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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석 목사께서 쓰신 안철수 원장에게 보내는 글(서경석의 세상읽기(제16화), 안철수 교수께 드리는 호소)을 읽으며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으로서 답답한 울분을 참을 수 없었으나 '닥치고 투표'가 중요한 때이어서 미루어 두었다가 이제 선거가 끝나고 글을 드립니다.

 

목사님께서 안철수 원장에게 쓰신 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려고 뉴스를 검색하니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옵소서'로 마무리 되는 <[세상읽기 제17화] "오히려 이제부터 희망이 생겼습니다">를 극우신문에 기고하셨더군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서로 다른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목사님의 글을 좌파적 견지에서 비꼬거나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논쟁을 펼칠 가치가 있다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한 분 하나님을 믿는 동일한 종교에서 신앙하는 처지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종' 또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소개하며 글을 쓰는 일은 그저 일상의 글을 쓰는 것보다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에 대한 자기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글을 드립니다. 목사님의 글은 기본적으로 '목사'라는 기반 하에 있고, 또한 '하나님의 뜻'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저 '서경석'이라는 자연인의 글로만 머무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류사회는 끊임없이 우파적 보수와 좌파적 진보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하여 왔습니다. 거기에는 어느 한 쪽이 언제나 옳다는 절대적 진리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진보는 늘 내일의 보수가 되어 왔음도 주지의 사실입니다. 목사님도 어제에는 진보였으나 오늘에는 수구가 되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언젠가 저 역시 오늘에는 진보의 편에 서 있으나 언제 수구골통이 되어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안철수 원장과 금번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은 목사님처럼 세상의 모든 일을 '이념의 잣대'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 사람들입니다. 이념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믿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고 실천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단지 목사님의 시야가 현상의 본질을 보는 데 익숙하기보다는 자신의 관념 속에 현상을 억지로 넣어서 해석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생기는 착시일 뿐입니다.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HD컬러의 시대에 아직도 흑백의 사고로 사회의 모든 현상과 시민의 소망을 이념이라는 틀 속에서만 이해하려는 목사님의 아둔함이 불러온 오해라고 생각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목사님이 그리 무식한 분은 아니실 터이니 오히려 불순한 목적을 위해서 좌우의 틀(정확하게 말하면 종북좌파와 우파의 틀)로 몰아간 교활함이라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안철수 원장에게 쓰신 글이 그 교활함을 감추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면, [세상읽기 제17화]는 그 교활함을 드러내놓고 쓰신 글이더군요.

 

결국 안철수 원장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한나라당이 싫다고 하셨던 말은 속임수였고, 그저 나경원 후보가 당선되어야 하고, 한나라당이 잘 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숨긴 불순한 목적이었음을 여실히 드러내셨더군요. 그래서 '옥석은 시간이 가려준다'는 말이 옳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안철수 원장이나 제가 야권통합연대를 지지하는 것도 목사님에게 나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반목하고 '개 닭 보듯'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질 않겠습니까?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서로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을 인정하고 균형과 평화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그래서 이념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사람의 시대, 상식의 시대가 필요하다고 안철수 원장은 역설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저 세상을 애국우파와 종북좌파로 나누고,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서울시가 못마땅한 모양입니다. 목사님이 자신만이 옳다는 생각으로 53.4%의 서울시민의 신성한 의사와 견해를 '우매한 다수'와 '선동적인 소수'의 결합으로 평가하는 교만함이 배어있는 것에는 격한 감정을 갖게 됩니다. 교만이야말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해야하는 그리스도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 아닌가 묻고 싶습니다.

 

서두에도 말씀드렸듯이 서로의 정치적 견해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자 함이 아니기에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정도의 부탁을 드립니다.

 

첫째, 더 이상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이념을 표하는 글에 '목사'라는 칭호를 병기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대통령'이라는 칭호가 그 나라의 견해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이듯이, '목사'라는 칭호가 교회를 대표하거나 하나님을 대리하는 것으로 오해되어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저 같은 다른 사람들의 심기가 매우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랑은 보이지 않고 오직 증오와 멸시만이 가득한 글에 '하나님'을 언급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고백했고, 사도 바울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선포했습니다. 적어도 기독교의 목사라면 자신의 글이 혹시 사랑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 지 성찰하시며 글을 쓰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지성과 이성, 그리고 감성이 풍부해지시기 전에는 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일을 자제하시기 바랍니다. 일제의 잔재가 청산되었다든지 하는 역사 인식은 무지성의 극치이고, 일면식도 없는 안철수 원장에게 '안교수 역시 역사의 큰 죄를 짓고 실패者가 되는 것임을 감히 말씀드리는 바입니다'라고 글을 쓰는 것은 한나라당의 패배에 대한 두려움과 조급한 마음에 합리적 이성을 잃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함께 살아가고 있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인간'에 대한 사랑의 마음위에 이념이 먼저 나타나는 것은 감성이 메마른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니 글로 자신을 표하려 애쓰기보다는 돌이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서경석 목사님.

[세상읽기 제17화]의 마지막 문구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옵소서'라고 쓰셨습니다. 저도 같은 문구를 마지막에 쓰며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같은 글이지만 어느 곳이 더 어울리는지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기원합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예수따르미, 한 평신도로부터


#서경석#안철수#박원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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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정의,평등,진리,생명,사랑 그리고 가족- 소중한 의미들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회인입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그 분'은 국회에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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