓을 돌렸다. 그런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눈을 속일 수는 있었어도 내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내가 그토록 부끄러움을 느낀 이유는 패배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패배를 성숙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나의 옹졸한 자세 때문이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도 말로만 패배를 인정하고 합리화 하려는 '꼼수'스러운 자세가 만연 한 것 같아 씁쓸하다.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더 중요한 일은 그 것의 원인을 찾고 진정성을 가진 성찰과 자기반성이다. 꽤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때의 패배가 나에게 준 교훈을 잊지 않고 있다. 패배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원인을 객관적으로 찾아 고치는 일은 당장은 수치스럽고 쓰릴지라도 결국에는 나를 살릴 정수正手라는 것을 말이다.


태그:#유도, #정치, #서울시장,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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